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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00분토론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의 촛불시위 자제요청과 헌법 제21조(집회의 자유), 그리고 '반미교육' 실태파악지시와 헌법 제31조(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MBC 100분토론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의 촛불시위 자제요청과 헌법 제21조(집회의 자유), 그리고 '반미교육' 실태파악지시와 헌법 제31조(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 청와대 제공
[배성옥 초등 교사의 선문]: "대통령께서는 저희 반 아이들에게 학급 담임선생님이 되셨다고 생각하시고,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속세 중생들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으로 보이는데 대통령께서는 '국익을 위해' 위헌적인 파병결정을 했다. 이 잘못된 약육강식의 결정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노 대통령의 선답]: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대통령으로서 공개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다시 속세 중생들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닌 바람직한 세상의 당위의 논리만을 가르쳐라. 대통령의 자리는 당위의 논리가 아닌 현실의 논리를 실천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교사의 논리와 대통령의 논리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라.

초등 교사의 의문은 충분히 풀렸을까? 노 대통령은 답변이 미진했다고 생각했던지 이렇게 덧붙였다.

"선생님께서 그 아이들에게 김옥균 선생과 함께 한 개혁당 분들의 소위 '갑신정변'을 어떻게 가르치고 계신지요. 그리고 병자호란 시대에 최명길 선생과 김상헌·윤집·오달제·홍익한 등 삼학사의 노선 두 개 중에서 어느 쪽으로 가르치고 계신지요. 또한 해방 이후에도 많은 선택이 있었는데, 김구 선생의 단정 불참을 어떻게 평가하고 가르치고 계신지요. 선생님, 어떤 선택대로 말씀을 하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정답이 있겠습니까?"

요지가 무엇이었을까? 이건 좀 어렵다. 그렇지만 선의로 유추해보자. 이런 의미가 될 듯싶다.

역사에는 어려운 결단의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그 결단이 반드시 당위적으로 옳은 길만을 향할 수는 없다. 그런 결단들이 오히려 현실의 어려움을 야기할 수도 있고 실패의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당위적으로 그런 문제들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곧 현실의 삶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 현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존재론적 삶과 도덕적 차원에서 말해지는 당위론적 삶은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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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 대통령은 "질문 형태로 드리는 답변"이라며 더 이상의 토론을 원치 않았다. 국민과의 대화형식이었으므로 기자가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노 대통령이 제기한 이 문제에 답변해도 큰 무례는 아닐 듯싶다. 토론 중에 경황없이 잘 정리되지 않은 형태로 나온 표현을 문제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이 당위의 세계에서만 머물러 있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권력)은 그 '정답'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선 노 대통령의 말대로 기자 역시 그 문제에 정답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학문의 자유'를 누리는 대학강단이 아닌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초·중·고교 교단에서도 학생들에게 결코 '당위만을' 가르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이 현실의 세계에서 결단을 하면서도 당위를 고민하듯이 당위를 가르치는 교사도 현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하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일들을 막거나 학교에서는 모든 구체적 현실에 눈감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면 이것은 교육을 모독하고 교육자를 거짓말쟁이로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노 대통령도 현실의 세계에 눈감(게 하)고 당위의 세계만을 가르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지만 과연 그랬을까?

노 대통령은 22일의 국무회의 석상의 '반미교육' 실태파악 지시가 사회적 파장이 일어나자 24일의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했다.

"반전 교육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다만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서 반미로 가는 것은 곤란하니 한번 조사해 보라고 한 것인데 마치 반미교육으로 단정한 것으로 보여졌다."(<오마이뉴스>, 4월 24일자.)

노 대통령은 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노 대통령은 '반전 교육'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반전은 현실과 단절된 당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당위의 가치판단에 입각해 미국이 침략국이라는 사실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노 대통령은 교사에게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서"!) 현실에 대한 일체의 교육을 해서는 안되고 추상적 당위만을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양민학살을 해서는 안된다는 추상적 당위를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학살세력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5월 광주의 양민학살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토론하면 안되는가? 이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생각하는가?

기자는 지금 이라크 파병의 잘잘못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수학권과 교사의 수업권 그리고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해두자. 이라크 파병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에 속한다면 그 파병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은 교사의 권리에 속한다. 노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 속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검찰 스스로가 지켜야함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도 (노 대통령의 교육관이 어떤 것이든) 교단에 선 교사들이 투쟁을 해서라도 지켜나갈 것이다.

