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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인 5월 1일 저녁, 광화문 열린광장에서는 핵폐기장 추진 반대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핵발전과 핵쓰레기장의 오만과 탐욕을 참회하기 위한 촛불기도회'란 이름의 이 집회는 소주제를 달리하며 3일째 열렸다.

첫째 날에는 종교간 연대, 둘째 날에는 시만사회단체간 연대, 셋째 날에는 지역간 연대를 주제로 기도회가 열렸으며, 마지막날인 5월 1일에는 원불교 교무들과 교인들, 각 지역 주민, 시민사회단체 참가자 등으로 약 700명이 모였다.

▲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기도회 전경
ⓒ 황윤길 제공
사회를 맡은 정상덕 교무는 핵폐기장 추진 중단을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김성근 교무의 단식이 오늘로써 35일째라는 사실과, '핵폐기장 후보지 백지화와 핵발전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1천인 선언'으로 1056명이 만원씩 모아 15일간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1면에 반핵 광고를 내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집회를 시작했다.

곧이어 기도가 시작되었다. "우주 대자연의 순환 원리"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은혜의 관계" 때문에 모든 것이 소중하지만, "물질 세력만 날로 번성하여 자연 파괴가 인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인류의 지나친 욕심으로 생긴 핵무기, 핵에너지, 핵쓰레기는 안전하고 깨끗한 상생의 에너지가 아니라 수십만년 동안 보관해야 하는 무서운 죽음의 쓰레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35일째 단식 중인 김성근 교무의 순일한 정성이 세상을 감응시켜 핵 없는 세상을 이룰 수 있길 바란다"는 내용의 기도문이 낭송되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제작한 반핵운동의 역사를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었고, 이어 강재윤 원불교 천지보은회 사무처장이 반핵국민행동의 경과를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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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폐기장 반대 ' 36일째 단식중 김성근 교무 쓰러져


"지역간 연대와 단결만이 핵폐기장을 막아낼 수 있다"

▲ 반핵국민행동 경과보고 중인 강재윤씨
ⓒ 황윤길 제공
사회자는 오늘의 집회가 지역 연대 자리인 만큼 원래 핵폐기장 반대 투쟁의 선구자격인 굴업도와 안면도의 주민들도 초청하여 발언을 들으려고 했으나, 굴업도와 안면도의 주민들이 "죄송하여 못 가겠다. 전국적으로 핵폐기장을 못 짓게 막았어야 했는데, '우리 굴업도만 안 된다, 우리 안면도만 안 된다'고 해서 지금 또 이런 상황을 만든 것 같아 죄송하다"고 고사했다고 밝혔다.

첫번째 지역 연대 발언에 나선 울진 핵폐기장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인 황윤길씨는 "2월 4일의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은 김대중 정권이 임기 종료를 며칠 앞두고 행한 반민주적 폭거"라고 정의하고 "명분도, 정당성도, 합리성도 없다"고 외쳤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반핵평화를 지키고 후손들의 미래를 위한 반핵운동"이라고 말하며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은 노무현 정권에게 결정적인 책임이 있고 실패한 정권이 되지 않으려면 당장 핵폐기장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가 검은 돈을 뿌리며 지역을 분열시키는 부도덕한 핵폐기장 유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과기부장관 직인이 찍힌 공문과 산업자원부 장관 직인이 찍힌 공문을 통해 두 차례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울진에는 핵폐기장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을 저버렸다"면서, 울진 뿐 아니라 나머지 세 지역도 지형과 지질 면에서 문제가 많은 지역인데 졸속 지정했다고 설명하며 네 지역이 똘똘 뭉쳐 연대해야 이번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윤길씨는 "단결하면 이깁니다!"라고 외치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두번째 지역연대 발언자는 고창 핵폐기장건설반대 대책위원회 정책실장인 박정용씨였다. 박씨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는 '한수원'이라는 명함이 아니라 돈 3만원을 들고 고창에 나타났다"면서, "이렇게 돈을 주고 엄지손가락을 사서 서명을 받아낸 것이, 내용도 모르고 지장을 찍은 1만5000명들"이었지만, 이제는 군민의 98%가 핵폐기장을 반대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계속해서 한수원의 행태를 폭로했다. "핵폐기장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반대하는 사람들을 한수원은 관광을 보내주며 회유하고 있다. 대덕 연구 단지, 영광 원자력발전소로 관광버스에 태워 보내고 있다. 또 잔디밭 위에 아이들이 뛰노는 일본의 로카쇼무라 핵폐기장 사진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그러나 고창 사람들은 이제 핵폐기장이 자손 만대에 위험함을 알았다."

