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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노 대통령
ⓒ 오마이뉴스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답답한 심경을 솔직히 내비쳤다. 도대체 무엇이 그 당당했던 대통령의 입에서 취임 석 달만에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나오도록 만들었는가.

물론 노 대통령의 말은 엄살은 아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물류대란, ‘굴욕외교’ 시비와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 네이스(NEIS)를 둘러싼 교육부와 전교조의 갈등, 공무원 노조의 집단행동 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정치사회적 갈등이 잇따르고 있다.

노 대통령 변신,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지금 노 대통령과 대립지점에 서있는 상대가 야당도, ‘조중동’도, 보수단체도 아닌, 바로 노 대통령의 기존 지지세력들이라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대로 기존 지지세력들의 지나친 비판과 행동에 몹시 마음이 상해있고, 이들 세력은 이들대로 노 대통령이 변했다며 실망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노 대통령을 그렇게 흔들었던 몇몇 신문들은 노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이 슬픈 이별을 반기며 이 광경을 연일 흥미진진하게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 무슨 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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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성남공항에서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 굴욕외교 규탄 집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평행선이다. 접점이 언제 찾아질 수 있을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들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고,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길을 찾기가 어렵다. 지금의 상황이 심각한 것은 양측의 대립이 일시적인 감정이나 오해의 차원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인식과 시각의 차이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미 스스로 “노무현이 변한 것 같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며 자신의 변신을 시인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도 빠르다. 처음에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다보니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 현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까지 낳고 있다.

미국 방문에서의 미국예찬 발언들은 미국사람 듣기 좋은 소리 한 것으로 이해한다 치더라도, 북한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낸 잇달은 발언들은 단순한 ‘방미용’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대북관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우리측 대표단은 북핵-경협 연계 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전례없이 북측 대표단의 발언내용을 문제삼는 등, 북한에 대해 달라진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북한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선회는 부시 미대통령을 의식한 전술적 대응이 아니라, 실제로 인식 자체가 바뀐 결과라는 분위기가 강하게 전달된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모습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5.18 기념식에서 입장방해시위를 벌인 한총련 학생들에 대해서는 ‘난동자’라는 표현을 썼고, 네이스 폐기를 요구하는 전교조를 향해서는 대량징계 의사까지 밝히며 교육부에 네이스 강행을 지시했다.

▲ 5.18 행사장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한총련 학생들
ⓒ 오마이뉴스 강성관
한총련 문제야 학생들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 촉발시킨 문제니까 그렇다치더라도, 네이스 문제를 인권의 관점을 배제한 채 단지 전교조 문제 차원으로만 받아들인 것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위기관리 특별법 제정도 노동계나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노무현은 지금 어제의 노무현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그것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미국방문 직전 자신이 말했던대로 “한국의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대한민국의 대표”가 되는 길을 가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출발이 비주류와의 거리두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노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대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표가’ 되는 것은, 흔히 말해온 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하는 것과 대동소이한 말이다. 그렇다면 그 길을 반대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필자 역시 <오마이뉴스>의 기고를 통해 노 대통령이 자기 편만 챙기는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전체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함을 여러 차례 주문한 바 있다. 절반의 대통령으로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길은 말릴 것이 아니라 힘을 보태주어야 할 길이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왜들 난리일까. 왜 노 대통령이 변해버렸다고 아우성들을 치는 것일까. 그것은 통합의 리더십을 모색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보수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세력으로 폄하하고, 아무리 실수가 컸다고 해도 한총련 학생들을 ‘난동자’로 규정하며, 전교조를 ‘국가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부의 굴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집단으로 몰아붙여야만 했을까. 꼭 그런 방식밖에는 없었을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미동맹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의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겠건만 꼭 이땅 ‘비주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방식으로 해야만 했었을까.

이 나라 ‘비주류’들이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미국 자극하는 발언이나 하고 올 것으로 기대할 정도로 세상 물정모르는 사람들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과 우리 대통령의 무게를 지켜가며 미국의 손을 잡기를 바랬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과공(過恭)발언들에 대한 항의를, 마치 미국에 가서 미국비판을 하고 왔어야 했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매도하는 것은 그래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왜 일언반구 설명이 없는가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최근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답답하다”는 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이 늘었다. 물론 노 대통령도 답답해 하고 있다.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하는데 앞장서고 등을 돌리는데 섭섭함 이상의 감정을 느낄 법하다. 최근 노 대통령의 언어들에서는 그같은 감정이 짙게 배어나오고 있다.

답답해 하는 것은 같지만, 그 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단절이다. 노 대통령과 지지층 사이의 단절. 이것은 노무현 정부의 존립근거와도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다. 단절이라. 정말 노 대통령과 그의 지지층 사이에 단절이 발생한 것인가. 과장은 아닌가.

과장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 있을 때부터 단절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실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북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군사행동까지도 가능한 '추가적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핵문제와 경협을 연계시키기로 하는 등,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을 변경한 내용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줄 정도로 미국을 찬미해준 결과가 이 정도인가 하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달랐다. 정상회담 직후 기자들 앞에서 그는 성과에 대단히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노 대통령을 비롯한 방미팀은 이번 방미성과에 크게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 동행했던 기자들의 이야기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미국예찬 발언들에 대한 국내 지지층들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이미 이 나라 ‘비주류’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이해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미국방문을 갖고 엉뚱한 시비만 거는 사람들이 야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같은 정서의 차이는 바로 단절의 시작이었다.

