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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포터의 경기용 빗자루 님버스 2001, 파이어볼트, 스큅을 위한 속성마법과정세트(Quick Spell Course) 등이 연상된다
해리 포터를 읽으면서 문득 만화 '도라에몽'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왜소한 몸집의 왕따 소년, 드레이코 말포이와 더들리 더즐리를 연상시키는 앙숙들. 표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롤링이 후지코의 만화를 보았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움직이는 그림, 체계적으로 상품화된 마법 도구들, 도제식 훈육이나 신선술 같은 수련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학년별 마법 커리큘럼 등의 발상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에도 똑같이 사진이나 그림 속에서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브랜드와 성능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마법 상품이 나와서 마법에 능숙하지 못한 마녀와 마법사들의 눈을 사로잡고, 어린 마녀와 마법사들은 반드시 마법 학교에 가야만 제대로 된 마법사가 될 수 있다.

도라에몽은 과학이 환상적으로 발달된 22세기의 미래에서 손자가 할아버지인 찡구를 위해 보내준 로보트다. 과학이 어찌나 발달되었던지 시간 여행은 물론이고, 사람의 마음 조절 알약, 초소형 지구, '태풍의 눈' 씨앗, 대나무와 말의 유전자 조합 생물 '죽마', 자동 진화 기계, 책을 도장처럼 찍어서 먹으면 책의 내용이 모두 기억되는 빵, 시간 저금 기계, 계절 변화 기계, 햇빛 고형화 기계, 어디든지 가는 문 등 상상 가능한 모든 도구가 존재한다. 매 에피소드마다 찡구는 도라에몽의 도움으로 재미있는 체험을 하고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는다.

▲ 마법세계에서는 그림이나 사진 속의 사람이 움직인다
▲ 마법 학교에서의 커리큘럼
가끔 찡구와 도라에몽은 미래 세계에 가보기도 하는데, 25년 후의 미래에서 찡구는 단짝이었던 이슬이와 결혼하여 찡구와 붕어빵인 아들을 둔 것으로 그려진다. 25년 후만 되어도 역시 과학이 매우 발달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다니고 하늘을 나는 탈것을 자전거처럼 타고 다닌다. 찡구의 죽마고우들은 화성 등으로 출장을 다녀오고 인공위성 세트가 장난감으로 팔리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 미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달라 보인다.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가 머글 세계와 다른 것처럼. 그러나 '다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왜 어머니는 여전히 집에만 있는가. 미래에서도 고정된 성역할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가진 풍요로운 미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눈부시게 발달해 있지만, 여전히 이슬이는 집안에서 말썽꾸러기 아들과 씨름하며 가사노동만 하다가 퇴근해 들어오는 남편을 존대하며 맞아들인다. 찡구의 아들은 이슬이가 낳았다기보다는 이슬이의 배를 '밭'으로 한 찡구의 '씨'인 것처럼 보여서, 엄격한 부계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경쟁이란 당연한 사회 구성 원리이며 공부 못하는 아이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좋은 직장도 가질 수 없다. 돈이 많아야 비싸고 최신의 과학 기기를 살 수 있고 친구들에게 뽐낼 수 있다. 어린이는 부모와 선생에게 복종해야 한다.

날고 기는 마법을 쓰는 마법 세계에서도 위즐리 부인은 하루 종일 쿠키를 굽고 스웨터를 뜨고 샌드위치를 만든다. 남편 위즐리를 닮아 모두 빨간 머리를 가진 7명의 아이를 줄줄이 낳는데, 이 아이들은 어찌된 일인지 당연히 '위즐리 가문'이기만 하다.

▲ 마법 세계에서도 열등생은 설 자리가 없다. 윙가디움 레비오우사! .
▲ 마법을 못 하면 출세도 못 하고 친구들에게 왕따당한다
마법은 기술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돈이 있어야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최신형 빗자루나 망토, 지팡이를 살 수 있다. 마법 학교에서도 모범생은 선생에게 사랑받고 열등생은 유급을 걱정하며, 공부를 피터지게 하고 경쟁을 통과해야만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 기숙사 별로 나뉘어져 경쟁하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며 선생들은 권위에 의해 학생들에게 상점과 벌점을 매기고 학교에서 임명하는 반장과 학생회장은 일정 부분 훈육을 대행한다.

도라에몽과 해리 포터 둘 다 나는 재미있게 잘 읽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려진 세계가 과연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가, 무늬만 다른 것이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정말 거침없는 상상력이라면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람들의 욕망과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다른 세계, 다른 작동 원리로 움직이는 세계를 그릴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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