지역의 소외감이 자칫하면 지원금을 받고 핵물질 반입마저 용납하는 상황으로 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 대해, "전북 도지사가 익산에는 양성자 가속기라는 첨단 시설을 들여놓을 테니, 대신 고창이 핵폐기장을 받으라고 하고 있다. 지역이 낙후되었으니 고창 너희가 전북을 위해 희생하라고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고창에는 대규모 반대 궐기 집회가 일어났고 상경 집회도 수천 명이 참가했다. 우리는 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 것이고, 도청도 점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창의 상황이 정말로 급박하다"
고창 대책위 박정용씨 인터뷰

고창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박정용씨(34)는 핵발전소 유치 활동을 하고 있는 30명과 땅을 팔고 떠나려고 하는 몇 명을 빼놓고 고창 지역주민 대다수와 군의회와 군수 등은 모두 강경하게 핵폐기장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군수도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군의회가 전원 찬성으로 핵폐기물 반입 금지를 선언했지만 지역 상황은 정말로 급박하다고 한다. 전북대 총장과 교수 몇 명이 핵폐기장은 완전하게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핵폐기장을 받아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고, 강현욱 도지사도 고창이 희생해서 전북을 살리라고 협박하고 있다고.

"전북 도지사 집무실에 유리고형화(핵폐기물의 부피를 20%로 줄이는 기술) 핵폐기물을 갖다 놓았다고 (그만큼 핵폐기물이 안전하다고) 선전되었습니다. 확인을 하기 위해 반대대책위에서 찾아갔더니 치워버렸더군요. 진짜 핵폐기물이 아니라 핵폐기물 모형이었죠. 만일 진짜 핵폐기물이었다면 방사성물질관리법 위반이고, 가짜 핵폐기물이었다면 사기죄입니다. 전북대 총장이 핵폐기장 안전하다는 설명회를 열어서 반대대책위에서 설명회 장소에 갔더니, 도지사는 자리를 피하고 총장은 주민들을 보자 핵폐기장이 안전하지 않다고 다시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고창은 양성자가속기사업을 아예 받을 불씨조차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양성자가속기사업과 방사성폐기물사업을 연계해도 반대투쟁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금은 핵폐기장 반대 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범고창군민대책위원회 홈페이지에도 들러 달라고 부탁했다. http://www.negohyang.org / 김나희

세번째 지역 연대 발언자인 영광 대책위의 김용국씨는 "우리들은 거지새끼가 아니다. 돈 3천억원 줄 테니 죽음의 쓰레기를 받으라고 하면 받을 것이라고 (정부가) 대단한 착각들을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또 언론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계속 투쟁해왔다. 국회에서 교섭을 위해 뛰어다녔고 김 교무는 35일째 단식 중이며 대규모 집회를 연이어 열었다. 이렇듯 중요한 사안이지만, 언론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옛날 군부독재 때 안기부에서 언론을 통제하듯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어느 부서도 핵폐기물 정책에 견제할 능력이 없다면서 "어느 지역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도 미래가 파괴되고, 수송하다 사고가 날 수 있고, 임해지역에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왜 이런 위험성에 대해 책임지는 부서는 없는가"하고 질문했다.

이어 이번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 용역을 담당한 동명기술 공단이 전혀 전문성 없는 곳임을 설명하였다.

"동명기술공단은 도로, 집 같은 것을 건설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47개 임해지역의 지질과 해양을 모두 어떻게 조사했다는 것인가. 수십억원을 불법으로 핵폐기장 유치 활동에 쏟아붓고, 용역 비용은 단 3억원이었다. 이러한 용역 결과로 어떻게 안전성을 믿을 수 있는가."

영광 출신인 자신은 서울에 와서 전기가 정말로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영국은 우리 나라의 2-3배의 GNP인 나라인데, 우리나라가 영국을 일인당 전기소비량에서 능가했다. 한수원이 전기를 펑펑 쓰게 권장해 놓고, 전기가 모자라니까 또 지어야 한다고, 한 줌도 안되는 핵산업계 사람들이 전국민을 우민화하고 있다."

또한 영광에 핵발전소가 들어와서 지역발전이 된 것은 완전한 허구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양성자가속기를 만들려는 것은 결국 핵무장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양성자가속기를 만들고, 다음 단계로 재처리 시설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고속 증식로를 만들려는 겁니다. 일단 양성자가속기가 들어선 지역은 핵 천국, 즈그들의 천국이 됩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김성근 교무의 건강을 기원하며 내려갔다.

▲ 왼쪽부터 울진의 황윤길씨, 고창의 박정용씨, 영광의 김용국씨
ⓒ 황윤길 제공


핵발전 문제에 언론 너무 무관심

핵폐기장 반대 서명 부스를 지키며 자그마한 반핵 배지도 팔고 있는 이제용 교무는 환경 문제에 관심은 있다가 지난 2월에 핵폐기장 후보지 발표가 난 것을 계기로 반핵 운동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본인도 핵 문제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면서, 한전에서 끌고가는 정책을 다들 막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고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는 것 같다고. 원불교 내부에서는 핵 문제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해서 새롭게 인식하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김성근 교무의 단식에 대해, 주위에서 종교적인 고행으로 곡해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종교인이 하는 단식이라고 해서, 종교적인 도그마로 뒤집어 씌워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 이 단식은 종교인으로써 하는 게 아니라, 핵폐기장 추진이라는 사안에 대해서 하는 것인데요."

