메뉴 건너뛰기

close

▲ 제주 서귀포 월드컵 구장
ⓒ FIFA
제주도 서귀포의 월드컵 구장입니다. FIFA와 세계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장이라고 경탄했다지요? 이 아름다운 축구장의 지붕이 지난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으로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던 것 기억하실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설계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사진에서 보듯 거센 해풍을 안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지난 해처럼 큰 태풍이 분다면 제 아무리 강인한 재료에 튼튼한 설계를 했더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당시 서귀포 구장의 지붕이 견뎌내야 했을 풍압의 세기는 얼마나 됐을까요? 전력으로 환산한다면 아마 수십만Kw에 육박했을 것입니다. 그 튼튼하다던 특수천막을 무참히 찢어 놓을 것을 보니 포항제철의 거대한 전기로 몇 개는 충분히 돌리고도 남을 엄청난 에너지였음에 틀림없습니다.

태양 빛과 바람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에너지 자원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장 의지하는 에너지인 석유 역시 고대생물체의 화석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부산물이니 거슬러가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는 결국 태양에서 온 셈입니다.

미국의 풍력발전회사인 <윈더스트리>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모든 풍력자원을 남김 없이 활용할 경우 현재 미국이 사용하는 석유와 가스 석탄 등 모든 화석연료를 능가하고도 남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1년 내 지난 해 태풍에 버금가는 세기의 바람이 불고 이를 풍력발전기를 이용해 전력으로 변환할 수 있다면 살기는 좀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순식간에 석유로부터 해방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바람이 사람들 편의를 봐 주면서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맞추어 불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에너지의 밀도가 낮기 때문에 순식간에 대량의 전력이 필요한 포항제철 같은 거대시설 그리고 자동차 등은 풍력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엔지니어들은 풍력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사이에 존재하는 이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소와 연료전지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시사철 부는 바람을 이용해 풍력발전을 하고 이 전력으로 물을 전기 분해하여 발생한 수소를 저장해 두는 것입니다. 수소는 기존의 송유관 같은 파이프라인이나 아니면 유조차 등을 활용해 대량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도시나 공단지역으로 실어 나릅니다.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연료전지가 장착된 차량을 몰고 주유소에 가면 석유대신에 수소를 충전 받게 됩니다. 자동차는 연료전지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이용해 모터를 구동하고 연소된 수소는 수증기로 변해 배기구로 배출됩니다. 만약 이런 에너지 순환 사이클이 완성된다면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전혀 공해를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청정에너지가 구현되는 셈입니다.

