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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로부터 퇴거 요청을 받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50대 커피숍 주인이 건물 안에서 분신 사망해 파문이 일 전망이다. 유족들은 1층 로비에 분향소를 설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건물주로부터 퇴거 요청을 받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50대 커피숍 주인이 건물 안에서 분신 사망해 파문이 일 전망이다. 유족들은 1층 로비에 분향소를 설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상가 건물주로부터 계약 만료와 함께 상점 퇴거요청을 받아온 한 50대 여성이 같은 건물 관리실 앞에서 분신해 사망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9시40분경 서울시 중구 을지로 4가 소재 삼풍상가 11층에서 이 건물 1층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조모(51)씨가 불에 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사건 당시 조씨는 올해 3월 31일로 계약 만료된 가게에 대한 건물주의 퇴거 요청과 가게 운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건물주의 강압적인 퇴거 요청이 조씨가 분신 사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유족들은 또 사건 발생 당일 아침까지 조씨의 일상생활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점을 들어 조씨의 '분신 자살'을 부인하고 있어 문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와관련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그 동안 건물 임대차 거래에서 관행화 돼 온 '권리금 제도'를 지목하고 있어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참극은 건물주의 퇴거 요청으로 보증금 외에 막대한 권리금을 되찾지 못하게 된 조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 '분신 자살'을 택했고 이는 곧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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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거 요청한 건물주에 책임"-"강제 퇴거 압력 없었다"
유족-건물주 주장 엇갈려…갖가지 의혹 제기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날 아침 조씨는 오전 9시40분경 삼풍상가 건물 11층 관리사무소에 인접한 남쪽 계단에서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은 건물주의 퇴거 요청에 따른 고민과 가게의 운영난을 비관했다는 것.

경찰은 또 때마침 11층 다른 사무실의 전화 설비를 점검하러 온 이 건물 관리인 임모(57)씨가 남쪽 계단에서 연기가 퍼져나오는 것을 발견,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했으나 조씨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황이었고 곧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들은 조씨 '분신 사망'의 원인은 건물주의 부당한 퇴거요청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조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유족들에 따르면, 건물주는 지난 2년 동안 매년 20%씩 보증금을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퇴거 요청을 하면서도 권리금 없이 보증금 2000여만원만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4월 19일까지 나가달라는 '퇴거 시한'을 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도 조씨에게 극심한 압박이 됐다는게 유족들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유족들은 사건 당일까지 조씨의 생활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조씨의 '분신 자살'에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씨의 큰아들인 박봉규(30)씨의 친구 임주영(30)씨는 "어머니께서 사건 발생 바로 직전인 오전 9시30분에도 정상적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가게 정리를 하는 등 일상 생활에 변화가 전혀 없었다"며 "분신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자살 바로 직전에 이런 행동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숨진 조씨의 사위 허모(29)씨가 사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허씨가 가리키는 벽이 분신으로 심하게 그을렸던 벽. 관리사무소는 사건 당일 이 곳을 새로 페인트칠 해 유족들의 의혹을 받고 있다. 왼쪽은 조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
숨진 조씨의 사위 허모(29)씨가 사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허씨가 가리키는 벽이 분신으로 심하게 그을렸던 벽. 관리사무소는 사건 당일 이 곳을 새로 페인트칠 해 유족들의 의혹을 받고 있다. 왼쪽은 조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 ⓒ 오마이뉴스 김영균
사건 발생 당일 사고 현장을 서둘러 정리한 것도 유족들의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21일 사건 발생 시간은 오전 9시40분경. 이후 119구조대와 경찰이 도착해 조사를 끝낸 뒤 건물 관리사무소측은 당일 오후 곧바로 사고 현장 벽 전체를 새로 페인트칠하는 등 현장 정리를 끝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건물 관리사무소측이 조씨 분신 사망 사건의 증거들을 은폐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유족들은 ▲조씨가 몸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인적이 없는 비상계단쪽으로 나갔다는 점 ▲사고 발생 지점이 관리사무소 바로 옆인데도 직원들이 아무도 조씨를 못 봤다고 주장하는 점 ▲빌딩관리인인 임모씨를 최초목격자로 내세우는 경찰측 주장과 달리 사고현장에 인접한 사무실 상인들이 최초목격자로 나서고 있어 진술이 엇갈린다는 점 ▲관리소 직원들이 평소 조씨가 운영하는 호프집을 자주 이용해 친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발생시 전혀 모르는 인물이라고 말해 진술이 자주 번복되었다는 점 등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물주인 (주)주원측은 "유족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있다. 우선 조씨에 대한 '퇴거 요청'이 전혀 강압적이거나 부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주원의 이종진 부장은 "현재 건물이 낡고 로비가 협소해 리모델링의 필요성이 있어서 이미 지난 2001년 다른 5개의 업체들과 함께 1층에 위치한 조씨의 가게를 퇴거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며 "그러나 조씨와 다른 주인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호소해 2년 동안 퇴거를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조씨와 (주)주원측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화해조서까지 작성해 올해 3월 31일 나가기로 서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또 "약속된 날짜인 3월 31일을 넘겨도 조씨가 나가지 않자, 직접 조씨의 가게로 내려가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어본 적은 있지만 그 때도 조씨가 별다른 대답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어 그냥 올라왔다"면서 "조씨가 가게 운영이 어렵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절대 강제로 나가달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부장은 "만약 조씨가 평소에도 관리사무소로 와서 '못 나가겠다'고 버텼다면 이번 분신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번도 관리사무소를 찾아오거나 큰 소리 한번 친 적 없었다"며 "이 때문에 이번 일은 우리(건물주)로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운 사건"이라고 전했다.

