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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김의기, 우리의 모습으로 만나자"-하루주점 후 병뚜껑으로 만든 입간판
ⓒ 송민성
▲ 서강대 의기촌 옆에 자리한 고 김의기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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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강대학교에서는 23주기 의기제가 열렸다. 해마다 열리는 의기제는 80년 광주의 참상을 알리다 목숨을 잃은 서강대 무역학과 76학번 김의기 열사를 기리는 추모제이다.

▲ 의기제 기념 거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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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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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김의기, 우리의 모습으로 만나자'는 기조로 열린 이번 의기제는 풍물패의 길놀이로 시작하여 중앙문예단의 문예, 각 단과대 노래패·문예패의 노래와 춤 등으로 흥겹게 진행되었다.

▲ 청년 김의기상 시상식
ⓒ 송민성
▲ 청년 김의기상 시상식
ⓒ 송민성
이날 의기제에서는 청년 김의기상 수상식도 함께 치뤄졌으며 불문 B섹 풍물패 <새날소리>와 사학 국섹 학생회, 새날 B섹 손원혁씨가 공동 수상하였다.

의기제 준비위원회 위원장 박강노(경제 96)씨는 "청년답게 살기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학우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기 위해" 청년 김의기상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 풍물패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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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학번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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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 곽중현(영문 99)씨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한반도가 전쟁의 위협에 처한 상황임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나 자신부터 김의기 선배 정신따라 실천적 지식인, 생산적 지식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의기제는 23주기 의기제를 준비한 96학번들의 문예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이어 술과 음식을 나누며 춤과 노래를 즐기는 대동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 추모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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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과 고문과 약탈로 얼어붙은 그때
온통 이 강산 패배주의에 빠져버린 그때
그 공포의 아가리에서
한 이름없는 학도
종로 5가 6층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 부르짖었다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일어나자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싸움 역사의 정방향에 서 있다 우리는 이긴다
그 절망의 아가리에서
하나의 섬광으로 빛나며
모든 무덤과 노예의 그때
오직 그대가 승리를 일컬었다
김의기!
그대가 유신잔당을 이기고 승리를 일컬었다
죽어 피투성이 몸뚱어리로
- 고은, <김의기> 중에서


▲ 의기제 준비위원회 위원장 박강노씨
ⓒ 송민성
[인터뷰] 23주기 의기제 준비위원회 위원장 박강노(경제 96)

- 의기제의 준비 과정을 대략적으로 말한다면
"3월 첫 째주에 첫 모임을 시작한 후 매주 한번씩 전체모임과 각 과별 모임을 가졌다. 4월 둘 째주에 김의기 열사를 소개하는 1차 거리제를 가졌고 5월 10일 의기제 후원 하루주점을 했다. 많은 선후배, 동기들이 참석해주어 기뻤다.

이번 주를 김의기 열사 추모주간으로 정해 21일 영화 <김종태의 꿈> 상영, 23일 추모 문화제, 25일 광주묘소순례 등의 행사를 연다. 열사의 기일인 30일에는 의기촌 학내 헌화제를 가질 예정이다."

-이번 의기제의 중심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의기제가 항상 그렇듯 이번 의기제 역시 "청년다운 삶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가장 큰 화두였다. 흔히 도서관에 가면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과 땅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전자는 고시생이고 후자는 토익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몇 가지의 지식보다는 명확한 가치관일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청년다운 삶, 의기다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실천을 하고 열정을 가진 청년이 곧 의기라고 생각하고 오늘날 우리들의 사는 모습이 의기의 재현일 수 있길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

ⓒ 송민성
- 의기제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열사의 삶, 청년다운 삶을 풀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글보다는 김의기 열사의 삶과 열정을 닮은 서강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하였다. 그들 중에는 직장인이면서도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이도 있고 야학교사를 하는 이도 있다. 23주기 의기제를 준비하는 96학번들이 직장인이거나 8학기 학생들이어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96학번들이 의기제 준비에 발벗고 나설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서강에는 김의기 말고도 여러 열사들이 있다. 그러나 유독 김의기 열사가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매년 해온 의기제 때문이었다.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역시 후배들에게 김의기 열사의 정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스스로도 사는데 치여 열정을 잃어 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예전의 마음을 간직하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

-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을 하든 열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세우고 그에 맞게 사는 삶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순히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
는 것이 진정 의기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

김의기 열사 약력

▲ 김의기 열사
·1959년 경북 영주군 출생
·76년 서강대 무역학과 입학. KUSA 가입.
·78년 형제교회 농촌문제연구모임 참여.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참여
·79년 서강대 근대사연구모임 주도.
·80년 EYC 농촌분과위원장으로 활동.
·80년 5월 광주항쟁 목격. 30일 종로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 남기고 떨어져 목숨을 잃음.
·90년 서강대에서 명예졸업장 받음. / 송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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