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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 개방의 선두주자, 청와대 춘추관...기자실 개방과 브리핑제가 도입되고 있는 청와대는 지금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도 '공사중'이다. 사진은 청와대 춘추관 전경.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 방미 기간인 11일부터 17일까지 청와대 춘추관은 잠시 '휴업' 중이다. 청와대측은 대통령 방미 기간 중 비서동 내 해외언론비서관실에 상황실을 운영하고 춘추관은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춘추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망치와 드릴소리가 춘추관에 울리고 있다. 청와대 기자실 개방에 따른 시설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 노 대통령 방미중에 공사가 진행중인 춘추관 2층 브리핑룸.
ⓒ 오마이뉴스 이병한
사람들은 그동안 청와대 기자실이 다 개방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직 기자실은 개방되지 않았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개방이 '진행 중'이다. 소프트웨어 개방은 어느정도 진행됐지만 하드웨어는 개방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춘추관 공사는 그동안 개방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하드웨어 부분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이다.

청와대 춘추관 개방 공사는, 현재 정부 각 부처의 기자실 개방 작업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정부 브리핑 룸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다. 각 부처는 기본적으로 부처별 상황에 맞게 개방 작업을 진행중이지만 개방의 선두주자인 청와대가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은 5월 말. 과연 청와대 기자실은 어떻게 바뀔까. 단지 시설만이 아닌 운영방식에서 그 안에 흐르는 질서까지, 달라지는 춘추관의 A부터 Z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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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명에서 280여명…개방등록신청 받아봤더니

청와대 기자실 개방은 기자 등록 신청에서부터 시작됐다. 참여정부 출범 15일 후인 지난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전 언론사를 상대로 등록 신청을 받은 결과 총 132개 언론사 204명의 기자들이 신청서를 냈다. 이에 따라 5월 말 최종적으로 기자실 개방이 완료되면 약 180여개 언론사 280여명의 기자들(기존 출입 + 신규)이 청와대에서 취재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수치는 폐쇄적 출입기자단 제도로 운영되던 지난 정부와 비교할 때 언론사 숫자로는 3.6배, 기자 숫자로는 3.2배 증가한 규모다. 지난 정부에는 49개 언론사 87명의 기자들에게만 청와대 출입이 허용되었다.

물론 신청한다고 다 청와대에서 취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원조회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학생운동 및 사회·노동운동 경험과 투옥 경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100% 신원조회를 통과한 점을 비춰볼 때, 기자들의 신원조회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김만수 춘추관장은 "사기 전과 등은 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조회는 5월 말까지 계속된다.

이렇게 문턱이 대폭 낮아졌지만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한 사진기자는 등록신청서를 냈지만 곧 청와대측으로부터 거부 통보를 받았다. '1사 1인' 원칙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1개 법인 당 취재기자 1명·사진기자 1명으로 인원을 제한하는 원칙을 세웠는데, 주간지 <한겨레21>은 일간지 <한겨레>와 법인이 같다.

<한겨레>는 이미 청와대에 출입기자를 두고 있는 상황. 반면 법인이 다른 <인터넷 한겨레>는 등록자격이 된다. 이런 사정은 <주간동아>와 <중앙데일리> 등도 마찬가지다. 등록 남발 방지·공간 협소 등 때문에 마련한 1사 1인 원칙이, 취재 의향과 능력이 있는 언론사의 등록 기회 자체를 체계적으로 박탈하는 현상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 춘추관 공사가 완료되면 상시 브리핑룸으로 바뀔 2층 대통령 회견장은 지금까지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성명을 발표할 때 등 1년에 거의 서너차례 정도만 쓰이고 나머지는 비어있었다. 사진은 지난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내외신 연두 회견 모습.
ⓒ 연합뉴스
"질문?" "저요! 저요!"…중대한 변화, 질문권이 청와대로

5월말 개방이 완료되면 가장 큰 변화는 '질문 권(權)'의 등장이다. 지금까지는 서로 목소리가 다 들리는 1층 작은 공간에서 브리핑을 했기 때문에 기자들이 그냥 질문을 할 수 있었지만, 공사가 끝나고 기자들이 많아지면 모든 공식 브리핑은 2층 브리핑룸에서 한다. 여기서는 기자들도 마이크 없이는 질문이 곤란해진다. 너무 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질의-응답도 케이블TV(KTN, 아리랑 TV)를 통해 생방송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리핑을 하는 사람이 "질문 있으신 분?" 하면 기자들은 손을 들어야 하고, 브리핑을 하는 사람이 지목하는 기자에게 마이크가 전달된다. 이는 중대한 변화다. 지금까지는 '누가 질문할까' 하는 질문권의 개념 자체가 모호했고, 엄밀하게 말해 기자들에게 있었지만, 이제는 브리핑을 하는 사람에게로 확실하게 넘어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랑방 브리핑' 시대는 갔다.

