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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겉그림 - 얼마 앞서 겉그림을 바꿨더군요. `느낌표 책'으로 뽑아 주지 않아도 널리 사랑받고 아낌받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겉그림 - 얼마 앞서 겉그림을 바꿨더군요. `느낌표 책'으로 뽑아 주지 않아도 널리 사랑받고 아낌받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녹색평론사
그건 그렇고... <우리들의 하느님>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게요.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또는 누구 생일잔치를 한다고 할 때 책방에 가서 자주 사주는 책으로 <우리들의 하느님>을 즐겨 고릅니다. 그래서, 책을 누구에게 선사해 줄 때마다 판권을 보면서 사주곤 하는데 대충 판권을 보며 헤아려 보니 그쪽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8만 부 남짓 팔렸지 싶더군요. 그러니까 처음 나온 해부터 지금까지 한 해에 1만~1만5천부쯤 팔린 셈인데... 이 팔림새는 앞으로도 꾸준하리라 봐요.

그런데 이 책이 느낌표 책으로 뽑힌다면? 오래지 않아 100만부를 가볍게 넘길 만한 훌륭한 책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팔림새는... 너무 쉽게 팔리고 너무 쉽게 읽히며 잊혀지는 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지금 느낌표 책으로 뽑힌 책 가운데 한두 해 넘게 생명력을 잇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이거든요. 다들 새로운 책으로 흩어지고, 새로 책이 나와서 가짓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읽어야 할 책'이 늘면서 팔림새가 주춤거리지 싶더군요.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는 느낌표 책으로 영향 받아 팔려나가는 부수는 처음처럼 폭발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래도 많이 팔리긴 많이 팔리겠으나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은 적어도 한 해에 1만~1만5천부는 팔리는 책인 만큼 20년 동안, 아니 30년 동안, 또는 4,50년 동안 해마다 그렇게 꾸준히 팔려서 <광장>이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오래도록 꾸준히 팔리는 책이 되면 훨씬 좋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그래서 오십년 동안 팔아서 적어도 50만, 또는 100만 독자가 사서 읽는 책, 더불어 빌려서 읽고 얻어서 읽은 사람까지 쳐서 200만 명이 넘게 읽은 책으로 자리매김할 책이 되면 참 좋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오랫동안 우리에게 사랑받고, 우리뿐 아니라 우리 자식과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이 대학생 나이까지 커서 즐길 만한 수준 높은 책이라면 '느낌표'로 뽑히지 않는 책 가운데 더 많다고 보면 좋겠다고요. 나아가 느낌표로 뽑히지 않고 오래도록 꾸준히 사랑받고 팔리는 책이 참 아름답지 않겠냐 싶기도 하고요.

<몽실언니> 겉그림 - 연속극으로도 그려진 몽실이 이야기입니다.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하며 눈물을 흘린 작품입니다.
<몽실언니> 겉그림 - 연속극으로도 그려진 몽실이 이야기입니다.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하며 눈물을 흘린 작품입니다. ⓒ 창작과비평사
'느낌표'로 뽑힐 책은 이러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 책이 참 좋고 재미있으며 알찬데, 제대로 눈길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책, 제대로 눈길을 못 받고 사라져 버린 책 들이요.

<2>

흠. 어쨌거나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권정생 할아버지 책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만 죽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판이 끊어진 책은 빼고요.

<바닷가 아이들>(창작과비평사)
<점득이네>(창작과비평사)
<한티재 하늘>(지식산업사)
<하느님의 눈물>(산하)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산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분도출판사)
<슬픈 나막신>(우리교육)
<몽실언니>(창작과비평사)
<비나리 달이네 집>(낮은산)
<짱구네 고추밭 소동>(웅진)
<권정생 이야기>(1,2권, 한걸음)
<깜둥바가지 아줌마>(우리교육)
<먹구렁이 기차>(우리교육)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우리교육)
<팔푼돌이네 삼형제>(현암사)
<내가 살던 고향은>(웅진)
<밥데기 죽데기>(바오로딸)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
<초가집이 있던 마을>(분도출판사)
<사과나무밭 달님>(창비)


꽤 많지요? 이런 책이 지금도 새책방에서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권정생 할아버지 책입니다. 이 책들을 하나 하나 찾아서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그 어느 한 권도 깊이가 얕거나 넓이가 좁지 않답니다. 어느 책 하나도 울음과 웃음을 안기지 않는 책이 없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글을 쓰는 분이 없다고 할 만큼 대단함을 느낄 수도 있고요.

이 많은 책 가운데 시모음으로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이라는 책이 하나가 있는데, 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만큼은 꼭 읽으시면 좋다고 봐요. 이 시모음에 실은 시들이 하나같이 참 좋은데 저는 그 가운데 '소'라는 이름으로 쓴 시 일곱 꼭지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 시 가운데 하나만 소개할게요.