언론의 홀대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사촌동생이 일간지 기자인데도 여전히 핵에 대해서는 편협한 사고를 하고 있더라구요. 기자라면 상반된 의견을 잘 들을 줄 알았는데... 핵 문제는 방송에도 잘 나오지 않고. 언론이 너무 무관심합니다."

언론의 홀대에 대해서는 김대선 반핵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도 한 마디 했다. "<오마이뉴스>에 이 기사 좋은 자리에 실어 달라고 해요. 좋은 자리에 안 실어 주면 거기 편집부 보고 내가 뭐라고 해야지."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씨는 정권이 바뀌고 핵발전 정책 관련해서 달라진 것이 있냐고 묻자 '더 심해졌고 더 교활해졌다'고 잘라 말한다.

▲ 5월 1일 낮에 청와대 정책실장 면담을 마치고 김성근 교무 방문
ⓒ 황윤길 제공
"오늘 발표난 거 봤어요? 핵폐기장 건설에 성공하는 업체에게는 신고리 3,4호기 사업을 수의계약하겠다고 한 거."

무식한 기자가 수의계약이 무엇이냐고 묻자, 경쟁입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영향평가나 사업 능력 같은 것과 전혀 무관하게) 무조건 그 건설 사업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로 가도 핵폐기장만 지으면 핵발전소도 덤으로 짓게 해 주겠다는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 발언 중에 울먹이는 환경운동연합 김혜정 사무처장
ⓒ 황윤길 제공
양이씨는, 노무현 정부가 자신있는 부분은 토론으로 때우고, 자신없는 부분은 토론이나 민주적 절차 같은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밀고 나간다고 분개했다.

집회 마무리 즈음에 이선종 교무는 향후 계획을 발표하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는데 바로 '진리'이다. 그 다음으로 무서운 것은 대중의 힘이다. 핵 문제는 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입을 떼었다.

"35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김성근 교무가 완강하게 단식을 고수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천지보은회 대표로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내일 강권으로 김 교무를 입원시키겠다"고 말하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어 이 교무는 "대정부 정책전환 촉구, 범시민운동, 1천만명 서명 운동, 핵 바로 알기 인터넷 교육, 세미나, 심포지움, 강연, 반핵 현수막 걸기와 반핵 배지 달기" 등의 반핵 운동을 총체적으로 벌여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집회참가자들에게는 "어둠은 불을 밝히면 곧 물러간다"며 곳곳에서 '밝은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 힘겹게 발언 중인 김성근 교무
ⓒ 황윤길 제공


'한 사람의 열 걸음을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절박한 사유와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한 무기한 단식을 멈추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해결책을 얻어 단식의 원인 자체를 없애는 것, 또는 단식 중단과 더 많은 이의 적극적 참여를 맞바꾸는 것.

즉, 첫번째는 생명과 미래를 위협하는 절박한 사유를 없애는 것이겠고, 두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의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다.

보길도 댐 공사를 막아낸 강제윤 시인이 단식을 멈춘 것은 첫번째였지만, 김성근 교무의 단식을 멈춘 것은 첫번째가 될 수 없을 전망이다. 핵폐기장 문제에서는 정부가 훨씬 더 완고했다.

원불교 서울교구장은 "김성근 교무가 단식을 중단하면, 우리가 그 뜻을 이어서 확대하겠다. 반핵운동은 혼자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니 우리 모두가 나누어서 하겠다. 김 교무가 단식을 중단하면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릴레이 단식-농성을 할 것이다. 김 교무가 단식 시위를 벌였던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단식 시위를 계속하며, 동시에 정부청사 앞 열린광장 앞에서 성직자 10명의 단식농성도 병행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김 교무에게 단식을 중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제 서 있고 말하는 것도 힘든 김성근 교무는 마지막 힘을 내어 발언대에 섰다. "단식 투쟁을 하게 된 이유는 다만 다른 사람보다 핵을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핵을 알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핵 운동에 뛰어들겠다고 결의해주셔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하고 이런 반핵 의지를 받아들이겠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은 에너지 절약 10대 실천 과제를 낭독했다. 에너지 20% 절약 운동을 실질적으로 벌여 나가고, 원불교 영산 성지에 풍력발전을 비롯한 대체발전소를 세우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끝난 이 집회를 지켜보면서, 다시금 궁금해졌다. 과연 지척의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에서는 이 간절한 소리를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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