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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복 건국대 교수는 서동만 교수를 둘러싸고 색깔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보수언론들의 행태는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했다.
주경복 건국대 교수는 서동만 교수를 둘러싸고 색깔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보수언론들의 행태는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유력한 국정원 기조실장 후보였다가 국회 정보위로부터 '불가' 판정을 받은 서동만(상지대) 교수를 둘러싼 '색깔논쟁'에 대해 진보적 학자들이 정면 반발하고 나섰다.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상임공동대표 조희연)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공동대표 박상환) 소속 교수들은 29일 오전 서울 안국동 소재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자의 글을 색깔논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며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권의 서동만 교수에 대한 색깔 공세 중단을 촉구했다.

정해구(성공회대), 서관모(충북대), 박상환(성균관대) 교수 등은 기자회견문에서 "사상검증은 말할 것도 없이 냉전시대의 유물이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냉전시대의 벽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정말로 시대의 변화를 올바로 읽고 국가와 국민의 발전을 위해 애쓴다면 오래 전에 사라진 냉전시대의 논리를 되살려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들은 서동만 교수가 "북한사회의 형성에 관한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은 학자"라며 "'친북 좌파' 운운은 학문의 자유에 대한 탄압, 사상의 자유에 관한 자유민주주의의 원리를 부정하는 반민주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색깔논쟁은 '불순한 세력들'의 정치적 의도 실현을 위한 방법

학단협, 민교협 소속 교수들의 주장은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의 서동만 교수에 대한 색깔 공격이 전형적인 학문 자유의 침해라는 것. 특히 지난 2001년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필화사건'이나 1998년 '최장집 교수 사건'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김귀옥 학단협 연구위원장은 "87년 이후 서관모 교수 사건이나 서사연 사건 등 학문의 자유를 탄압해 온 대표적인 사례들이 7가지가 있다"며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러한 구시대적 행태가 유지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관련 <박스기사> 참조).

서관모 교수는 최근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불러일으킨 색깔론에 대해 "수구세력이 국가의 미래와 관련, 가장 중요한 정보기관의 민주화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학술단체협의회와 민교협이 주최한 '색깔논쟁 중단 촉구' 기자회견.
학술단체협의회와 민교협이 주최한 '색깔논쟁 중단 촉구'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김영균
서 교수는 이어 "색깔, 사상 논쟁은 수구세력이 자기들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걸어오는 마수"라며 "역사적 사례로 볼 때 이런 시도는 절대 성공하지 못했다"고 성토했다.

조희연(성공회대) 교수도 "색깔론은 묘한 정치적 과정을 거친다"며 "일부 정치인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보수언론이 받아 이를 국민적 의제로 만드는 과정이 그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또 "인간의 사상이 교수를 포함한 공직자들 평가에서 다원적 기준의 하나로 활용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며 "그러나 현재는 '사상 검증'이라는 하나의 기준이 다른 다원적 기준을 압도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조 교수는 "민주당 천용택 의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서 교수를 두고 '이런 사람을 앉힐 바에는 국정원을 해체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사람을 앉히고도 국정원 개혁이 안된다면 국정원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서동만 교수의 기조실장 임명에 '불가' 판정을 내린 국회 정보위를 강력히 비난했다.

한편 같은 날 한나라당은 논평을 내고 "서동만 교수의 기조실장 임명은 대국민 선전포고와 같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배용수 부대변인은 28일 서동만 교수가 청와대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 배석한 것을 두고 "고영구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도 모자라 국정원 살림을 총괄하는 기조실장 자리에도 이념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인물로 채우려고 혈안인가"라고 비판해 색깔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배 부대변인은 또 "만약 서 교수를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한다면 국민과 국회를 상대로 '막가자'는 선전포고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며 "노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고 오기와 독선의 정치를 계속한다면 우리당은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87년 이후 학자에 대한 색깔논쟁 사례들
88년 서관모 교수 사건부터 2001년 만경대 필화사건까지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한국사회에서 '학문의 자유'는 빠른 속도로 확산돼 왔지만, 일부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의 '레드 콤플렉스'에 진보적 학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개혁적 관료로 관계에 진출한 일부 진보적 학자들은 보수언론의 집중적 공격 대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93년 한완상 사건, 98년 최장집 사건 등이다.

다음 사례들은 87년 이후 색깔론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받았던 7가지 대표적인 사례들로 김귀옥 학술단체협의회 연구위원장이 정리해 29일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988년 서관모 사건- 1988년 6월 3일부터 이틀간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학술단체연합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서관모(충북대) 교수의 논문('중간 제계층의 구성과 민주변혁에서의 지위')으로 일어난 사건. 같은 달 8일 김동길 당시 연세대 교수가 <조선일보>에 이 논문을 북한의 혁명노선을 따라 혁명을 선동한 것이라고 주장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려 했으나, 여론에 밀려 무혐의 처리됨.

▶1991년 서사연 사건- 1991년 6월 27일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이 공동 집필한 '사회주의의 이론, 역사, 현실'(민맥, 1991)을 빌미로 기무사와 검찰 요원들이 연구원들을 연행한 사건. 연행된 6명 중 4명이 구속 기소돼 징역과 자격정지, 집행유예 등 실형을 선고.

▶1993년 한완상 사건- 문민정부 최초의 통일부 장관이었던 한완상 전 서울대 교수가 <월간조선>의 기사로 촉발된 색깔시비 때문에 물러나게 된 사건.

▶1994년 경상대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 1994년 경상대 장상환, 정진상 교수 등이 공동 집필한 대학교재 '한국사회의 이해'를 이념 서적으로 몰아 검찰 공안부 등이 수사에 착수한 사건. 당시 서강대 박홍 총장은 '주사파' 발언으로 한국 사회에 레드 콤플렉스를 불러 일으켰음. 그러나 집필 교수 8명은 2002년 재판에서 승소.

▶1997년 이장희 사건- 1997년 <월간조선>이 이장희(외국어대) 교수의 저서 '나는야, 통일1세대'를 이적 표현물로 공개 고발한 사건. 이 교수는 <월간조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지검은 이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음. 2001년 9월, 이 교수는 명예훼손 재판에서 승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대법원 계류 중.

▶1998년 최장집 사건- 1998년 <월간조선>이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최장집 교수의 저서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나남, 1996)을 부분 발췌, 인용해 '친북 인사'로 단정지으면서 촉발된 사건. 이로 인해 최 교수는 현직에서 물러남.

▶2001년 만경대 필화 사건- 2001년 북한에서 열린 8·15 통일 축전에 참가한 강정구(동국대) 교수가 방명록에 남긴 글로 인해 구속된 사건. 강 교수는 그 해 10월 보석석방 됐지만 현재 재판 1심에 계류중이고, 이 사건으로 인해 임동원 당시 통일부장관이 물러났다. / 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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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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