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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따, 거시기 아줌씨 아저씨 좀 비켜보소! 어디서 기자 양반이 소문을 듣고 날 보러 온 모양인데 또 당신들이 나서야 되겠소? 저기 뻘줌히 서서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치이며 눈 돌아가는 신참 기자를 보아하니 결국엔 말빨 좋은 내가 나서야겠구랴.
여기가 어딘가 하니 그 옛날 '백로가 놀던 나루터' 노량진이오. 내가 요즘 워낙 바쁘고 귀한 몸이다 보니 대신 날 알리고 관리하는 사람이 있소. 사람들은 그를 흔히 '경매사' 라고 부르오.
오늘 난 특별히 표홍기(48) 경매사를 소개할 예정이니 잘 들어보우.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서도 특히 이곳은 '눈 감을 틈 조차 없는 곳' 이니 부디 긴장하길 바라겠소."
"표 과장은 노량진에 들어온 지 22년된 최고 고참 경매사요. 그는 수산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여 가격 매기는 일을 하고 있소. 즉, 그가 부르는 가격은 한국 수산물의 공인 가격이 되는 것이라 이해하면 되오. 그는 우리가 적정한 가격에 매겨질 때 가장 기뻐하고 제 값을 못 받을 때 우리보다도 더 마음 아파하는 사람인 것이오.
만약 그가 없다면 서민들은 우리와 점점 멀어질 것이오. 그가 정해준 공인 된 가격이 없으면 우리의 가격은 사적인 이익을 남기는 중개상들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며 불안할 것이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시장체질' 이오.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단 한번도 그의 직업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는 진자 프로요. 좀더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저 '사람 냄새' 를 쫓아 이 곳으로 들어 왔소.
새벽 한 시에 출근 해 오전 열 한시에 퇴근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체력이 없으면 정말 살아남기 힘든 곳이 바로 이 바닥의 생존 원리요. 프로다운 몸 관리로 술 담배를 전혀 안하는 그는 건강한 미소로 항상 보는 이를 신명나게 해주고 있소."
"시계가 가장 빨리 달리고, '1초' 를 쪼개고 아끼며 일하는 이곳에 어찌 백로가 놀았는지 나는 모르겠소. 그를 따라다니는 그 어리버리한 신참 기자는 벌써 파김치가 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구랴.
그가 책정한 가격에 종종 중개인은 불만을 터뜨리며 시비를 걸기도 하오. 가끔 가격 책정에 말썽이 일어 중개인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 그는 괴로워 하기도 하오. 그러나 오히려 사람들은 서로 싸우면서 정이 드는 동물인가 보우. 오늘 멱살을 잡다가도 내일이면 다시 어깨 동무를 하는 그들을 볼 때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신기하게 느껴 질 때가 있소."
"이제 우리의 가격을 흥정하는 본격적인 경매에 들어섰소. 표 과장의 뒤를 밟는 신참 기자가 그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소.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다가도 경매가 시작되면 그는 냉정한 경매사로 돌변,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오."
"으미 오늘 시세가 장난 아니어 버리구먼."
"앗따! 성질 한번 겁나게 빠르네. 일단 기달려 보드라고."
"딴전을 피우는 중개상들이 그를 애태우고 있소. 표정들을 보아 하니 표 과장을 꽤나 속썩이게 생겼구랴. 그들이 기지개를 키고 안경을 올리며 괜히 옷의 먼지를 터는 등 갖가지 손놀림으로 신호를 보내오. 능청스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재미있는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겠소."
"오늘은 물량이 많아서 인지 그가 더 고생을 하는 것 같소. 물품이 빠지며 들어오고 나가는 노량진의 북새통이 아마 서울의 교통 체증보다도 더 복잡할 것이오. 사는 게 지루하거나 귀찮은 사람이 있으면 노량진으로 나들이나 한 번 와 보우. 내 다른 말 할 것 없이 딱 한 마디만 하리라. 경매사와 중개상의 접전을 5분만 보면 그들의 치열함에 섬뜩함을 느낄 것이오.
뭐든지 각자 위치에서 혼신을 다하는 그 모습처럼 아름다운 건 없는 것 같소. 아옹다옹 부대끼며 서로 경쟁하는 모습에 가끔 아가미가 떨릴 지경이오."
"도대체 이 사람은 언제 어떻게 숨을 쉬는지 모르겠소. 그는 항상 남이 하기 전에 먼저 일을 하는 능동적인 사람이오.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목엔 땀방울이 소리 없이 흐르는 구랴. 이 사람 참 융통성도 없소. 남들 안보는 사이 잠깐 땀이라도 식히면 좋으련만 어찌 그리 쉴 새 없이 움직이는지. 어느 새 아침 해가 인사를 하는데도 그는 정신이 없는지 받아 주지도 않는구료."
"목이 아파 연신 죽염을 먹으면서도 그가 목소리를 있는 힘껏 뽑아 내오. 이런 아버지를 둔 두 아들이 부럽소. 그는 두 아들이 적어도 자신보다 더 낳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말하오. 하지만 지금의 일에 만족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삶보다 더 낳은 무엇이 있을까 과연 궁금 할 따름이오."
"열심히 한다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좀 쉬엄 쉬엄 했으면 좋으련만. 뭐가 그리 좋은지 짜증 한 번 안 부리고 호탕하게 웃기만 하오. 사람이라는 동물 참 이해 할 수가 없소. 내 지금은 비록 '숭어' 이지만 꼭 다음에는 '사람' 으로 태어나 한번 살아보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