▲ 5월 말부터는 케이블TV(KTV, 아리랑TV 등)를 통해 정례 브리핑의 일문일답까지 모두 생방송된다. 기자들도 질문의 '품질'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또 한가지 변화는 공식 브리핑이 끝나고 청와대 관계자가 퇴장할 때 기자들이 밖으로 쫓아가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소위 '우르르 에워싸고 물어보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2층 브리핑룸은 브리핑을 하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연단 뒤쪽에 따로 마련된다. 따라서 기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공식 브리핑 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자들은 여러모로 기분이 상하고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질문이 전국에 생방송되는 것도 큰 부담이다. 항상 긴장해야 한다. 이제 기자들은 '송곳같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기자의 자질에 '글 잘 쓰는 능력'에서 '질문 잘 하는 능력'이 중요하게 추가되는 것이다. 편하게 취재하는 시대는 점점 종말을 고하고 있다.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선 설치…대통령 등장에 연출개념 도입

2층 브리핑룸은 약 140석 규모로 개조된다. 지금까지 이곳은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 등 대통령이 직접 나설 때만 쓰였다. 그러다보니 1년에 몇 번 쓰이지 않은 채 늘 비어있었다. 춘추관 공사가 완료되면 이곳은 상시 브리핑룸으로 바뀌어 매일 이루어지는 대변인 브리핑 등 모든 공식 브리핑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브리핑룸은 연단의 위치가 바뀐다. 이에 따라 브리핑 룸의 정면과 조명 방향, 브리핑을 하는 사람의 출입 동선도 모두 바뀌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연단 뒤쪽이다. 현재 있는 여닫이문을 뜯어내는 대신 연단 뒤쪽에 푸른색 칸막이를 세운다.(아래 그림 참고) 이 칸막이는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가 춘추관 건물에 들어올 때 기자들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칸막이 옆을 돌아 앞으로 나올 때는 마치 복도에서 무대로 나오는 듯한(열심히 일하다가 나오는 듯한) 효과를 연출한다. 사실은 춘추관 건물 밖 청와대 경내에서 들어오면서 말이다.

▲ 2층 브리핑룸 구조 변화와 이에 따른 동선 변화. 연단 뒤쪽에 세워질 푸른색 칸막이는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선이 된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이 푸른색 칸막이는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선이다. 칸막이만 돌아서면 생방송으로 전국에 나가게 된다. 아마도 대변인은 매일 칸막이 뒤쪽에서 옷 매무새를 가다듬을 것이다.

기회균등과 기득권 사이

청와대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 제도 실시에 담긴 핵심 정신은 정보의 독점을 폐지하고 모든 언론사에게 공평하게 정보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나 기득권은 있기 마련이다. 개방되는 춘추관에도 마찬가지다. 춘추관의 기득권은 자리배치로 나타난다.

기회 균등의 관점에서 보자면 2층 브리핑 룸 자리는 그날 브리핑 시간에 맞춰 먼저 오는 순서로 좋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140여석 중 연단 바로 앞 몇자리는 기존 49개 방송·일간지에게 할당하는 지정좌석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청와대측은 그 이유로 '검증 문제'를 들고 있다.

280여명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질의-응답까지 모두 생방송되는 상황에서, 어떤 질문을 할지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을 앞에 앉히는 것은 모험이라는 것이다. 김만수 춘추관장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예를 들어 의도적으로 맨 앞에 앉아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면서, 대통령과 같은 화면에 잡히게 사진을 찍어 언론보도 외적으로 이용하는 언론사나 기자가 아직 있다"고 말했다.

1층 기자실도 기존 출입 언론사에게는 지정좌석제로 운영된다. 기존 언론사들은 언론사별 '핫 라인'(언론사 편집국과의 직통 전화)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를 철거하지 않고 존속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전화가 있는 자리는 실질적으로 그 언론사 전용 자리가 된다. 중앙기자실의 경우 106석 중 기존 전화가 놓일 28석(기존 출입 중앙 언론사)는 지정 좌석이 되고 나머지 78개 좌석은 공유 좌석제로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자리는 전화가 없다.

