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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시를 왜 쓰고, 소설을 왜 쓰니?"
시인을 꿈꾸고 소설가를 꿈꾸는 아이들이 모인 고등학교 문예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아실현’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잠시 후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잖아. 그럼 혼자 본 게 아쉽잖니?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는 거야. 예술은 삶을 그렇게 나누는 거야.”
당시 시인을 꿈꾸던 한 아이는 선생님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교육 극단 ‘달팽이’의 대표 박주영 씨(39). 그에게 정해진 공식 직함은 없다. 극단 대표, 극작가, 연출가, 배우, 대학 전임 강사, 생활 수련 공동체 지도자까지 그의 영역은 참 넓다.
그가 인생의 전부를 걸었다는 교육 연극은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영역. 연극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극적 기술과 방법을 교육적 목적을 가진 여러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관객과 소통하는 거죠. 관객이 단순한 관중이 아닌 창조자가 되는 거예요. 같이 참여하는 거죠. 교육 연극은 극장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도 이루어지는 거예요. 관객도 변하고 사회도 변했는데 아직도 19세기 때의 연극을 고수할 건가요? 지금 밖은 전쟁과 환경 파괴로 아수라장이 됐는데 무대 위에서는 고고한 척할 건가요? 무대는 열려 있어야 해요.”
공연이 끝났다. 관객이 돌아간 텅빈 객석과는 달리 분장실은 분주하다. 땀과 열정이 흥건한 분장실을 박주영씨는 찾는다. 그는 처음 배우로 연극 무대에 뛰어 들었다. 그래서인지 박주영씨는 누구보다도 배우를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연출가이다.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 연출가로서의 그가 배우들에게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은 “맑아라” 는 것.
“그 작품에 맑고 솔직하게 응해야 돼요. 열려 있어야 하는 거죠. 관객과 상대 배우의 반응에도 열려 있어야 해요. 신성한 무대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돼요.
배우를 무시하고 연극이 살아날 수 없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배우들에게 출연료는 꼬박꼬박 줬어요. 배우와 관객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배우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중요하죠.”
사무실에 유독 작은 책상 하나가 눈에 띈다. 다른 책상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갈색 책상은 바로 그의 자리. 항상 바쁘게 돌아다니니 책상을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만약 하루라는 시간을 정할 수 있다면 얼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전 24시간으로도 충분해요. 시간이 부족한 듯 바쁜 게 절 밀도 있게 만들어주거든요.”
초등학교 3학년인 외동딸 성애와 그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얼굴을 본다. 아이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그이기에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한다. 아이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아빠임을.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전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이에요.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준다는 것, 바로 그것이죠.”
“사람들은 물고기를 기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물을 기르는 거예요. 물이 깨끗해야 물고기가 살 수 있거든요. 사람들은 먹이를 제때 주지 않아 물고기가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물이 오염돼서 물고기가 죽는 거예요.”
그의 취미는 ‘물을 기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실엔 커다란 수족관과 작은 어항들이 많다. 이 수족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판단할 있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된다. 수족관에 이끼가 많을수록 그만큼 그가 바쁘다는 증거.
깊은 밤 새벽 두 시 그가 생활 수련장을 찾았다. 연습실로도 사용하는 이 공간에서 그는 자신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10년 전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생활 수련을 접하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수련하면서 조화와 열림, 소통, 해냄 등을 배워요.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그대로 이뤄져야 건강한 사회가 되는 거죠.”
올 초 공연을 끝낸 ‘아나콘다의 정글 모험’은 환경보존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미국 교육연극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8월 뉴욕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한국 교육연극의 새벽을 열고 있는 그의 꿈은 언젠가 꼭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는 것이다.
“일본에 ‘원령공주’가 있다면 한국엔 ‘아나콘다의 정글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