▲ GM의 연료전지 자동차
ⓒ GM
꿈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현실적인 방안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GM은 석유회사 셸과 합작해 연료전지 자동차를 개발하는 10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이미 지난 해에 시제품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연료전지 자동차는 전기모터를 구동해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의 자동차와는 그 개념부터 달리합니다. 엔진 → 변속기 → 구동축 → 바퀴에 이르는 동력전달방식을 전혀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GM은 차량의 바닥에 연료전지와 수소탱크를 납작하게 만들어 수납해 차대를 스케이트 보드처럼 만들고 4개의 바퀴마다 각각 전기모터를 달아 구동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구동 에너지가 전력선으로 바퀴의 모터에 전달되기 때문에 운전대가 굳이 왼쪽이나 오른쪽에 고정되어 있을 이유가 없으며 가속이나 브레이크 또한 페달 대신 조이스틱 같은 것으로 대체(by-wire)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래도 습관이 들어 페달이 편하다면 얼마든지 그 쪽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차량의 좌석이나 트렁크 위치 역시 얼마든지 자유롭게 배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연료전지 자동차가 절실한 곳은 미국보다 오히려 중국입니다. 밑의 사진을 잠시 보실까요? 나사의 위성이 지난 해 촬영한 중국과 서해의 모습입니다. 중국의 내륙 공업지역에서 발생한 거대한 스모그 구름이 중국대륙 전체를 뒤덮고 있으며 바람을 타고 서해를 넘어 한국까지 불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중국의 경제발전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속되어 10년 내에 중국의 자동차 보급률이 한국과 맞먹는 비율로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4인당 1대 기준으로 보급이 된다고 가정해도 무려 3억대가 넘는 자동차가 중국대륙을 달리게 됩니다. 3억대의 자동차가 내뿜는 가공할 매연이 서해를 넘어 한반도를 엄습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지금도 황사에 섞여 불어오는 중국의 공해에 봄이면 병원마다 호흡기 환자로 미어터지는 것이 연례 행사인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한반도 엄습하는 중국의 스모그
ⓒ NASA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중국에 석유로 달리는 자동차가 이런 속도로 보급되는 것을 대책 없이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기술로는 수소에너지로 달리는 연료전지자동차가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GM은 중국의 농촌에 연료전지자동차가 보급될 경우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차대와 차체의 분리가 간단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농사철에는 차체를 교체해 농기구로 활용하고 평소에는 자가용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 연료전지는 운행중이 아니더라도 항상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밤에는 농가의 자가용 발전기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만약 이런 비전이 실현된다면 중국은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산간오지까지 송전선을 건설할 필요가 없으며 송전 중 발생하는 40% 가량의 전력손실 역시 막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으로 분산된 혁명적인 에너지 배분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역시 모든 자동차가 연료전지로 교체된다면 기존에 상상하지 못 했던 혁명적인 전력생산구조를 갖출 수 있습니다. 24시간 가동되는 풍력과 태양열 그리고 수력발전소에서는 전력과 수소가 동시에 생산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운행하지 않고 차고에 서 있는 수백만 대의 자동차에서도 전기가 생산됩니다. 주차장에 서 있는 당신의 자동차에서 생산된 전기는 전기 콘센트를 통해 발전회사로 역 송전됩니다. 낮 시간에 플러스를 향해 돌아가던 전기계량기는 이제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전력회사의 통제센터는 수백만 대의 자동차가 생산하는 전기를 모아서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 다른 공단이나 수요처로 보내주고 그래도 남는 전력은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산된 수소는 다시 주유소로 공급되어 연료전지 자동차에 주입하게 됩니다. 기존의 발전소는 전력의 회수와 공급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메워주는 컨덴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그치게 됩니다.

결국 전력회사는 전력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세상 곳곳에 편재하는 에너지를 모아서 필요한 또 다른 곳에 공급하는 유통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인터넷의 컨텐츠 생산구조처럼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분이 되지 않는 혁명적인 에너지 유통구조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전력회사는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네티즌의 비아냥이 명쾌하게 보여주듯 이라크 전쟁 역시 중동의 석유에너지 패권을 독점하기 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와 러시아가 이라크 전쟁을 극력 반대하고 나선 속셈도 잘 살펴보면 이미 양국의 석유회사가 이라크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전개발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시민 단체들이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파병 동의안도 힘들게 국회인준을 받았지만 냉정하게 국익만을 저울질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파병에 찬성해야 했을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에너지 과소비 국가입니다. 경제규모에 비해 엄청난 석유를 소비하고 있는 이유는 비효율적인 에너지 체계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포항제철이나 석유화학업체 같은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포항제철의 전기로 하나는 어지간한 중소도시의 전체 전력사용량을 능가할 것입니다.

이런 에너지 과소비 구조가 온존해 있는 상태에서 중동의 석유공급이 불안해진다면 우리라고 이라크 침략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미국처럼 막강한 무력의 배경이 있었다면 경제가 무너지는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침략을 강행하고 남았을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석유는 어차피 수십년 후면 사라져버릴 한정된 자원입니다. 더 이상 석유를 둘러싼 무력과 외교적 고래싸움에 끼어 나라의 경제와 안보가 통째로 흔들리는 위태로운 지경을 방치해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면 석유의 노예가 되어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경제를 해방시킬 수 있는 대체에너지와 새로운 송전체계에 대한 연구를 당장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무한하게 공급되는 태양과 풍력에너지가 있습니다. 또한 이를 수소로 저장해 필요한 때 사용하도록 변환해주는 연료전지 기술이 실용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막강한 컴퓨터 기술로 곳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회수하고 공급할 수 있는 분산형 전력유통기술 역시 성숙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가야 할 방향 역시 분명해 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석유는 수십년이면 고갈됩니다. 그 전에 우리 세대가 대체에너지 기술을 개발해 우리의 후손들이 또 다시 석유의 노예가 되어 강대국에 비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제주도에 태풍이 불면 근심 대신 오히려 쌩쌩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