소 3

소야, 몇 살이니?
그런 것 모른다.
고향은 어디니?
그것도 모른다.
그럼, 아버지 성은?
그런 것 그런 것도 모른다.
니를 낳을 때 어머니는 무슨 꿈 꿨니?
모른다 모른다.
형제는 몇이었니?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

소는 사람처럼 번거롭기가 싫다.
소는 사람처럼 따지는 게 싫다.
소는 사람처럼 등지는 게 싫다.

소는 들판이 사랑스럽고,
소는 하늘이 아름다웁고,
소는 모든 게 평화로웁고.



지금까지 백 번도, 이백 번도 더 읽고 또 읽었지만 언제 읽어도 참 가슴이 따뜻한 시라고 생각해요. 어디서 이런 마음이 다 샘솟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냐 싶어요.

<3>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읽으면 우리들이 징그럽다고 여기는 생쥐를 당신이 자는 잠자리 곁에 두는 모습이 나옵니다. 추운 겨울에 생쥐들도 추위에 떨며 잠을 못 이루지 않겠느냐고 하면서요. 그뿐 아니라 먹이까지 주고 함께 삽니다.

<하느님의 눈물>에서는 어린 토끼 이야기가 나와요. 토끼가 풀을 먹으려고 하니 풀들이 바르르 떨면서 "먹으려면 어서 먹어"하고 다그칩니다. 토끼는 그런 모습을 보며 그만 마음이 여려져서 어쩌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렇게 하루 내내 아무것도 못 먹고 굶은 저녁 때, 하느님에게 묻습니다. 왜 토끼 자신은 예쁜 꽃과 풀을 먹도록 만들었느냐고, 바람과 이슬만 먹고도 살 수 있게 하지, 왜 다른 생명을 죽이며 자신이 살아가게 만들었느냐고 묻습니다. 토끼가 항변하는 말에 하느님은 말문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동안 느낌표 책으로 뽑힌 많은 좋은 책과, 좋은 책을 쓴 훌륭한 분들이 계시지만,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사랑스러움과 믿음직스러움과 따뜻함을 지니며 살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겠느냐고요.

보잘것없다는 자기 몸뚱이 하나를 겨우 추스르며 사는 할아버지입니다. 남의 것 뺏지 않고 조용조용 살아갑니다. 없는 것도 베풀고, 전기기구 하나 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폐병 앓으며 뱉어내는 기침과 토해내는 피 한 줌을 부여잡고 원고지 한 칸 한 칸 겨우 메꾸며 글을 쓰고요. 자기 온 생명을 바쳐서 쓴 글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룬 책이라서 그럴까요. 어느 책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애틋함이 묻어나는 권정생 할아버지 책입니다.

<벙어리 동찬이> 겉그림 - 나중에 <짱구네 고추밭 소동>으로 책이름을 바꿉니다. 조촐하면서 살아가는 희망을 안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지만 따뜻한 이웃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요.
<벙어리 동찬이> 겉그림 - 나중에 <짱구네 고추밭 소동>으로 책이름을 바꿉니다. 조촐하면서 살아가는 희망을 안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지만 따뜻한 이웃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요. ⓒ 웅진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글은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좋아하고, 아이들이 좋아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좋아한다지요. 그리고 나서 우리 같은 보통 어른들이 좋아해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으며 따돌림받는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믿음을 펼친다고 할까요.

'느낌표 책'은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을 널리 읽도록 이끄는 좋은 운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 좋은 모습도 많은 게 `느낌표 책'입니다.

<우리들의 하느님>과 얽혀서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문화방송사에서 김종철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들의 하느님>이 `느낌표 책'에 뽑혔으니 방송 전에 20만 부를 보내 달라"고 했다지요. 그런데 김종철 선생님은 "안 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니 방송사에서 아주 당황해 하더라지요. 책이 `천박'하게 소개되는 게 싫고, 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생각이 있어서 힘들면서도 그동안 <녹색평론>을 만들어 왔는데, 그 가치관과 생각을 깨거나 흐릴 수 없었지 싶습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방송사 사람에게 권정생 할아버지에게 손수 전화해서 허락을 받아 보라고 했더랍니다. 그랬더니 권정생 할아버지 또한 `느낌표 책 뽑히기'를 거절하셨다는군요.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혼자 책을 고르는 순간이다. 그걸 왜 방송에서 막느냐" 하고 말하면서요.

김종철 선생님이나 권정생 할아버지는 "책이 많이 팔리기 앞서, 책이라는 그릇에 담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책을 억지로 쥐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고르고, 여러 가지 책을 살피고 뒤지면서 진짜 좋은 책을 찾는 즐거움을 가르치고 얻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를 살찌우고 아름답게 가꾸는 좋은 책을 세상에 펴내고, 우리들도 즐겁게 좋은 책 하나를 만나며 살아가도록 이끌지 싶습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녹색평론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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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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