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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철
어두일미(魚頭一味)

앞뒤가 안 맞는 이 말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돌아가신 고모가 생각난다. 혹자는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사실 물고기 머리는 먹을게 별로 없는 부분이다. 찌게에나 넣음직한 물고기 머리에다가 굳이 일미를 첨언하는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몸통을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상황에서 자식의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도 나이가 들어 아들과 같이 동태찌개를 먹으면서 은연중에 머리에 먼저 젓가락이 가는 순간 "아하! 어두일미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고 어줍잖게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살았던 어두일미의 의미를 근래 매장에 오신 특별한 손님덕에 되새기게 되었다.

점심나절부터 내린 비는 봄비치고는 제법 비다운 기세를 보이더니 저녁 시간 무렵부터는 가랑비로 변했다. 저녁 손님들이 몰려 올 즈음 회색 두루마기 차림의 할아버지 한 분이 초등학교 1~2학년 되보이는 꼬마와 같이 들어오셨다.

식당에 여러 손님들이 오시지만 할아버지와 손자 둘이서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메뉴판을 드리고 메뉴 설명을 해 드렸더니 장어 정식 하나를 주문하신다.

아마도 손자 사랑이 가득한 할아버지께서 손자에게 장어를 먹이고 싶어서 오신 것이리라 짐작하고 장어정식 1인분을 내어드렸더니 할아버지께서 뭔가를 한참 찾는 눈치다.

한참이나 뒤적거리시다가 이내 나를 부르신다.
"여기 대가리가 왜 없어?"
"머리 부분은 먹을 것이 없어 잘라냅니다."
"난 대가리가 좋거든. 어두일미잖아. 빨리 대가리 구워주소."

ⓒ 손영철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그러나 잊고 살았던 어두일미의 의미가 생각나서 대가리에다가 장어 반마리를 같이 내어드렸다. "이 놈의 장어는 대가리에 살점이 많으네요"하고 덧붙여서 말이다. "거봐, 어두일미라니까" 하며 흡족해 하신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먹는 걸 챙겨주고 당신은 몇점만 드시더니 결국 대가리는 그대로 남기셨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갈 때가 부모 마음이 가장 행복하다 했던가? 무슨 보리고개 시절 통용됨직한 얘기가 오랜만에 들어 본 어두일미와 함께 할아버지의 미소에서 다시 느껴졌다.

그 후로도 1주일에 두세번은 그 특별한 손님들을 맞았고 그 때마다 나는 장어 반마리를 추가로 진상(?)해야 했다. 며칠 째 때이른 초여름 날씨가 후덥지근하게 아스팔트를 달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2주째 오시지 않는 특별한 손님.
'쌈지돈이 떨어지셨나?'
괜스레 기다려지는 손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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