한 가지 더 할 말이 남아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이라크 파병 결정을 김옥균, 삼학사, 김구 등의 역사적 인물 등과 비유하며 정답이 없는 문제로 유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말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자신이 이렇게 정답이 없는 문제의 주인공으로 교육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의 '반미교육' 우려가 이렇게 정답이 없는 문제를 정답이 있는 것처럼 교육할까봐 나온 조처였다면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기자는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박정희가 노 대통령보다 더 솔직한 대답을 했는지도 모른다. <조선일보>는 박정희의 말을 이렇게 전언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죽은 자를 위해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나는 현실적인 국익을 위해 많은 결정을 했다. 이것이 현실의 삶에 이익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향해야할 가치는 아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이익은 누리돼 도덕적으로는 나를 비난해도 좋다.' 맞다. 교육자는 당연히 그의 무덤에 침을 뱉어야 한다. 이것을 막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중등교육에 관한 한 국가가 가치관을 교육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계가 거꾸로 흐르고 있는가? 1992년의 헌법재판소 결정례로 되돌아 가보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 교육이 외부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영향받지 않도록 교육자 내지 교육전문가에 의하여 주도되고 관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 특히 교육의 자주성이 보장되기 위하여서는 교육행정기관에 의한 교육내용에 대한 부당한 권력적 개입이 배제되어야 할 이치인데 … "(헌재 1992. 11. 12. 선고, 89헌마88 결정)

노 대통령의 발언을 '국가가 이데올로기를 독점할 수 있다'는 뜻으로 나쁘게 해석하지 말자. "국가가 가치관을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형태로 이에 간여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상기 결정례)이라고 새겨듣자. 그러나 그 간여가 ("외교관계를 고려하여")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막는 권한까지를 의미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면 좋게만 해석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전교조의 획일적인 '반미교육' 지침을 의심했다. 그렇다면 전교조 역시 정부의 획일적인 '친미교육' 지침을 의심할 헌법상 기본권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침략을 침략이라고 토론하는 것을 막으려는 친미·친제국주의적인 교육간섭 의도가 없다고 자신하는가!

이 땅의 교육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을까? 말이 아닌 실천을 기대해서다. 교육개혁의 과제가 태산처럼 쌓여 있지만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없애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교육개혁 과제다. 친미·친제국주의적인 교육간섭의도가 없다면 이라크 침략에 대한 토론조차도 문제삼음으로써 "가치편향적이거나 반도덕적인 내용의 교육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를 무색하게 해서는 안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세계 정치사의 예외적인 인물로 기록되려는 헛된 욕심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주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비서관의 <오마이뉴스>와의 열린인터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박주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비서관. 그녀는 <오마이뉴스> 열린인터뷰에서 (개혁하지 않아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흔들리지 않는 개혁세력"이라는 코믹한 정치세력을 제안했다.
박주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비서관. 그녀는 <오마이뉴스> 열린인터뷰에서 (개혁하지 않아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흔들리지 않는 개혁세력"이라는 코믹한 정치세력을 제안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음… 참 개혁세력이 층이 얇은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개혁세력이라기보다 흔들리지 않는 개혁세력이라고 할까? 그래서 서로에 대한 격려가 필요한 것 같다. 서로에 대한 격려와 서로에 대한 신뢰, 이것이 없이 무거운 과제들을 헤쳐나가기에 좀 힘이 부칠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오마이뉴스>, 2003년 5월 1일자.)

웃을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신뢰의 정치가 아니라 불신의 정치다(토마스 제퍼슨). 개혁도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안에 대한 압박에서 나온다. 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정책은 비개혁적으로 하면서 지지는 개혁세력에게 받으려 한 정치인은 역사에 없었다. 교육개혁은 두려워하면서 지지는 교육개혁세력에게 원하는 정치 코미디를 연출하지 말아달라.

결론을 내리자. 지금까지 지적한 대로 노 대통령은 교육은 구체적 현실(미국)에 대한 거론없이 추상적 당위의 세계(반전)에 머물러 있기만을 원하는 것 같고, 교실에서의 토론의 결과가 반프랑스나 반이라크 또는 반북한이 아닌 '반미(당위에 의한 현실판단)'로 흐르면 국가가 개입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기자는 헌법학자로서 이런 식의 반교육개혁적 사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교육은 결코 현실과 분리된 추상적 당위의 세계에만 머물 수는 없으며, 정상적인 교육과정과 교사의 중립적 지도에 따른 토론의 결과가 '반미'든 반프랑스든 반이라크든 반북한이든 권력이 이 결과에 위헌적으로 간섭하려 해서는 안된다.

노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는 개혁세력"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이 고언에 대한 응답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제발 도덕적으로 박정희의 월남파병은 침을 뱉을 일이지만 자신의 이라크파병은 정답이 없는 일이고, 교육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권력 개입은 의심스런 일이지만 자신의 권력 개입에는 신뢰를 보내야 한다고 주문하지 말아달라. 중생들은 그런 식의 선문답이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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