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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가도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는 아득하기만 한 만주 벌판. 이육사의 <광야> 시구대로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은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 그대로였다.
가도가도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는 아득하기만 한 만주 벌판. 이육사의 <광야> 시구대로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은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 그대로였다. ⓒ 박도
조선족 동포

장춘역 대합실은 여름 휴가철 탓인지 초만원이었다. 역 광장까지 줄이 늘어섰다. 김 선생은 입장료를 따로 내는 2층 일등 대합실로 안내했다.

이곳도 많은 승객들로 붐볐지만 그래도 의자에는 빈자리도 더러 있었고, 대합실 한 쪽에는 텔레비전도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는 일반 대합실 손님보다 먼저 개찰을 해 주었다.

돈은 사람을 귀하게, 편하게 해 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도 돈이 이처럼 위력을 발휘하니 온 세상사람들이 대부분 돈 앞에 무릎을 꿇나 보다.

지구촌 전체가 개도 물고 가지 않는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심지어 전쟁까지 하는 등 일대 몸살을 앓고 있다.

장춘-도문(圖們)간 야간 열차 승객은 대부분 장거리 손님으로 연길-도문에 사는 조선족이 많고 도문에서 국경을 넘어가는 북한 동포가 더러 있다고 한다.

나는 어쩌면 열차 안에서 북한 동포를 자연스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가졌다. 행여 북한 동포를 만난다면 그에게 북한의 실상을 듣고 싶었고, 서로 마음을 열고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문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드넓은 동아시아 만주 대륙을 밤 열차로 달린다. 몸은 좀 고달플지라도 얼마나 낭만적인가? 거기다가 마음이 통하는 승객을 만나서 밤새워 정담을 나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이 어디 있을까?

그 승객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그야말로 비단에다 수놓은 격일 게다. 여행은 사람을 감상에 젖게 하고, 또 쉽게 사람을 사귀게 한다. 이는 여행이 갖는 묘미다.

여행가들은 좋은 여행의 삼대 요건으로 교통ㆍ날씨ㆍ숙박시설을 꼽는다고 한다. 여기서 교통은 꼭 빠르고 편한 것만은 아닐 게다. 시간이 다소 넉넉하다면 낯선 고장 풍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열차나 버스 편이 오히려 여행의 진수를 맛볼 테다.

각 교통편은 그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어쩌면 여행의 참 맛은 값비싼 호화 여행보다 조금은 고생스러운 여행일 테다. 자전거나 도보여행, 완행열차나 버스여행으로 발길 닿는 대로 낯선 나라의 뒷골목과 시골마을을 누비면서 값싼 그 나라 고유 음식을 맛보고 덧칠하지 않은 그네들의 인정에 동화되는 게 더 멋진 여행이리라.

하지만 이번 답사 여행은 짧은 기간에 넓은 중국 대륙을 누비는 빡빡한 여정이기에 주로 비행기나 승용차로 짜졌다. 하지만 창춘에서 연길행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야간 열차를 탔다. 두 분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로서는 열차 여행이 무척 다행이었다.

일등 대합실을 거쳐 플랫폼에 나가자 밤 9시에 출발하는 도문행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객실을 20량 정도 이은 긴 열차로 대부분 좌석을 침대로 바꿀 수 있는 객실이었다.

내가 든 객실은 특실인 탓으로 1실이 4인용이었는데, 내 좌석만 딴 방이었다. 두 분은 다른 객실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튼 우리말이 통하는 조선족이었으면 좋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한족(漢族)이라면 하룻밤이지만 얼마나 괴로우랴.

일반 대합실은 개찰이 늦은 탓으로, 한참 후에야 40대 초쯤 되었을 한 여자 승객이 들어왔다. 꽤 미인이었다. 막상 미인을 만나고 보니 당혹감이 앞섰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동포의 낡은 초가집
연변조선족 자치주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동포의 낡은 초가집 ⓒ 박도
중국 땅에서는 외모로는 한족과 조선족이 구별되지 않았다. 서로 어색한 목례만 나눴을 뿐이었다. 초면에 주책없이 말을 늘어놓는 일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 게다.

나는 그를 마주 쳐다보기가 민망하여 차라도 마시려고 보온병을 들자, 그가 물 컵을 찾아주면서 반기는 얼굴로 먼저 말을 건넸다.
“서울에서 오셨습네까? 반갑습니다”

반가운 우리말이었다. 낯설고도 액센트가 강한 북한 말씨였다.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차림새가 서울에서 유람오신 분 같습니다.”
‘유람’이란 말이 생소했다. 관광을 뜻하는 모양이었다.

“조선족이라서 반갑습니다. ”
“어디까지 가십니까?”
“연길까지 갑니다.”
“저도 연길까지 갑니다. 그럼, 백두산 유람 오셨군요.”
“네, 백두산도 오를 예정이지만, 동북 일대 여기저기를 둘러보러 왔습니다.”
그는 연길에 사는 조선족 김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새 30대 후반쯤의 한 남자 승객이 들어왔다. 그는 한족이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여인과 중국말로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30대 초반쯤의 한 남자 승객이 들어왔다. 다행히 조선족 청년이었다.

그는 연길에 있는 연변대학 부설 농업연구소에 복무(근무)하는 황씨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명함까지 건넸다. 그 역시 강한 액센트의 북한 말씨였다. 이곳에서 만난 조선족 대부분은 북한 말씨를 썼다. 동북지방은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깝고, 그동안 북한과는 교류가 있은 탓인가 보다.

내가 끼어들면 조선족 세 사람이 우리말로 대화를 나눴고, 내가 빠지면 그들 세 사람이 중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은 대부분 우리말과 중국말 모두가 유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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