▲ 기자실 개방에 맞춰 현재 28석 규모의 춘추관 1층 중앙기자실은 105석 규모로 확대되고, 현재 21석 규모의 지방기자실도 39석으로 늘어난다.(왼쪽) 무엇보다 2층 대통령 회견장은 약 140석 규모의 상시 브리핑룸으로 바뀌어 모든 공식 브리핑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오른쪽)
ⓒ 오마이뉴스 고정미
골칫거리 : 식당·화장실·주차장…

춘추관 2층에는 식당이 있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밥 1500원, 라면 1000원이며 탁자 9개에 45석의 작은 규모다. 개방이 완료돼 280여명의 기자들이 드나들면 길게 줄을 서서 밥을 먹어야 할 판이다. 그래도 식당은 춘추관에서 약 5분 거리에 민간 식당이 있으니 그나마 대안이 있는 편이다. 화장실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현 춘추관에는 남녀 화장실이 세곳씩 있다. 남성용의 경우 소변기 네 개에 좌변기 두세개 수준. 280여명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차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춘추관 옆에는 자동차 2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방문자 주차장과 36대 규모의 기자 주차장, 80대 규모의 직원 주차장이 있다. 하지만 현재도 포화상태여서 골목마다 줄줄이 세워놓은 차가 즐비하다.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지만, 지하의 사우나 및 헬스 시설도 극소수만 들어갈 수 있는 소규모이다.

청와대에서는 아직 이런 부대시설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우선 급한 2층 브리핑룸과 1층 기자실 공사를 하고 추후 상황을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보도지원실의 공사 담당자는 "부대시설에 대해서는 사실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서 "우리도 그게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문제를 감안하면 기자실 개방 일정이 기약없이 늦춰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갈등의 불씨, 풀 기자단

▲ 춘추관 1층 중앙기자실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뒤편으로 보이는 책상에서는 각 언론사의 1진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며, 가운데 소파에서는 2진 기자들이 단신을 정리한다. 이중 중앙언론사의 1진 기자들만 풀 기자단으로 들어갈 수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기자실 개방이 전면 시행되면 조만간 '풀(pool) 기자단'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든 공식 행사에는 보통 11명의 기자(취재기자 2명, 사진기자 3명, ENG카메라 기자 6명)만이 근접해서 취재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들이 다른 기자들을 대신해 대통령의 말을 적고, 사진을 찍고, 움직임과 표정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청와대 기자들과 공유한다. 이것이 일명 '풀(pool) 기자단' 제도이다.

현재 풀 기자단은 기존 49개 언론사 중에서도 오직 28개 중앙 언론사 기자들만으로 구성돼 운영하고 있다. 21개 지방 언론사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실이 개방되면 약 130여개 언론사 200여명의 기자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 어느정도 마찰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춘추관 안팎의 시각이다.

<시사저널>의 한 정치부 기자는 "기존 풀 기자단에서 해온 것을 가지고 기사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앙지와 지방지, 일간지와 주·월간지의 시각과 감수성이 다르다"고 말한다. 사진기자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취재기자는 풀 기자단이 전해준 내용을 재료로 기사를 만들 수 있지만, 사진은 특성상 현장에 없으면 결과물도 나오지 않는다.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매일 윤태영 대변인의 얼굴이나 춘추관 건물만 찍을 수는 없는 터. 기자실 개방에 호의적인 사진기자들조차도 "풀 기자단 운영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기자실 개방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존 풀 기자단에 소속된 언론사 기자들은 말한다. 풀 기자단이 큰 기득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한 중앙 일간지 기자는 "기자 개인으로서는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욕만 먹는, 그야말로 피곤한 일거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풀 기자단 개방에 대해서는 선뜻 'OK'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청와대측은 잠시 한발 물러서 있다. 보도지원실의 한 관계자는 "풀 기자단 숫자를 늘이는 방안, 새로운 풀 기자단을 구성하는 방안, 구성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는 방안, 행사의 성격에 따라 구성을 조정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측으로서는 관리 차원에서나 검증 면에서나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그러자니 '정보의 독점권을 막고 접근 기회를 공평하게 한다'는 기자실 개방의 취지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풀 기자단 문제는 일단 기자실 개방 자체에 묻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지만, 조만간 터져나올 논쟁의 불씨다.

새로운 질서 : 긴장과 경쟁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로 취해진 대 언론 조치는 가판 구독 금지였다. 이후 기자실 개방 작업, 브리핑제 실시,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의 철저한 적용 등이 잇따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 1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에 대한 내 원칙, 취재보도에 대한 내 원칙을 보면 엄청 불편하지만 나는 이게 원칙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쉬운 일이 아닌걸 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언론에 대한 원칙'은 "정부는 정부의 길을, 언론은 언론의 길을 간다"로 요약된다.

