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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부부 초청 만찬에서 김상현 의원의 제의로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부부 초청 만찬에서 신당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당에 대해 "호남 득표를 잃지 않으려는 전략과 약간의 손상을 입더라도 전국적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의 충돌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당의 과제였다, 이 문제가 없으면 우리 당의 노선 갈등이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전국적 토대 위에 서야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이 지역당이라고 스스로 비하하고 지역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기 이전에, 지역적 기반의 사고를 뛰어넘지 못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나는 이미 (정치권에서) 한 당이 한 지역에서 독식하지 않게 해주면, (제1당에게) 대통령 권한의 절반, 3분의 2라도 넘겨주겠다고 했다"면서 "지역통합이라는 화두에 매달려 정치를 포기할 각오로 여기에 매달려왔고, 이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이는, 에둘러 표현하기는 했지만, 노 대통령이 사실상 신당파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은 배기운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배 의원은 민주당의 분당 위기를 언급하며 "마주 달리는 두 개의 기차가 부딪히고 찢어지고 있다"며 "대통령은 당의 지도자다, 방미 전 어느 시점에 당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여전히 지금처럼 당 문제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했다. 설훈 의원은 "노 대통령은 정치의 전면에 당당히 나서야 한다"며 이렇게 강하게 건의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나를 따르라고 해야한다. 그래야 문제가 풀린다. 문제가 어려운 것은 (대통령이) 초연해 있는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잘 안 풀린다. 노 대통령께서 만약 정균환, 박상천 의원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안된다고 하실 분이 절대 아니다. 좀더 솔직하게 힘을 합쳐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 자리에는 정균환·박상천 최고위원 부부도 참석해 있었다. 설 의원은 "평소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았다"며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답은 이랬다.

▲ 27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부부 초청 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설 의원의 말씀은 깊이 생각치 못한 지적이다. 우리 경험으로 보면 대통령의 일을 공작으로 밀어붙이고 배후조종이라고 하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원체 단서가 없으니 (보도가) 더 발전되지 못했지만. 설훈 의원의 말씀이 옳을 수 있으나, 언론 환경이 매우 나쁘다. 대통령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게 휩쓸려가면 그 흐름 속에 다 파묻히게 된다."

"남북관계 평화적 해결 위해 꿇으라면 꿇을 것"

만찬에서는 DJ의 햇볕정책 계승 문제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송영길 의원은 대북포용정책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지지자들이 노 대통령을 민 것은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우리 민족이 민족공존과 평화통일로 갈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라며 "한·미 정상이 우의를 다진 것은 큰 성과지만 민족공존을 포기하며 한미동맹 일방으로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남북관계의 철학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송영길 의원 말씀 잘 했다"면서 조금 길게 답했다. 노 대통령은 "최소한 김대중 대통령이 열고 이어온 포용정책, 햇볕정책 계승은 확고히 하겠다, 두 번 질문할 필요없다, 확실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당선됐을 때 누구누구의 발언 따질 것 없이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성이 언론에 계속 나왔다. 그 시기에 나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무력 행사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것이 한미관계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 그 후 미국에서 여러 손님이 왔고, 취임 전후에는 무력사용 가능성 보도가 줄었고, 평화적 해결 원칙으로 큰 흐름이 바뀌어갔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로 미국과 입씨름하거나 각세울 일은 없다.

그래서 한미동맹관계를 다져가는 것이 시급했다. 그렇게 가다보면 경제불안도 없어질 것이고, (그래서) 빠르게 나의 자세가 변화해 나간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했다고 하는데) 토막토막 끊지 말고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 일관된 원칙은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이다. 이것을 위해 꿇으라면 꿇겠지만, 이것의 훼손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수사가 진행중인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남북관계를 해칠만한 수사로 달려가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의 가치를 손상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남북관계가 틀어질까 말 한마디 조심해야 하고 부엌눈치, 안방눈치 살피는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DJ가 그동안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부부 초청 만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한화갑 민주당 전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대통령 입장에 전원 기립박수…할말은 하면서 화기했던 3달만의 집들이

만찬장 헤드테이블에는 노 대통령 내외와 김태식 국회부의장, 한화갑·김상현·김원기 고문 부부가 자리를 함께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대통령의 말을 듣는 딱딱한 자리가 아닌, 의원들도 할말을 거침없이 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저녁 6시30분에 시작한 만찬은 예정시간(1시간30분)보다 40분 초과돼 8시40분에야 끝났다.

이날 만찬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일종의 소속당 의원들에 대한 3달만의 첫 집들이였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의원 101명 가운데 86명이 참석했고 해외 출장과 와병, 선약 등으로 15명이 불참했다.

노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건물 입구에서 입장하는 한명한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대통령 내외가 만찬장에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전부 기립박수로 맞았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대통령 내외분의 건강과 성공적인 국정수행을 소망한다"며 건배를 제의했고, 이어 김상현 고문은 "내가 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또 지도부와 사모님을 모시고 건배를 제의하는 것은 내 생애 처음"이라며 "내가 아내와 44년간 살았는데 이 순간 아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 만찬장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김성호 의원은 "부부동반이지만 저는 마누라가 없어서 어머님을 모시고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처음부터 "오늘 면전에서 (나와) 맞닥뜨렸을 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몇말씀 듣겠다"고 말했고, 식사 후 유재건·송영길·설훈·정장선·김태홍·허운나·김성호·배기운·박병석 의원 등 모두 9명이 노 대통령에게 건의와 당부의 말을 했다.

관행과 달리 이날 만찬은 언론에 모두 공개됐다. 인사말, 건배, 식사 이후 의원들이 노 대통령에게 하고싶은 말을 비교적 솔직하게 말했고, 나중에 노 대통령이 일괄 답변했다.

"중국·러시아를 방문 할 때에는 양국 국회의원 친선협회 회장 정도는 모시고 갈 수 있게 해달라"는 유재건 의원의 건의에 노 대통령은 "같이 가도록 조치될 것"이라고 답했다. 허운나 의원은 "오늘 올 때 감격과 기쁨 보다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가고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었다"면서 "대통령과 우리가 생각이 같고 우리와 같이 가는지 모르겠다, 좀더 같이 한방향으로 가서 자주 도와주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허 의원 이야기를 듣고 내가 편안하게 해도 대통령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좀더 지켜봐달라"고 답했다.

▲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부부 초청 만찬에서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 회장인 박상천 최고위원이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만찬 후 문석호 민주당 대변인은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충분하게 경청을 하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아주 인상깊었다"라고 말했다. 김성호 의원은 "아주 좋았다"며 "김대중 대통령 때 하지 못했던 말을 다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와 당 사이의 서운함이 상당부분 해소됐다고 생각한다"며 "의원들이 우리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대다수가 가졌고, 대통령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 당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평 의원은 "그동안 '우리가 여당인가'라는 회의가 들었는데 오늘 확신이 들었다"면서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당이지 않겠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전국적 토대 정당 발언에 대해 "원칙적으로 회의가 드는 것이 우리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나, 영남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영남 대통령 후보까지 냈는데도 영남은 찍어주지 않았다"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변한게 뭐 있나"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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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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