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춘천국제마임축제'의 마지막 날인 지난 1일, 고슴도치 섬 야외 무대에서 그가 웃고 있다. 단정치 못한 머리, 큰 키에 마른 몸, 그의 입가에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르듯 관객도 우스꽝스런 그의 몸짓에 웃음을 참지 못한다.
저글링쇼(갖가지 도구를 이용한 공연)를 마친 저글러 김현철(36)씨는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고슴도치 섬 호숫가에서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긴 그와 마주 앉았다.
그는 87년 연극배우로 출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극 배우가 그렇듯 경제적인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었어요. 밥보다 막걸리를 더 많이 마셨어요. 그나마도 실컷 먹지도 못했죠. 게다가 연극은 여럿이 함께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호흡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게 잘 안됐어요. 제가 의도하는 대로 하기도 힘들고.
그런데 마임은 혼자 하는데다 말도 없는데 관객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대단한 거예요. 마임과 연극은 사실 많이 다르지 않아요. 둘 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죠."
그는 마임은 기교가 아닌 '상상'이라고 말한다. 보고 즐기라는 것.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공연을 본 뒤 쉽게 따라한다고 한다.
90년 초 마임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두 달에 한 두 번 동충 서커스단을 찾아가 여러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피에로 분장을 하고 관객에게 다가갔다.
"광대는 재미있긴 한데 관객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아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많이 무시해요. 저글링은 광대와 같은 분장을 하지 않아도 광대의 요소가 있고 관객의 흡인력 또한 대단하거든요. 즉, 예술적 가치가 충분히 있으면서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공연을 해오던 97년, 무주 리조트에서 6주 계약을 맺고 공연을 준비했다. 하지만 공연 이틀만에 주최측의 부도로 공연을 중단해야 했다. 그도 IMF한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정말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죠. 처자식도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거든요. 하지만 제 일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어요.
제가 아트 풍선도 할 줄 알았거든요. 개업식 같은 곳에서 일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하지 않았어요. 만약 (일을) 한다면 이벤트 업체에 남을 것 같더라고요.
울산에 작은 방을 얻어 연습실도 없이 매일 연습했어요. 그 때 아래층 사람들은 애들이 왜 이렇게 매일 뛰어다니나 했을 거예요(웃음)."
그렇게 3~4년을 고생한 덕에 이제는 경주에 작고 허름하지만 번듯한 연습실까지 갖춘 집을 마련했다. 공연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10여 명에 불과하던 저글러가 지금은 감히 셀 수가 없단다.
그는 '2003춘천국제마임축제' 의 단골 손님이다. 한해도 빠짐없이 공연을 해왔다. 올해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했지만 주최측에서 단 하루만 해달라고 하는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관객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해요. 매번 했던 거 또 하고, 또 하고 하면 안돼죠. 그래서 쉬면서 재충전을 하려고 했는데,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제가 돈 욕심이 났다면 공연만 했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실력은 실력대로 줄고 장사꾼만 될 거예요."
10년 넘게 '2003춘천국제마임축제'에서 공연을 해온 그인지라 축제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또 그만큼의 아쉬움도 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요. 한번 놀면 뿌리를 뽑아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춘천국제마임축제가 좋은 게 '도깨비 난장'이에요. 그런데 지원이 부족해요. 지원금 3000만원 받고 이런 공연을 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해요. 어지간한 극단 공연비가 3000만원 이에요. 억울하고 이해할 수가 없어요. 춘천보다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은 축제가 몇억씩 지원금을 받아요. 대부분의 축제 기획자들이 춘천에 와서 공연을 보고 가요. 배우기 위해서죠. 그에 반해 열악한 강원도의 지원이 다만 아쉬울 뿐이죠."
그는 또 우리나라 공연문화의 아쉬움도 토로했다. 공연이 관객에게 닫혀 있다는 것이다.
"외국은 공연이 관객에게 열려 있어요.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보기 힘든 공연일지라도 학생들이 싸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표가 너무 비싸요. 죽을 때까지 연극 한 편 못보고 죽는 사람이 허다해요."
그는 닫혀있는 공간보다 탁 트인 야외 무대에서 공연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흘러가는 관객을 잡아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저는 예술인이 아닌 연예인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고요. 예술인은 고집과 자신만의 작업이 있어야 해요. 반면 연예인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관객이 즐거워할까를 생각하고 고민하죠."
그는 현재 발목상태가 좋지 못하다. 작년 발목을 두 번이나 다쳤지만 밀려드는 공연 덕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올해 목표는 다치지 않고 쉼없이 공연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데도 노력할 것이다. 창조의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관객에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광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광대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줘야 해요. 동시에 그 웃음 속에서 감동을 줘야 하죠. 비극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에요. 하지만 희극으로 감동을 주기란 어려운 일이죠.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이 난다는 말이 있잖아요? 너무 웃음과 적절한 페이소스에서 오는 감동이죠. 저도 그런 감동을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