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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정과 쭈꾸미
소라껍데기를 줄줄이 매달아 아래로 떨어뜨려 놓으면 다리 여덟 개 달린 연체동물이 흐느적흐느적 제 집인 줄 알고 기어 들어가 꼼지락꼼지락 둥지를 틀고앉아 나올 줄을 모른다. '쭈꾸미'의 일생은 이 걸로 마감되는가? 어부들이 담가뒀던 줄을 꼬이지 않게 끌어올려 배 위에 놓으면 "어, 왜 이리 환하데유? 정말 눈부시는구만유~"하며 여유를 부린다.
곧 짜디짠 바닷물마저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제사 '아차, 큰 일 나부렀네….' 하며 여덟 개 모든 다리를 동원해 몸서리 쳐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잠시라도 바닷물을 담아둔 통에 안전하게 피신해 있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고 손님을 기다릴 밖에.
서울에서 장항선을 타고 가다 종착역이 있는 서해안 서천에 가보자. 낙지 비슷하게 생긴 '쭈꾸미'를 먹기 좋을 때는 500년 된 동백꽃이 '동백정(冬柏亭)'에 흐드러지게 필 무렵인 4월이다.
동백정이 있는 이곳 서천군 서면 마량에는 천연기념물 169호인 동백나무숲이 있는데 이는 동백(冬柏)이라기보다 춘백(春栢)인데 주변 해풍 때문인지 온 동산에 널려 있는 100여 그루가 구불구불하고 앉은뱅이처럼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 동백나무를 뒤로 하고 바라보는 일몰은 건너편에 작은 섬이 가까이 떠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같이 갔던 분이 "동백꽃에 꿀이 있어요…"했지만 "설마?"하고 그냥 지나칠 뻔한 일이 있었다. 조금 시간을 갖고 지켜보니 글쎄 아직 만발하지 않고 하늘을 보고 있는 동백꽃을 숙여 "탈 탈 탈" 손에 털어내는 것이다. 속는 셈치고 "한 번 먹어볼까요?"라는 말도 없이 남의 손에 입을 갖다대고 "후루룩 쭈욱~" 빨아 먹어보니 정말 꿀맛이었다.
쭈꾸미와 낙지는 한 집안
'쭈꾸미'라 부르는 '주꾸미'는 문어과(科)의 연체동물로 모양이 낙지와 비슷하나 몸이 더 짧고 둥글다. 산란기인 3월말 4월초에 맛이 좋다. 문어를 포함한 낙지, 쭈꾸미는 다리가 8개이며 오징어는 꼴뚜기 집안인 고로 다리가 10개이다.
주꾸미와 낙지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낙지는 몸길이가 70cm에 이르는데 반해 주꾸미는 약 20cm로 짧은 편이나 머리크기는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봄에는 주꾸미가 오뉴월 산란기를 맞아 제맛이고 낙지는 찬바람이 부는 10월 경에 맛있다. 목포 앞바다를 중심으로 한 서남해에 주로 분포하는 게 낙지라면 주꾸미는 군산에서 서천을 거쳐 태안, 강화, 백령도 부근에서 주로 잡힌다.
맛이 달콤하고 회 ·국 ·포를 해먹고, '성(性)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는 주꾸미와 낙지. 연안에서 심해까지 분포하지만 얕은 바다의 돌틈이나 진흙 속에서 갑각류나 조개를 잡아먹고 산다. 간의 뒤쪽에 있는 먹물주머니는 쫓기거나 위급할 때 먹물을 내어 주위에 물을 물들임으로써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한다.
주꾸미는 불포화지방산과 DHA를 함유하고 있으며 담석용해, 간장의 해독기능 강화, 혈중콜레스트롤치 감소, 당뇨병 예방과 시력회복 및 근육의 피로 회복 등에 좋은 타우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건강음식으로 선호하고 있는 음식이다.
주꾸미 볶음에 앉은뱅이 술 '한산 소곡주'
어떤 모임인지도 모르고 "쭈꾸미 먹자"는 통에 따라 나섰던 저녁 차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회에 무침, 샤브샤브를 먹기엔 많은 사람들이 갔던 터라 일괄적으로 볶음이 나왔다.
'쭈꾸미전골'은 육수를 반 그릇 정도 나직이 붓고 갖은 양념에 고추장을 넣는다. 남새로는 싱싱한 미나리, 쑥갓, 버섯, 깻잎에 들깨가루 한 숟갈이면 된다.
끓이기 전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던 주꾸미가 서서히 불이 올라오자 "~꿈틀~~. ~꾸움~틀" 요리조리 움직여 지네들이 알아서 양념을 고루 섞어 요리를 알아서 해준다. 살아 있을 때 마지막 힘을 다 발휘한 뼈 없는 해물이 끓으면서 안에 갖고 있던 육수를 마저 뱉어 쏟아내니 국물이 차차 흥건해졌다. 마저 더 끓여 국물이 봍아 줄어들면 한두 번 "휘~" 저어주면 그걸로 쭈꾸미 전골 완성.
먼저 머리와 다리를 가위로 자르고 다시 다리를 하나하나 분리하는 건 아무에게나 맡겨도 되었고, 제일 셈 나는 것이 머리통이었다. 가위로 머리를 자르자 안에서 쫀득쫀득한 찹쌀밥이 나왔다.
"그래 이 맛이야!"
마침 배도 고팠던지라 쉴새 없이 손이 움직였다. 일행이 50명 가까이 되었으므로 차리는 데만 10분 가량 걸려 어쩔 수 없이 먼저 나온 상부터 먹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늘의 백미(白眉) 모시로 유명하고 한번 입을 댔다하면 앉은뱅이가 된다는 술, 찹쌀과 누룩으로 빚은 "한산(韓山) 소곡주(素 酒) 납시오!"
1.8리터 큰 병에 담긴 소곡주는 청주에 가까웠다. 몇 순배(巡杯) 돌고 나니 진짜배기 '불 韓山 소곡주' 43% 증류주가 나와 한잔 탁 털어 넣으니 목 젓에 깔끔하게 확 불을 질렀다.
"캬~"
그제서야 이곳 저곳에서 서로들 한 잔씩을 돌리느라 여유를 찾은 느낌이다. 이러기를 두어 시간 보냈으니 쭈꾸미전골은 서너 차례 나왔고 술은 떨어지는 대로 식탁에 놓여졌다. 그래도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니 남은 국물에 넣고 둘둘 비벼 먹으니 행복 그 자체다.
동백정 구경과 쭈꾸미 요리를 맛본 다음시간이 남으면 해양박물관과 5월 초 '한산모시 축제'가 열리니 한 번 들러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