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치가 않아! 내가 못나고 힘이 없어 우리 성식이를 죽인 거야. 창피하고 미안해서 우리 성식이 얼굴을 볼 수 가 없어. 어떡해 봐…. 죽을 때까지 꼭 밝혀 내고 말 거야. 밝혀 내야돼요. 내 죽는 한이 있더라도…."
2002년 1월 2일에 입대(23사단 58연대 1대대 1중대 2소대)하여 7월 3일 일병 계급을 단 박성식(22)군은 불과 이틀만에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해안 초소 경계 근무 중 상병 최수인(22)의 심한 폭행을 견디다 못해 소총으로 쏴 죽이고 두려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것이 군에서 말한 사건의 전말이다.
내달이면 박 일병이 사망한 지 일 주년이 되지만 아직도 그의 시신은 장례를 못 치르고 강릉 국군 병원 냉동실에 부검 된 채 보관돼있다. 반면 상병 최수인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만에 '순직' 으로 수사가 종결돼 국립 묘지에 안장됐다.
이에 대해 박 일병의 어머니 김미숙(48)씨는 "만약 내 아들이 정말 최 상병을 죽였다면 내가 그쪽 부모님을 직접 만나 무릎 꿇고 백 번 천 번 사죄를 해야 한다. 근데 왜 우리를 단 한번도 만나게 해주지 않는 것인가?" 라며 "죽은 최 상병이 유일한 아들인 걸로 알고 있다. 당연히 우리를 만나 울분이라도 표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사고가 난 후 박 일병과 최 상병은 각각 다른 병원으로 후송 됐다. 김씨는 최 상병의 부모, 군대와 직접 삼자대면을 하기 위해 군에 요청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밖에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의 전화 번호를 남기는 등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아직까지 최 상병의 부모와 직접 전화 통화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최 상병은 몇 번의 폭행 혐의로 다른 부대에서 전출 온 상병이었고 몇 일 후에는 곧 영창으로 소환될 대기자였다.
"한 장소에서 똑같은 사건 아래 사람이 같이 죽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수사가 끝나지 않아 장례도 못 치르고 있고 그 쪽은 영창에 갈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수사가 종결 돼 사건 발생 일주일만에 국립 묘지에 묻혔어요."
아들 죽음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김씨의 절규가 높아지자 어떤 이들은 "아들을 국립 묘지에 묻히게 하고 싶어 고집을 피운다" 라며 그녀의 깊은 속내를 오해하기도 한다. 박 일병이 사망했을 때 부대가 제일 먼저 알린 사람은 박 일병의 가족이 아니었다. 박 일병의 친한 친구와 친한 여자 친구에게 먼저 알린 후 맨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사망 소식을 전했다.
"성식이 친구들에게 열 세 번이나 전화를 했어요. 당연히 부모인 내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데 군대가 성식이 친구랑 통화하면서 신변 조사를 한 거야. 보통 군인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애인의 변절, 집안 문제, 내성적인 성격 이 세 가지로 정해져 있는데, 우리 성식이는 거기에 해당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거야."
얼마 후 박 일병의 부음을 전하는 서류가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공문 서류와 봉투에 의례적으로 있어야 할 책임자의 직인, 사인, 도장 등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김씨는 "엄연히 공공 기관인 군대에서 서류를 보냈는데 어찌 책임자의 도장이나 직인 하나 찍혀 있지 않을 수 있나? 결국 우리 아들 죽음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사건 후 이례적으로 군에서는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박 일병의 사건을 알렸다. 이어 박 일병의 죽음은 자살로 판명되었다. 그 후 박 일병의 죽음에 많은 허점을 발견한 김씨는 군에게 투명한 수사 과정 공개를 요구했지만, 군은 '사회적 중요성' 과 '국민적 관심의 필요성' 이 떨어진다며 사건에 대해 함구할 뿐이었다.
김씨는 "아니 내 아들이 죽었는데 왜 사회적 중요성이나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가? 부모로서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가 필요 한 것인가?" 라며 절박하게 반박했다.
김씨에게는 박 일병과 똑같은 부대를 나온 큰아들이 하나 더 있다. 국방부 앞에서 동생의 투명한 수사를 요청하며 혼자 일인 시위를 하던 큰아들은 전경에게 맞아 이빨이 부서졌다. 군대는 겹겹의 바리케이드로, 국방부는 경찰과 전경을 세워 유가족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도대체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그 누구에게 내 아들의 죽음을 정확히 밝혀달라고 해야 하는가?" 라고 답답해하는 김씨는 꿈에 나온 박 일병의 얘기를 전했다.
"꿈에서 성식이를 세 번 만났어요. 근데 한번은 심하게 맞아 눈이 부어오른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엄마 뭐해?' 라고 하더라구요. 알고 보니 이상하게도 다음 날이 최 상병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날이었어요. 또 한번은 꿈에서 '네가 정말 최 상병을 죽였냐' 고 물었는데 성식이가 하는 말이 '여러 명이 죽였다' 라고 하더라구요."
