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후한말 대학자인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다가 돌아 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후 채옹의 방 앞에 두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 보면서 자라나더니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連理枝)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중국의 남북조시대 송나라 사람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 모습을 드러낸 연리지. 안내한 권기성씨(50)가 연리목 곁에 서니 나무의 거대함이 어느정도인지 짐작된다.
ⓒ 이성인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장한가(長恨歌)’에서 "칠월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두사람 은밀한 약속을 하는데, 우리가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가 되고, 이승에서 만나면 연리지되자" '상천원작비익조 재지원위연리지(上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라고 현종과 양귀비의 간절한 사랑의 염원을 연리지에 빗대어 노래했다.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 좌우 일체가 되어야 날 수 있다는 신화 속의 새이고 연리지는 두그루의 가지가 서로 닿아 자라는 나무.

나라의 경사,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성, 부부의 애정 등을 상징하는 연리지(連理枝). 삼국사기와 고려사에서도 연리지의 출현을 기록할 정도로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일로 여겨졌던 연리지(連理枝)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충북 괴산, 그 사랑의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서 발견된 이 나무는 300~400년정도로 추정되는 붉은 소나무로 높이는 15m, 둘레는 180Cm로 땅 위 4m 높이의 굵은 가지 하나가 남녀가 손을 맞잡은 듯 서로의 몸을 끌어 당기며 잇고 있다. 역시 '사랑나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전혀 표나지 않는 붙은 가지 둘레도 족히 50Cm는 되어 보인다.

송면출장소에서 선유동으로 200m쯤 가다보면 오른쪽 야산에 적송이 군락을 이루는 속에 위치한 이 소나무가 발견된 것은 오래 전.

청천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연상흠씨(42)는 "동네사람들이 그저 '이상한 나무가 있다'고해서 가보니 연리지였다"면서 "마을에 부자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이 나무 인근까지 마루가 깔려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채옹의 고사에서처럼 연리지가 효(孝)의 상징인지 연씨는 "연리지를 보고난 후 일주일 간격으로 산삼 세뿌리를 캐 부모님과 아픈 이웃에게 주었다"고 말했다.

"연리지 만난 뒤 산삼 세 뿌리 캤다"
연상흠씨 "연로한 부모와 아픈 이웃에게 전달"

▲ 산삼 세뿌리를 캔 연상흠씨
"글쎄 일주일 간격으로 산삼을 세뿌리나 캤어요"

연리지(連理枝)의 출현을 알려 온 충북 괴산군 청천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연상흠씨(42).

연씨는 "3월말경 마을사람들이 이상한 나무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연리지였다"면서 "혹시 밖에 알려지면 나무가 손상을 입을까 제보하는 것을 망설였다"고 말했다.

중국 후한서에 나오는 채옹의 고사에는 연리지를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씨는 청천면 인근의 산에에 오를 때마다 산삼을 일주일 간격으로 세뿌리나 캤다. 산삼 나이는 세뿌리 모두 30~40년 정도.

연씨는 "비구스님이 반갑게 맞아 대화를 나누는 꿈을 꾼 뒤 산에 올라 산삼을 캐게 됐다"면서 "지난 어버이날에 부모님 잡수시라고 한뿌리를 드리고 나머지 두뿌리는 암으로 투병하는 이웃에게 그냥 주었다."고 말했다. / 이성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