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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는 소노부의 새로운 욕살인 오간과 조의란 벼슬을 지내고 있는 마려를 은밀히 만나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오간이나 마려와 같이 두 형제중 형인 비류가 태자로 책봉되어 천자가 되리라 믿었던 이는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막상 하늘에서 떨어지듯 유리가 갑자가 태자로 책봉되니 이러한 이들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비류가 찾아와 자신의 심정을 말하니 의기투합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폐하의 처사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천자라고 해서 반드시 자신의 혈통이 이어야 한다는 하늘의 뜻이 있습니까? 덕이 많은 신하에게 선양할 수도 있는데 하물며 왕자님이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갓 세워진 나라일수록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이 천신(天神)의 후손임을 강조하고 이를 만천하에 알리는 행위를 하곤 한다. 묵거가 생전에 이런 일을 도맡아 해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매한 백성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지 지배층까지 이해시킬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다.
"저 뿐만 아니라 소노부의 사람들은 왕자님이야말로 바로 태자 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태자는 계로부 사람들까지 그 자질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사옵니다."
오간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리에 대한 평판은 사실 그리 좋지 못했고 태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모든 점이 미흡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유리와 함께 온 옥지, 구추, 도조의 나쁜 처신으로 인해 더욱 그러했다. 비류와 오간, 마려간의 얘기가 무르익을 무렵, 온조가 허겁지겁 뛰어와 비류를 찾았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호들갑을 떠는가?"
비류는 못마땅하다는 듯 온조에게 눈을 흘겼지만 온조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투였다.
"폐하께서 태자에게 국정을 모두 맡기겠다고 하옵니다!"
비류에게는 천청벽력같은 소리였고 오간과 마려에게는 어이없는 소식이었다. 마려가 한탄을 내뱉었다.
"거의 야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태자로 책봉된 지 겨우 한 달도 안되어 국정을 맡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이오! 폐하께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소!"
비류로서는 채 무슨 수를 써보기도 전에 당한 꼴이었다. 천자나 다름없는 권한을 부여받은 유리를 어찌해보겠다는 것은 곧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서 폐하를 찾아뵈어 부당한 일임을 통촉해야 합니다."
마려의 말에 오간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폐하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오. 더구나 폐하께서 완전히 왕위를 물려준 것은 아니니 두고 볼 여지는 있소."
마려는 답답해진 나머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대로 두고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요!"
네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오간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왕비마마를 찾아가 이 일을 의논해 보는 것이 좋겠소."
네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할 것도 없이 오간의 말을 좇아 월군녀의 처소로 향했다. 그때 월군녀는 여전히 자리에 누워 속병을 달래고 있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혹시 유리인가 뭔가 하는 애가 천자의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소식 때문이오?"
월군녀는 이미 어디선가 전해온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화를 낼 기력조차 없는지 말투에는 힘이 없었다. 핼쑥해진 월군녀의 모습을 보자 두 왕자와 오간, 마려마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사옵니다. 그래서 왕비마마께 이 일을 상의하고자 찾아온 것이옵니다."
"그 일이라면 내가 알 바 아니오. 왕자들은 심신을 수련하는데 힘쓰시고 그대들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신경을 쓰시오. 자, 이만 물러들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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