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방지위원회(위원장 이남주)는 지난 4월 21일 공익제보를 한 김모 공무원에 대해 불이익 처분을 내린 경기도 송모 시장에게 부패방지법 제53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과태료 500만원에 처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의결은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 출범 후 부패행위 신고자에게 불이익처분을 한 자를 처벌하는 첫 번째 사례이다. 그러나 부방위의 이번 의결이 행정벌에 속하는 과태료처분에 불과해 부패행위 신고자에 대한 보복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처벌로서는 매우 미약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방위로부터 이번 의결을 받아낸 신고자 김씨는 송 시장의 '○○종합운동장 설계용역비 부당집행'과 관련해 이를 2002년 4월 9일 부방위에 신고한 후 2002년 11월 1일 시 본청에서 동사무소로 하향전보됐다.
감사원과 부방위를 거친 내부고발, 돌아온 것은 하향전보
사건의 자세한 경과는 다음과 같다.
시청 허가민원과 토목직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송 시장이 ○○종합운동장 설계용역비로 53억 상당의 예산을 부당하게 집행했다"며 양심선언을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감사원 경기도 감사반이 파견을 나와 조사를 했고 이후 내려진 감사원의 조치가 엉터리라고 생각한 김씨는 다시 2002년 4월 9일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같은 의혹을 부방위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부방위는 "감사원의 일정한 조치가 있었으며 예산낭비에 대해서 변상판정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 문제에 대해 검찰 수사가 불필요하다는 '불이첩결정'을 내렸다.
이후 2002년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다시 당선된 송 시장은 같은 해 10월 22일부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면서 김씨를 안산시청에서 8km 떨어진 상록구 반월동으로 발령했다. 이에 김씨는 10월 26일 내부고발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을 이유로 부방위에 신분보호를 요청했고 2002년 11월 1일 동사무소로 좌천됐다.
공무원 조직관례상 승진의 경우가 아님에도 김씨를 하급기관인 동사무소로 전보시킨 것이 부패행위 신고로 인한 신분상 불이익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부방위는 송 시장으로 하여금 30일 이내에 원상회복(신분보장조치)할 것을 2003년 3월 6일에 1차적으로 의결했다. 부방위의 이런 신분보장조치가 내려졌음에도 송 시장은 이를 지키지 않아 지난 4월 21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부방위의 솜방망이 조치, "법 개정해야"
이런 과정에서 김씨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부실한 부패방지법의 신분보장과 처벌 규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부패방지법 제32조 6항에는 부방위로부터 '신분보장조치 요구를 받은 당해 기관의 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이 같은 조치를 집행할 강제력이 없는 상태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부방위의 '신분보장조치' 의결을 불이행한 송 시장에게 같은 법 제53조 1항에 '신분상의 불이익이나 근무조건상의 차별을 한 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고작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린 것이 그나마 최대한의 조치였던 셈이다.
부방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 신고자 김씨도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과태료 부과 수준의 처벌로서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면서 "부방위가 보다 강제력 있는 의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하고 아울러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더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부패방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이 내부고발을 했던 종합운동장 설계용역비 문제에 대해서도 "내가 직접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송 시장의 그 같은 예산집행은 분명 상식밖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이라도 검찰이 계좌조회를 비롯해 강력하게 수사에 나선다면 분명 이 문제에 대한 부패비리를 밝혀낼 수 있을 걸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부방위의 이번 결정이 있기까지 김씨와 공동으로 대처해왔던 참여연대도 23일 논평을 내고 "해고, 전보, 근무조건상 차별 등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를 통한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행위는 부패청산을 가로막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라면서 "보복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을 징역형·벌금형 등 형사처벌 수준으로 강화되고 부방위 의결에 대한 법적 강제장치도 보완되는 방향으로 부패방지법을 개정할 것"을 부패방지위원회와 국회에 촉구했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송 시장은 부방위의 의결을 존중하여 김씨에 대한 신분상 원상회복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한 뒤 "공익제보자 김씨와 함께 안산시장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패방지위원회는 이번 의결과 관련해 23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내부공익신고를 활성화하고 신고자의 신분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보복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징역형, 벌금형 등 형사처벌 수준으로 강화하는 등 신고자보호 관련 법령 및 제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