▲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출범 초기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과 함께 춘추관 2층 대통령 회견장(상시 브리핑룸으로 개조중)을 둘러보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지금 이 시각에도 진행되는 있는 언론환경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언론환경은 지금까지 편하게 그리고 몇몇 매체가 독점적으로 정보를 얻던 시대가 갔음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뛰고 연구하고 빠져나가지 힘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좀처럼 신통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진다.

반대로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언론환경은 언론과의 타협이나 통제가 좀처럼 힘들어짐을 의미한다. 타협과 통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향력이 큰 몇몇 언론만 상대해서 비공개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던 과거가 훨씬 수월하다. 언론과 정부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질서에서, '긴장과 경쟁'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몇몇 보수 신문들의 강한 반발에는 기득권 상실로 인한 박탈감과 과거 질서에 대한 향수가 녹아있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앤드루 워드 특파원은 지난 3월 31일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를 막론하고 기자라면 누구라도 정보 입수를 제한하는 조치에 반대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시스템이 서방국가들이 성공적으로 도입한 언론통제 시스템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무작정 반대할 수도 없다. … 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은 한국의 언론시스템을 국제표준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정부와 언론간 적당한 거리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밀접할수록 부정과 부패가 그만큼 심화되기 때문이다."

'긴장과 경쟁'이라는 새로운 언론 질서가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지 여부는 언론과 권력 모두에게 달려있다.

어제의 타성과 오늘의 변화가 싸우는 청와대 춘추관
['청와대 방문기자'의 두달 취재기]

▲ 춘추관 1층 소브리핑룸에서 송경희 전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곳은 앞으로 휴게실로 바뀐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금 청와대 춘추관에는 '과거'와 '변화'가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새로운 변화다. 나는 지난 3월 11일부터 지금까지 약 두달간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청와대 기자실은 아직 공식적으로 개방되지 않았고, 따라서 나는 정식으로 출입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춘추관 현관에서 '방문증'을 발급해 들어간다. 다른 출입기자들과 똑같이 브리핑에 참석하고 각종 정보를 얻는다.

이런 '방문기자'는 나 말고도 많이 있다. 원칙대로라면 정식으로 신원조회까지 거친 청와대 출입기자는 언론사당 한명이다. 하지만 기존 출입 언론사들에서는 이들 뿐 아니라 두세 명의 기자가 매일 방문증을 신청하고 있다. 소위 '2진'들이다.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난 3월 21일 대변인 브리핑 시간에 당시 논쟁이 되고 있던 이라크전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청와대 춘추관 관계자로부터 "눈치껏 질문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인 즉은 <오마이뉴스> 기자가 왜 질문 하느냐고, 아직 정식 출입기자도 아닌데 왜 질문을 받느냐고, 원칙대로라면 아직 개방이 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이렇게 몇몇 출입기자들이 춘추관측에 항의해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나는 두터운 '과거의 벽'을 느껴야 했다.

지난 4월 14일 김희상 국방보좌관이 춘추관 2층 인터뷰 룸에서 기자들과 조금은 은밀하고 조금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나는 일찍부터 녹음기에 노트북을 들고 인터뷰 룸에 자리를 잡았으나, 곧 춘추관 관계자로부터 자리를 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는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약속)가 지켜지기 위해 대상을 정식 출입 언론사의 1진 기자(최고 고참 기자)들로 제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녹음기는 그대로 둔 채 밖으로 나와야 했다. 춘추관 관계자는 녹음기까지는 묵인했다. 녹음기를 두고 나올 수 있게 한 것이 '변화'라면, 이런 은밀한 자리는 '과거'로 볼 수 있다.

춘추관 지하의 작은 사우나 시설이나 몇몇 기자들에게만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책상 등 시설물은 '과거'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방된 브리핑은 분명 새로운 '변화'다. 재미있는 것은 공식 브리핑과 일문일답이 끝나면 곧 과거 방식으로 돌아간다. 밖으로 나가는 취재원을 향해 기자들은 승용차 입구까지 우르르 몰려가 이것저것 물어본다. 때로는 공식 브리핑 시간보다 이 때 더 의미 있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3월 24일 이해성 홍보수석과 기자들이 청와대 브리핑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 방송사 기자는 "브리핑을 하면 뭐하는가, 그 때보다 밖에 몰려가 물어볼 때 더 중요한 말이 나오는데"라고 말했다.

이렇게 청와대 춘추관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과거'와 '변화'를 오간다. 이 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청와대 춘추관은 지금 한마디로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공사중'이다. /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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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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