민주노동당, "미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사건 원인"

삼풍상가 11층에 위치한 관리사무소 입구. 오른쪽에 보이는 문 뒤편이 남쪽 계단으로 조씨는 이 곳에서 분신, 사망했다.
삼풍상가 11층에 위치한 관리사무소 입구. 오른쪽에 보이는 문 뒤편이 남쪽 계단으로 조씨는 이 곳에서 분신, 사망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한편 유족들과 건물주의 주장이 이처럼 엇갈리는 가운데,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건의 주 원인을 상가 임대차 거래에서 관행화 돼 온 '권리금 제도'와 미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꼽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조씨가 보증금 2000여만원에 삼풍상가 1층 커피숍을 임대한 것은 지난 2000년 2월. 당시 조씨는 이전 주인에게 권리금으로 7000여만원을 더해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건물은 같은 해 10월 현재의 건물주인 (주)주원측이 인수했고, (주)주원측은 현행 법률에 따라 임대 보증금만 인수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씨는 퇴거 요청을 받은 현 건물주에게 막대한 권리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었고, 이를 비관해 '분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조씨는 그 동안 장애인인 남편과 함께 자녀 셋을 키우며 어렵게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현재 조씨의 시신은 을지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으며, 유족들은 삼풍상가 1층 로비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정확한 진상 규명과 건물주의 책임 있는 해명과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은 사건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와 불에 탄 슬리퍼, 인화성 물질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용기 등을 수거해 23일 중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다. 또 빠른 시일내로 시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임대차보호헙 개정 목소리 '2002년 11월 이전 세입자'도 포괄해야

민주노동당 이선근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이번 사건을 "그간 문제가 되어온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법)의 미비점이 한 상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상가법의 핵심조항인 세입자계약청구권이 임대차 계약을 이미 맺고 있는 세입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세입자계약청구권이란 상가 임대료가 일정액 이하(서울 2억4천만원, 수도권 1억9천만원, 광역시 1억5천만원)일 경우에는 5년 간 세입자의 임차권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권리금이나 시설투자비를 보호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2002년 11월 1일 이후 체결된 임대계약에 한해서다.

상가세입자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상가법은 2001년 12월 제정되어 1년의 경과기간을 거쳐 2002년 11월 정식 발효되었다. 하지만 2002년 11월 이전에 계약한 세입자도 보호할 수 있도록 한 경과부칙이 마지막 법안 심의단계에서 삭제된 것이다.

조씨 죽음도 이와 관련한다. 상가법 제정 이후 이전 세입자에 대한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상, 일방적 계약 해지 등의 횡포가 이어졌던 것. 특히 최근 들어 상가건물의 증개축이 잦아지면서 세입자들의 권리금, 시설투자비에 대한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은 그간 수차례 상가법 부칙의 개정을 요구하며 2002년 4월 25일 부칙개정안을 입법청원했지만 국회는 요지부동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와 정부에 다음의 사항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첫째, 국회는 법사위에 계류 중인 민주노동당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

둘째, 정부는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의 상인무시 조례개정 등에 대해 유권해석을 통해 시정권고를 행할 것. / 박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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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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