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책 전문가를 단 한 사람도 배치하지 않았던 인수위원회, 국가 차원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검토조차 없었던 '10대 국정과제', 그리고 최근 일련의 반환경적 규제조치 완화는 출범 초기부터 험난한 길을 각오한 환경진영의 판단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관련, 파병반대를 외치며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던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번엔 환경정책을 놓고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정의시민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환경 단체 소속 회원 1163명은 서울 흥사단 3층 강당에서 열린 '노무현정부 환경분야 개혁 상실 규탄 선언'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출범 이후 두 달여 동안 보여준 환경현안에 대한 태도에 심각한 우려와 분노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정부는 새만금, 핵폐기장, 경인운하, 경유차 등의 환경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각종 규제완화 정책은 국민의 건강과 미래세대 환경권을 위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선언문을 낭독한 환경운동연합 최열 공동대표는 "우리는 노무현 정부에게 개별적인 환경사안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뿐만이 아니라, 경제지상주의를 제일로 내세우던 무분별한 개발정책의 전환과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촉구한다"면서 "정부는 환경을 경제의 희생양으로 삼는 개발정책이 결국은 국민의 삶의 질을 외면한 반 개혁적 처사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단체연합 이오경숙 공동대표는 "새만금, 핵폐기장, 경인운하, 댐 정책 등의 환경현안은 단지 개별적인 환경사안의 의미를 넘어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이루어진 잘못된 국가정책을 상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철저한 침묵과 방치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도 사업 타당성이 없음을 인정한 새만금 간척사업은 문정현 신부 등 성직자들이 목숨을 걸고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까지 305㎞를 삼보일배 고행을 통해 방조제 공사 중단을 외치고 있지만 공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어 '핵 위주 에너지 정책의 전환과 핵폐기장 계획 철폐를 위한 종교인 단식'도 30여 일이 되고 있으며,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사업 백지화에서 하루아침에 입장이 번복된 경인운하 사업도 개발부처에서 또 다시 강행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금정산 관통 문제도 명쾌한 해결 방안이 제출되지 않고 있으며, 불필요한 예산 낭비라 지적되고 있는 김제신공항 문제도 해를 거듭하여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산-수락산-불암산 관통 도로 문제 역시 답보상태다.
"선-경제 후-환경 발상은 구시대적, 반개혁적"
정부 주무 부처인 환경부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기업로비와 개발부처의 강한 저항에 환경부의 힘이 미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참여정부 초기 과정에서 보인 환경부의 모습은 과거 정부시대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환경부는 과거 정부에서와 같이 매체별 환경사안과 환경부 조직 구조 속에서의 환경 사안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특히 현재 대규모 환경파괴의 주요 원인자가 정부인 상황을 감안할 때, 환경부 스스로가 부처의 경계와 한계를 넘어 정부를 대상으로 더욱 적극적인 문제점 지적 및 해결 의지를 표명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사회 각부문 대표자들의 환경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운을 뗀 뒤 "정부의 환경정책은 벼랑 끝에 몰렸으며,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이나 인수위 시절, 그리고 대통령이 되서도 환경문제를 애써 외면하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면서 "이는 노 대통령의 환경철학 부재가 낳은 결과이며,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이보다 더 못했던 시대가 있었을까'라는 자조 섞인 말들도 나오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한국여성민우회 김상희 상임대표도 "최근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환경인들은 '4월 항쟁'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지나친 경제논리에 의해 환경정책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한국은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에 들지만 환경은 세계 140~150위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라며 "이제는 환경문제 개혁에 의지가 없는 노무현 정부 자체가 개혁의 대상"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이날 선언에 나선 '노무현 정부의 환경분야 개혁 상실을 규탄하는 선언인 일동'은 "오는 6월 5일 환경의 날까지 이날 선언에서 밝힌 것들에 대한 가시적인 답변을 원한다"며 "만약 노무현 정부가 이를 또다시 무시할 경우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