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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한 봉지 가격이 500원을 웃도는 요즘, 강원도 춘천의 번개시장에서는 1000원으로 김밥과 국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시장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단번에 눈에 띄는 김옥순(58)씨의 노점이 바로 그곳입니다.
새벽에 잠깐 장이 들어섰다 아침이면 사라진다고 '번개시장'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김씨가 자리잡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김씨가 만든 김밥과 국수는 맛과 가격 모두 10년 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 번개시장 경기도 그저 그런가 봅니다. 김씨가 준비해 놓은 김밥이 그렇게 많질 않을 걸 보면 말입니다. 청소 일을 하는 남편과 지금은 군에 있는 대학생 아들, 그리고 김씨 이렇게 세 식구 살림하기엔 빠듯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씨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팔면 조금 파는 대로 살고, 많이 팔면 많이 파는 대로 살죠. 욕심에 끝이 있나요?"
다행히 사춘기 때부터 말썽 한번 부리지 않은 아들은 대학도 장학금을 받아 다녔습니다. 올해 2월 군에 입대한 아들은 매일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가 노점 일을 하는 게 안쓰러운지 아들은 전화 할 때마다 이제 그만 쉬시라고 합니다.
김씨에게 쉬는 날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니 쉬는 날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하루를 쉬면 매일 가져가는 분들이 실망할까 쉴 수도 없다고 합니다. 문득 김씨의 겨울나기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쌩쌩 부는 바람을 화롯불 하나에 의지해 장사하려면 꽤나 힘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김씨는 손사래를 칩니다.
"어이구, 왜요. 펄펄 눈 오는데 화롯불 쬐면서 먹는 국물 맛이 얼마나 끝내주는데요? 정말 환상적이죠."
김씨의 낙천적이고 넉넉한 성격을 잠시 잊고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새벽 3시쯤 열리는 번개시장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김씨는 새벽 2시에 일어나 김밥재료와 국수 국물을 만듭니다.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를 일일이 볶기 때문에 시간이 무척 많이 듭니다. 재료를 볶지 않거나 전날 미리 만들어 놓으면 한결 수월할 텐데, 김씨는 굳이 그날그날 만들어 파는 것을 고집합니다.
"손님들만 먹나요? 저도 먹는 거잖아요. 안 볶으면 맛이 없어요. 그리고 전날 만들어 놓으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도 있어 안돼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럴게 해야 맛이 좋아요."
노점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은 김밥과 국수, 부침개입니다. 그 중에서도 김씨의 자랑은 국수입니다. 크게 썬 무와 멸치를 세 시간 가량 푹 끓인 물에 면발을 삶습니다. 그리고 직접 담근 김치를 얹고 김 가루를 송송 뿌려 먹는 국수 맛이 오죽하겠습니다? 국물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따뜻한 국물 한모금에 차가운 새벽 공기쯤이야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김밥은 또 어떤지 아십니까? 6가지 재료를 넣고 고슬고슬한 밥을 통통하게 말아 놓은 김밥은 갈길 바쁜 번개시장 장사치들에게 인기 1순위입니다. 어떤 이는 집어 먹을 틈도 없다고 걸어다니며 김밥 한줄을 통째 베어 먹기도 합니다.
김씨의 집은 노점에서 5분 거리 내외에 있습니다. 한 평 남짓 작은 공간엔 김밥을 쌓아 둘만한 곳이 없습니다. 김밥이 모자라다 싶으면 집으로 가 미리 만들어 놓은 김밥을 가져옵니다. 그 사이 노점이 비는 건 당연합니다. 행여 누군가 김밥을 가져갈까 조바심이 날 듯도 한데 김씨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1000원짜리 김밥을 몰래 훔쳐먹을 정도면 정말 돈이 없거나 정말 배가 고픈 사람이겠지요. 괜찮아요."
날이 밝자, 옆집 채소 가게도 문을 엽니다. 주인 김영길씨는 번개시장을 관리하는 대장인데, '머니' 아버지로도 통합니다. 김영길씨가 기르는 강아지 '머니'는 여간 까불까불한 게 아닙니다.
서로간에 "잘 잤느냐"는 인사말은 없습니다. 그저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간' 이래봐야 하룻밤인데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김영길씨는 어제 화투를 치다 돈을 잃었다고 푸념합니다. 그러자 김씨가 노름을 했다고 나무랍니다.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나랑 해, 나랑 맞고를 치자고‥."
김씨는 특별한 취미가 없습니다. 남들처럼 관광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노래 부르며 웃고 떠드는 것도 취미 없습니다. 그저 시간이 나면 가까운 절을 찾아 불공드리는 게 전부입니다. 김씨에게 그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조금 모자라게 살아야죠. 밑지면서 살아야지."
김씨가 조금 모자라게 살자고 합니다. 조금씩만 밑지면서 살자고 합니다. 위로 올라가지 말고 아래로 들어가라 합니다.
하나를 가지면 두 개가 갖고 싶고, 두 개를 가지면 세 개가 탐이 납니다. 이런 우리네 욕심이 다른 이가 가져야 할 하나마저도 뺏고 있지는 않은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속에도 김씨의 목소리가 전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