김씨는 박 일병에 대해 "평소엔 나방 한 마리조차도 무서워 자기 방으로 피하는 아들이다. 지금껏 친구들과 단 한번도 싸워 본 적이 없는 애였다" 며 "한 군 상사는 '내가 아는 성식이 성격으로 그랬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최 상병한테 구타를 당한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우리 대한민국 군대는 지독히 폐쇄적이고 끔찍한 곳이에요. 군사 기밀이니 안보니 하며 우리 유가족의 접근을 막는데 솔직히 난 그게 뭔지도 몰라요. 내 손에 주어진다고 해도 그걸 어디에 어떻게 팔아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연이어 김씨는 "도대체 우리 나라가 정말 변하고 있는 게 맞는가? 옛날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며 "이민을 가려는 유가족들의 절박한 심정을 얼마나 아느냐" 고 차마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아픔을 전했다.
김씨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다. 군·경 의문사 수사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는 것, 성식이가 죽은 이유를 밝히는 것, 그리고 다른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성식이 같은 억울한 아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소원한다.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에게 전하는 그녀의 말을 대신한다.
"난 '군대' 의 '군' 자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번 사건은 도무지 말이 안돼요. 성식이가 죽을 때 서해교전이 터져 군대에 비상이 걸렸는데 어떻해 100미터 근방 초소에서 일어난 7발의 총성을 못 들었나요? 노 대통령은 국방부에서 보고되는 말만 믿지 마세요. 우리 유가족들이 어떤 심정으로 지금 살고 있는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제발 직접 보고 들어주세요."
| | "군. 경 의문사 진상규명 촉구한다!" | | | 5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군.경 의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가 열렸다 | | | |
| | | ⓒ김진석 | `군의문사 진상 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이하 군가협)와 '천주교인권위 군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5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에서 `군경 의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 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군, 경찰, 정부 그 어느 누구도 억울한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며 "사건의 투명한 진상 규명과 국가적 책임" 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추모제는 각 교단별(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추모의식, 추모공연(박준· 우리나라 - 노래, 한영애- 진혼무, 반지하 - 퍼포먼스), 유가족들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 및 헌화 등으로 이뤄졌으며 참석자들은 집회 후 명동 성당 앞까지 행진했다.
이들 단체들은 이달 말 군 의문사 해결을 위한 공개 토론회를 열고 국회에 '군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청원할 예정이다.
군 경 의문사 유가족이 드리는 호소문
태연히 이틀에 한 명씩 자살을 했다고 말하는 군대: 대한민국 군대
1980년부터 1995년 말까지 15년 5개월간 군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8,951명으로 연평균 577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1996년부터 2002년 7월까지 6년 7개월간 1,53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시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희생된 것입니다.
군 당국에 의하며, 이 가운데 3,853명이 자살입니다. 자살의 동기는 하나같이 내성적인 성격에 따른 부적응, 불우한 가정 환경 비판, 여자친구의 변심 등으로 이유야 어찌됐든 이 나라 군대는 이틀에 한 명 꼴로 군인이 자살을 하는 기막힌 나라입니다. 전. 의경 복무 중 사망하는 젊은이들의 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전, 의경 의문사가 심각한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는지 온 나라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자식을 세 번 죽인 부모의 죄 : 희생자의 넋과 부모의 한을 달래며
군 의문사 부모님들은 아들을 세 번 죽인 부모의 죄를 말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첫째 누구처럼 '빽'이 없어 군대에 보내 아들을 죽였고, 둘째 부검을 통해 시신에 칼을 대어 또 한 번 죽였고, 마지막으로 자살 통보를 받으며 '낙오자' , '부적응자' 라는 불명예스런 멍에를 씌어 죽였다고. 그들은 장례를 치르지 않은 채 몇 년 동안 차가운 냉동고 속에 죽은 아들의 시신을 넣어 두고 있으며, 죽음의 진상을 밝혀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생업마저 포기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일년이 안 돼 저 세상으로 아들을 따라 간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먼저 간 아들들의 넋을 달래고,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소외감과 아들을 일은 상실감에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한을 이 사회가 위무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억울한 죽음 : 국가 책임론
군과 경찰은 복무 중 자살로 결론 내려진 죽음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보기에 그 죽음들은 남들이 다 견뎌내는 병역 의무를 나약함 때문에 도중에 회피하기로 마음먹은 낙오자이자 국가에 피해를 입힌 범죄자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 경 사망사고에 있어 해당 수사기관들의 업무 수행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 할 때까지 추락한 현 시점에서 그들의 논리에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으며 수사기관 역시 납득할 만한 증거나 결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입니다. 그 와중에 국가는 사실상 수수방관만 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이 점만은 분명하다. 우리의 아들들은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에 따라 국가의 부름을 받았고, 일련의 절차에 따라 군 생활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정을 받았으며, 그에 따라 병역 의무를 다하다가 생을 마감한 젊은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군 의문사진상규명과 군 폭력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 / 김은성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