왜 그같은 단절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두 가지이다. 우선 노 대통령의 변신이 예상을 넘어서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한 것이라면 그 충격파는 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변신의 이동거리가 매우 크고, 심하게 말하면 극과 극을 오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결과 노 대통령이 원했던 ‘주류와 비주류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주류의 반발속에 주류의 환영을 받는, 결국 또 하나의 반쪽 대통령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태도의 변화, 대북정책의 급격한 변경, 집단행동에 대한 강경대응 등에서 나타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그동안의 노무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연속적이지 못하고 단절적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같은 과정에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 5년간, 그리고 현정부에서도 유지되어온 대북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지금같이 북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반도의 앞길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정책의 기조가 변화된 이유에 대해 국민들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북한에 대한 ‘추가적 조치’는 어째서 검토할 수 있는 것인지, 북핵문제와 경협을 연계시킬 수 있다는 입장변경은 왜 필요한 것인지. 대통령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저 “확대해석하지 말라”는 식의 정부관리들의 미봉적인 무마성 해석들만 이어진다. 그러나 이번에 개최된 남북경제협력위원회 회의에서 나타난 우리 대표단의 전례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면 우리 정부의 정책변경은 확실해 보인다.

민족의 앞길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정책을 변경하면서도,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기 위한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언제나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결론 뿐이다.

그런 모습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 노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단순한 전술적 고려인지, 북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생각이었는데 이제야 알게된 것인지, 종잡기가 어렵다.

언제까지 우리가 노심(盧心)읽기에 매달려야 하는가. 중간의 과정이 설명되지 않거나 생략된 결론은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얻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결론만을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독선적 리더십으로 흐를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전교조에 대한 강경한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전교조가 네이스를 반대하는 것이 어째서 잘못인지, 네이스 시행시 인권의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무엇인지, 전교조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네이스를 반대하는 전교조는 ‘국가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집단으로 표현될 뿐이다. 갈등의 한 당사자인 전교조가 수긍하고 말고 할 설명이 없다.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최근 NEIS 시행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 연합뉴스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자신대로의 전략이 있고 판단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알기조차 어렵다. 극과 극을 오간다, 종잡을 수 없다는 불만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토록 토론을 강조했던 노 대통령이, 평검사들과의 토론에까지 나섰던 노 대통령이, 정작 대미-대북정책, 네이스 문제 같이 정작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째서 자신의 결론만을 강요하려는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필자는 지금이야말로 노 대통령이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노 대통령의 불만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 대북정책을 정말 바꾸어나가려는 것인지, 반대로 그의 변신을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 노 대통령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서로의 생각을 최소한 이해라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불과 몇 달전까지 한 배를 탄 것처럼 생각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서로의 생각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게 된 상황. 이 상황을 푸는 열쇠는 일차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쥐어져 있다.

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표’가 되기 위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은 갈등의 당사자가 되지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대화와 교류를 발전시켜 나갈 최고 책임자가 상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네이스를 반대하는 전교조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필요이상으로 표현하는 것, 이 모두 문제의 해결보다는 악화를 가져오는 것임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속이 터지더라도, 갈등의 당사자가 될 것이 아니라, 국가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최후의 관리자 위치에 서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과 지지세력 사이의 ‘불화’는 빨리 해결되고 서로가 화해를 해야 한다. 물론 지지자들도 노 대통령이 정치적 안정 속에서 정상적으로 개혁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여건 마련을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역시 화해의 열쇠는 노 대통령의 손에 쥐어져있다.

어려울 때 조강지처 만한 사람이 없듯이, 그래도 가장 어려울 순간에 노 대통령을 지켜줄 사람은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에게 섭섭함과 배신감을 갖기에 앞서, 그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그들은 왜 화를 내고 있는가, 그들이 받았을 상처는 어떠한 것일까를 한번쯤은 생각해주기 바란다.

물론 판단의 충돌이 빚어지고 있는 많은 사안들에 있어서 노 대통령의 판단이 더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의 판단이 옳으냐의 문제를 떠나, 그래도 우리 사회의 개혁을 원했던 세력들에게 이런 식으로 상처를 주며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않다.

전교조의 이번 네이스 투쟁에도 여러 문제들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만들고 지켜온 전교조인가. 그러한 전교조를 노 대통령이 나서서 부정해버리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과 지지세력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모두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도, 이 나라의 개혁도 상처만 남기고 실패하게 되어 있다. 서로가 등을 돌리면 그 다음 이 나라에 개혁은 없다.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어도 누그러뜨리고 노 대통령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합은 분명 필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를 잊어서는 안된다. 개혁하는 대통령이 이루어야 할 통합은 비(非)지지세력도 개혁의 길에 참여시키는 통합이어야지, 개혁을 포기하고 지지세력을 버리는 통합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 대통령이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난 해 대선 때에 있었던 많은 장면들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러면 지금 상처받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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