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후세인의 권력이 무너졌다. 호가호위라고 자천 타천으로 후세인 이후 권력 핵심에 서려는 이들의 아전투구가 시작되었다. 미국에 선을 대고, 이란에 선을 대고…. 나름대로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들을 둘러싸고 이라크내 쿠르드와 아랍계간의 갈등, 순니와 시아파 간의 주도권 경쟁, 국내파와 해외파간의 정통성 시비, 민족주의 운동 진영과 이슬람 원리주의 진영간의 이념 갈등이 뒤엉켜지고 있다. 이 모습을 바로 이해하려면 한국의 해방 정국이 교과서가 될 법하다. 어쨌든 최소 공식적인 대통령으로 24년간 절대권력을 행사해온 후세인이 사라진 지금 이라크는 미국에 의해 주어진 강제된 '자유'가 아닌 스스로의 운명에 책임을 지려는 '자유'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 바그다드 미군 경계선에 다가선 이라크 주민들. 이라크인들은 아직 이라크의 해방은 찾아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 김동문
이라크판 해방 정국을 바라보는 우리 한국인들의 관심은 먼저 누가 차기 대권을 쥐는가일지 모른다. 사실 후세인 이후를 책임질 차기 정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른바 해외에서 망명정부와 반체제 단체들을 이끌어왔다는 이들이 명함을 내밀고 있는 것이 그리 낯설 것도 없을 법하다. 그러나 이라크 민심은 이들에게 별다른 신뢰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후세인이 문제라면 이들 반체제 인사들도 '뭐 묻은 개 뭐 묻은 것 나무랄 수 없다'는 식의 비평이 뒤따르고 있다.

미국을 배경으로 대통령이 된 듯 바그다드에 입성한 아흐마드 찰라비와 그의 휘하 병력들은 해방군이라도 된 듯 권력과 부귀를 누렸던 후세인 시절의 호사가들의 재산들을 챙기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고만고만한 이들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린 것을 보면 한국의 해방정국을 연상시킬 내홍을 치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라크 안팎의 민심은 이라크는 이라크인들에게 맡겨두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미' '미군 물러가라'는 목소리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미군이 주둔중인 바그다드 중심 사둔 거리는 물론 곳곳에서 지방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미군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우리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제 되었다. 미군은 물러가라." "이라크는 이라크인들의 땅, 우리 스스로 다스릴 것이다." 이 와중에 벌써 이미 바그다드에는 구관이 명관이라며 후세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라크 권력의 새로운 주인을 찾기 전 과도단계로서 이제 이라크는 군정기구로 비상 체제로 가게된다. 군정기구는 이라크재건인도처(ORHA)를 일컫는다. 그 수반은 제이 가너 미 예비역 장군이고, 지도부는 가너를 비롯한 4인방이 주도한다. 군정 지도부는 구호품지원과 인프라 재건, 민주화를 위한 정치과정 도입 등 과도 행정업무를 맡는다. 북부지역은 모술에 지휘부를 둔 브루스 무어 예비역 장군, 바그다드를 포함한 중부지역은 바버라 보다인 전 예멘 주재 대사, 남부지역은 바스라나 움 까스르에 지휘부를 둔 버크 월터스 예비역 장군이 맡는다.

이같은 일련의 통과의례를 바라보는 바그다드 민심은 단순하다. 누가되든 상관없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라크 국민들이 선출한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이다. 바그드다에서 만났던 이들은 후세인 이후 누가 권력을 잡아야하는가하는 질문에 "여기 있는 이 사람도 바로 저 사람도 다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라면 누군들 못하겠는가? 문제는 국민들의 민의와 무관하게 낙하산 식으로 미국을 등에 업거나 이란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고 힘을 행사하려는 이들은 이라크에 득될 것 없는 존재들이다"라고 답했다. 해외파들에 대한 적대감과 거부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라크인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정권과 정부를 세우고 싶어하는 것과 달리 이란이나 미국은 자신들의 입김과 영향력을 전후 이라크에 쏟아부으려 신경전을 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제적인 무리수를 동원한 상태에서 이라크 전쟁을 수행한 미국으로서는 이라크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에 우호적인 존재가 이라크의 권력을 장악하도록 미국측이 부산하게 움직일 것은 분명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금도 점차 커지고 있는 반미 민심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강하게 충돌할 것이다.

역사 청산의 과제도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려는 어떤 진영도 넉넉한 인물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미군정에서도 인물난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후세인 치하에서도 갖은 특권을 누렸던 이들중 상당수가 다시금 차기 정권에서도 그 힘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일제 잔재 청산이 인적 자원 부재라는 이유로 실패했던 우리의 경험이 이라크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후세인 정권에서 활동했던 모든 사람을 이라크 민심이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인재난이라고 하더라도 옥석을 가려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람들이 보인다.

권력의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를 보는 또다른 관심사는 변화의 축이며 민중 권력의 핵이라할 시아파의 움직임이다. 전체 2600만명중 65%에 이르는 이라크 시아파들은 절대다수였음에도 권력의 소수파였다. 이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시아파는 전시 상황에서 비상체제를 가동하여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지켜내면서 신망을 더욱 얻었다. 약탈과 방화가 시작되던 때에도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들은 자경단을 구성하여 지역 치안이나 안전을 도모하고, 병원을 열어 응급 환자를 담당하는 가하면 구호금을 활용하여 구제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가 사라진 지금 이들은 실질적인 지역 행정력의 구심이 되고 있다. 지역 기반과 민심의 지원을 바탕으로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특별히 '이란파'라할 알하킴이 이끄는 이라크 이슬람 혁명 평의회 등은 미군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자신들의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민심은 이란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슬람 법이 통치하는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진영에서조차도 이란식 이슬람 혁명에는 반대하고 있다. 극단적인 입장에 선 이라크 이라크민족해방기구(INRO)는 이미 미군을 상대로하는 철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조만간에 어떤 형태로든간에 미국 주도로 이어오던 경제제재도 해제될 것이다. 다시금 석유 수출도 정상화될 것이다. 오랜 기간동안의 바쓰당 일당독재 체제가 붕괴되면서 초래된 새로운 시대를 그들 스스로 펼쳐가기를 원하고 있다. 자칫 다양한 외부 세력의 대리전장터로, 계파와 정파, 종파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더 큰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라크인들은 그들 스스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신뢰한다. 전쟁중에도 석유가격이 폭등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한때 달러당 3000이라크 디나르 이상으로 폭등 기미를 보이던 달러화의 강세 현상이 전쟁 전 상황인 2000 디나르 수준으로 돌아간 점 등은 이라크인들의 미래를 가늠해볼 의미심장한 키워드이다.

"이제 되었다. 그대들에게 고맙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땅에서 물러가달라. 우리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다..." 이라크인들의 바람과 미래에 대한 선택권은 전후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라크 안팎 세력들의 이합집산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점이 안타까운 대목이다. 오늘도 이라크의 중심 바그다드는 움직이고 있다. 그 오랜 역사와 문명을 젖줄을 간직한 채로.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동문은, 아랍어를 전공하였다. 아랍 이슬람 지역의 과거와 현재의 문명과 일상, 이슬람 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그 것을 배우고 나누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