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재처리 발언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23일로 예정된 북한-중국-미국 3자 회담의 개최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내에서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상징으로 한 강경파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 사이에 내부 논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20일자 신문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부시 행정부 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신문은 이 날 장문의 기사에서 "대북정책이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가장 논쟁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며, 북한과의 협상이 시작되어도 "미국이 무엇을 할 것인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집권 2년 2개월이 지나도록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여전히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 침공 며칠 후 럼스펠드가 이라크 문제에 정신을 몰두하고 있어 북-중-미 3자 회담에 반대하기 힘들 때, 파월이 북한과의 회담을 추진했다는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3자 회담 추진 과정에서 럼스펠드가 사실상 '왕따'당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럼스펠드는 이에 불평하듯 4월 17일 '장병과의 대화'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에 지불할 대가는 없다"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제 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해온 것과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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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스펠드와 파월의 제2라운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럼스펠드와 파월의 1차 대결은 이라크 정책이었다. 이미 딕 체니 등 신보주의자들과 함께 1997년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라크 점령 로비를 벌인 바 있는 럼스펠드는 줄곧 무력 사용을 주장해왔다. 반면에 파월은 초기에 '유엔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미국 내 정치적 역학관계가 강경파로 확실히 쏠리면서 럼스펠드는 체니와 함께 주도권을 잡았고, 파월은 기존의 입장을 접고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말았다. 1차전은 럼스펠드의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강점에 이어, 대북정책을 놓고 2차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파월의 온건성 역시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그는 합참의장 재직 때인 1991년, 걸프전 직후 "적들이 고갈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김일성과 카스트로다"며, "우리는 이제 그들을 향해 갈 것이다"라고 말해 미국의 무력 개입을 암시한 바 있다. 또한 부시 행정부 내에서 대북한 온건론을 대변하면서도 간혹 "김정일 정권은 있어서는 안될 정권"이라며 강경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파월이 북한과의 협상을 선호하는 것은 협상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풀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시 행정부 출범직후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사이의 정상회담 직전에 "북한과의 협상에 유망한 요소가 있다"고 말했다가, 백악관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고 다음날 발언을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강경파의 주도하에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한 채 2년 2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것이다.
파월이 강경파들과 거리를 둬 왔다는 것은 앞서 소개한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비롯해 신보수주의를 대변하는 모임들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공격적인 팽창주의를 지향하는 신보수주의와는 달리, 무절제한 무력 개입을 자제하되 일단 개입하면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신속한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자신의 독트린 때문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럼스펠드 등 강경파들은 국무부가 파월에게 장악당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신보수주의 신봉자인 존 볼튼을 국무부 차관 자리에 앉혀 파월을 견제하게 했던 것이다. 존 볼튼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라는 직책과는 반대로, 각종 국제조약을 무력화시키고 강경한 대외정책을 세계 곳곳에 설파하고 다니는 초강경파이다. 그는 특히 작년 8월 서울 방문시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을 재생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반면 럼스펠드는 '북한위협론'의 산파와도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1998년 공화당 주도의 의회가 선정한 '탄도미사일 위협 평가 위원회' 의장을 맡아 7월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북한을 최대의 탄도미사일 위협 국가로 지목하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 시점을 2003년경으로 명시해, 2010년 이후로 전망한 CIA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북한위협론을 과장한 가장 큰 이유는 잘 알려진 것처럼,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서두르기 위한 것이다.
그는 특히 북한 핵파문이 불거진 이후에 "북한이 1-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근거가 결여된 추정'을 기정사실화하면서 MD를 '초법적인' 존재로 만드는데 주력해오고 있다. MD 실험평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자 실험평가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고, 실험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자 ICBM을 대기권 밖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은 앞으로 실험도 하지 않고 2004년까지 10기를 알래스카에 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신무기 체계의 개발시 반드시 실험평가를 하고 의회의 예산 심의와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미국 의회법 조문마저 럼스펠드의 야망 앞에서는 휴지 조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럼스펠드가 이처럼 MD 구축을 서두르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주를 통해 지구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에 있다. 그는 국방장관 취임 직전인 2001년 1월 내놓은 '우주전략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우주공간 통제를 통해 지구를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 첫 걸음으로 MD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
파월과 럼스펠드로 상징되는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분열은 3자 회담을 비롯한 북미 협상의 난항을 예고하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한과 미국 사이의 입장 차이 못지 않게, 미국 내부의 입장 차이 역시 수렴되기 힘들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힘의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라 북미 협상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93-4년 당시에도 이러한 현상은 여러 차례 나타난 바 있다.
우려되는 일은 파월을 비롯한 대북 협상파들은 소수이자 힘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외교안보 수뇌부 가운데,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정도가 파월을 지원할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럼스펠드를 비롯해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어둠의 왕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리처드 펄 국방정책자문위원 등으로 짜여진 매파 연합에 비해서는 확실히 중량감과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 개인의 극단적인 기독교 원리주의도 대북강경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20일자 신문에서 미국 내 대북정책의 혼란상을 자세히 다룬 <워싱턴포스트>는 "회담이 시작되어도 부시 행정부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는지조차 불확실"하다고 꼬집었다. 전제조건없는 대화를 원하는 파월과 북한의 완전 무장해제 아니면 붕괴를 꿈꾸는 럼스펠드의 동상이몽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난맥상을 푸는 것은 부시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즉, 부시가 북한에 대한 '정권 교체(regime change)'의 환상을 버리고 핵, 미사일 등 긴급한 최대 현안을 마무리하되, 북한에 대한 주권 존중, 불가침 조약 체결, 경제제재 해제 등 체제안전보장 조치를 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일괄타결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협상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돌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향후 몇 개월은 '외교의 계절'이 될 것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이에 문제 해결의 비전을 찾지 못하면 미국은 '외교의 실패'를 운운하며 제재와 봉쇄, 더 나가 무력사용까지도 추진할 것이다. 반면에 북한은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강력한 물리적 억제력을 갖겠다며 핵무장을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부시로 하여금 파월의 손을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모두 신중하면서도 치밀한 대미 전략이 요구된다. '재처리'와 같이 위기를 고조시키는 행위는 미국 내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협상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남한 역시 미국 내 강경파가 꿈꾸는 '김정일 정권 교체'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비전을 국제사회에 제시함으로써 협상파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