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그때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를 가려고 했다. 경찰들이 우릴 막았고 뛰고 맞고 정신이 없었다. 카메라 렌즈가 빠진 것도 모르고 용케 청사 앞에 이르니 어느 어머니가 나보다 먼저 청사 앞에 와 있었다. 쉰이 넘었을 나이에도 그녀는 청사의 담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어느새 장정들이 달려들었다. 분을 풀지 못한 어머니는 소리를 쳤다.
"한갑수(당시 농림부 장관), 너 이놈 나와봐. 계화도서 니 얼굴 좀 보러 여까지 왔는디 왜 못 나오냐. 우리한테 피같은 갯벌을 뺏어가놓고 발뻗고 잘 수 있을 거 같여?"
2001년 5월 25일, 정부는 끝내 새만금 사업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손주 같은 전경들에게 팔 다리를 뜯기며 그들의 갯벌을 죽이려는 정부관료들 코빼기 한번 보지도 못하고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주저앉은 어머니들. 그들 속에서 그래도 가장 젊은 축에 속했던 이순덕 어머니(55세)는 세종로가 떠내려가도록 쩌렁쩌렁 소리를 질러댔었다.
순덕 어머니가 새만금 사업 반대 싸움에 나선 것은 TV를 뉴스를 보고서다.
"마을 사람들 모다 저것을 막으면 안된다고 생각은 했는디 누가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 그래 그냥 안되는디 생각만 하고 있었지. 근디 어느날 테레비를 본께 새만금 사업을 반대한다고 사람들이 싸움을 하고 있더라고. 그래 내가 자진해서 계화도 청년회를 찾아가 나도 싸우겄다고 했지. 그때부터 시작했어."
그렇게 싸움을 시작한 순덕 어머니의 연설(?)은 누구보다 감동을 주곤 했다.
"갯벌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저금통장입니다. 우리 계화도 사람들은 저금이란 걸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다 나가면 하루 5만원도 좋고 10만원도 좋고 벌 수 있는디 적금헐 필요가 없지요. 그런 금덩어리 갯벌을 누가 뺏어간단 말입니까?"
뻘에 나가 노래부르기를 좋아한 이순덕 어머니
"나는 어려서부터 바다에 나가 노는 걸 좋아했어. 바다만 나가면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아.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 부르고 뻘에서 조개도 캐고 그렇게 처녀시절을 보냈지."
그런 그녀에게 바다와 갯벌은 놀이터요 노동현장이요 삶의 터전이다. 7년 전 사고로 갑자기 남편을 잃고 난 자신에게 갯벌이 없었다면 네 명의 자식들이 대학 문턱이나 갔겠냐며 순덕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그런 그녀에게 '그으레'(백합 캐는 기구)와 호미 하나가 재산목록 1호다.
"지금은 논으로 변했지만 개화도가 막히지 않고 섬이었을 때 이곳에 전어와 복어, 꽃게들이 말도 못하게 많았어. 이곳이 산란장소였던 거지. 그런데 억지로 뚝을 막고 논을 만들어 산란장소를 없애니까 그 많던 꽃게들이 다 사라졌어. 바닷고기 양식장들을 보면 기가 막혀. 알을 구해다가 새끼를 키워서 다시 바다에 내보내. 멀쩡허게 있는 산란처들을 다 없애고 이제 와서 그런 짓을 왜 허는지 알 수가 없당께."
시집온 후 부안 읍내로 나가 7년을 산 것 빼고는 계화도를 떠나본 적이 없는 순덕 어머니는 요즘 고민이 많다. 하루가 다르게 죽어 가는 갯벌을 보면 살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하루 4시간 뻘에 나가 생합과 백합, 동죽들을 주어 판 수익이 재작년까지 한 달에 2백만원 하던 것이 작년엔 1백만원으로 줄더니 올해는 40만원도 채 안 되기 때문이다. 물길이 다 막히면 이마저도 없어질 것이다. 평생을 지낸 이곳을 떠나 어디로 나가 산단 말인가. 요즘은 통 밥맛도 없고 잠도 오질 않는다.
"마을사람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혀. 지난해 5월 해창석산 싸움 이후론 마을사람들도 더 이상 소릴 안내. 게다가 노무현이가 지난번에 와서 새만금 사업을 계속 허겄다고 말허고 간 뒤로는 '다 끝났다' 그래."
지난해 5월, 계화도 주민과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은 방조제 공사로 산허리가 없어져가는 해창산에서 농성을 했다. 순덕 어머니는 마을주민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농성에 참가해 현대중기 포크레인을 온몸으로 막았다.
2주일을 끌었을까. 현대건설과 농업기반공사는 '용역'을 시켜 이들을 산에서 끌어내렸고 이들을 상대로 업무방해와 손해배상소송을 했다. 이 때문에 생전 처음 재판정에 선 순덕 어머니는 판사가 무시무시한 벌금을 때릴까봐 숨죽이며 판결을 지켜봐야 했다.
"이제는 바다만 보면 왠지 슬퍼"
"3보1배 하루 뒤따라가면서 하루종일 울기만 했어. 그냥 맘이 너무 아퍼서."
지금이라도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보자며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네 사람은 부안 해창갯벌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세 번 걷고 한 벌 절하며 걷고 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냐며 순덕 어머니는 눈물을 훔친다.
순덕 어머니는 요즘 부쩍 몸이 아프다. 갯벌 나가 열 번을 왔다갔다 해도 생합을 잡지 못하고 헛손질만 하다 오니 더 아프다. 어제는 마을 아줌마들끼리 안면도에 다녀왔다. 꽃구경을 나섰던 것이지만 순덕 어머니는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다 왔다.
"지금 공사를 멈추고 두어군데 다리로 연결해서 물길을 열어 놓으면 갯벌이 죽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거 같은디. 그렇게라도 해서 어민도 좀 살고 관광수익도 올리고 하면 안 좋을까?"
가만 놔뒀으면 그대로 저금통장이던 갯벌. 순덕 어머니는 "이제는 바다만 보면 왜 그런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