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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악회> 정기연주회 '나무' 출연자들
<정가악회> 정기연주회 '나무' 출연자들 ⓒ 정가악회
봄을 알리며 하나둘 얼굴을 내밀다 절정에 달했던 벚꽃이 진 지 이미 오래. 그동안 취할 것만 같은 강한 향취의 라일락과 달콤한 꿀을 주던 아카시아도 다녀갔다. 떨어져가는 꽃잎을 보며 봄날은 간다며 안타까워했고, 이런 봄날이 또 올까하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지난 봄. 벚꽃이 진다고 아카시아가 진다고 한탄했지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내년이면 또 그 화사한 꽃을 뿌려줄 나무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화사하지 않다고 특별한 내음도 없다고, 작지만 의미 있는 존재조차 몰랐던 것이다. 나무는 늘 그곳에 있고 숲도 항상 그곳에 있는데.

꽃을 피워주는 것은 결국 나무

국악을 전공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정가악회(情歌樂會)’. 국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5년 전 모이기 시작해 3년 전 정식 창립된 국악그룹이다. 화려한 꽃보다는 그 꽃과 향기를 만들어내는 나무가 되고 싶다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정가악회, 역사는 짧으나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간디학교와 삼청각 등에서 초청 공연을 한 바 있다. 정가악회 연습실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정가악회 연주자.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정가악회 연주자. ⓒ 권기봉
지하철 4호선 사당역.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가악회의 연습실이 있다.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지하 연습실에서는 밤을 꼬박 지새운 듯 피곤에 지친 연주자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대표 천재현(31)씨에게 정가악회와 이번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정가악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정가악회는 우리 전통 성악 '정가(正歌)‘가 갖는 가치와 철학적 의미를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사람과 사람, 음악과 음악 사이의 소통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 ‘새로운 음악 문화’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이른바 크로스 오버를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임에서 원래 추구했던 것이 정가였던 것처럼 일단은 정가의 성격을 잃지는 않으려 합니다. 다만 이렇게 하다보니 자꾸만 관객들과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통이 부족했던 거지요.”

-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구체적으로 정가악회가 창립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닫혀 있는 국악계 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죠. 그 어떤 일이라는 건 폐쇄적으로만 생각되는 국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자는 건데, 국악을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이들에게도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정가를 바탕으로 정통성도 유지하면서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대중성도 띠자는 겁니다. 또 기회가 닿는 대로 자주 공연을 가질 생각입니다. 정가뿐만 아니라 창작곡을 함께 연주해 관객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겠구요. 또 국립 국악원 등의 특정 공연장을 고집할 경우 고리타분해질 위험이 있어 소극장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미술관이나 카페에서도 공연하고 싶은 생각도 있구요.”

ⓒ 정가악회
- 연주자들은 어떻게 모이게 된 건가요?
“(대)학교 다니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학부생은 없고 최고 나이어린 사람이 대학원 과정에 있고요. 저는 국악 중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국악계는 일단 취업문이 상당히 좁은 편이기 때문에 모두들 ‘정가악회 정신’을 외치며 활동하고 있지요.”

- 그럼 모임 운영비 등은 어떻게 충당합니까? 연습실 임대료도 내야 할 테고.
“모두들 십시일반하고 있지요. 연습실은 민족음악연구회와 함께 이용하고 있습니다. 공연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고요. 사정이 그리 나은 편은 아닙니다.”

- 고민이 참 많겠습니다.
“국악계는 폐쇄적인 곳 같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쉽게 할 수가 없지요. 그렇다고 국악계 내에서 취업할 수 있는 문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니고. 국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켜 보고 싶어 시작한 것이 정가악회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정가악회가 인정을 받으면 국악하는 후배들을 위한 본보기가 되어 경제적으로도 스스로 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관객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거든요.”

-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일단 4일부터 3회 정기연주회 <나무>를 엽니다. 그게 끝나고 9월 이후부터는 복지관 등에 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국악 교육도 하고 싶고, 해외로 입양된 이들을 위한 워크숍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입양아들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어도 이를 쉽게 풀기가 힘들거든요. 그런데 그걸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한국음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만큼 긴장을 녹일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물론 워크숍을 위한 비용 충당이 고민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기연주회 <나무>, 과연 그들은 나무일까?

창조 콘서트홀 가는 방법
창조 콘서트홀 가는 방법 ⓒ 권기봉
정가악회는 4일(수)과 5일 오후 7시 30분에 대학로 ‘창조 콘서트홀’에서 정기연주회 <나무>를 연다. 박노해 시에 곡을 붙인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와 정인보 시에 곡을 붙인 <그럴 싸, 나는 듯> 등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될 이번 연주회에는 거문고에 천재현과 대금에 유홍, 해금에 이승희 등 젊음 국악인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과연 정가악회는 비와 바람과 천둥번개, 기존의 높은 벽과 편견이 만만치 않을 국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과연 정가악회는 매년 꽃과 향기를 베풀어주는 나무처럼 국악계에서 자기만의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까? 꽃잎 떨어져 쓸쓸한 6월, 내년에도 꽃이 필지 궁금하다면 대학로에 가보자. 문의는 02) 3473-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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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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