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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열린 대구지하철참사 공판에서 중앙로 역에서도 단독 판단에 따라 1080호 전동차를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앙로 역에 비상정지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은 검찰 수사에서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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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수사도 문제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대책이 눈가림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왜 참사를 막지 못했는가에 대해 실무자들과 전문가들을 모아 철저하게 검토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 김광재
대형사고만 나면 언론에서는 '이번에도 인재(人災)'라며 관계자들의 잘못을 강조한다. 그러나 관계기관의 개선대책은 설비, 장비의 교체, 신설 등에 집중돼 있고 예산 확보에 노력한다는 식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대구시, 지하철공사, 소방본부가 내놓은 대책도 마찬가지다. 사람 탓은 없고 전부 설비, 기계 탓이다.

설비, 장비, 기계적 시스템 등을 하드웨어적 요소라 하고, 관리자들의 숙련도, 안전의식, 책임감 등을 소프트웨어적 요소라 부른다면, 이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루면서 개선돼야 한다. 돈만 들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발상이 계속되는 참사의 고리를 끊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다.

참사 이후 대구지하철의 눈에 띄는 변화는 표지판이 커졌고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사 이후 대구지하철의 눈에 띄는 변화는 표지판이 커졌고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김광재
대구시·지하철공사

3월 초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는 '지하철 안전 운행 종합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단기대책은 △시트에 방염스프레이 살포 △객실내 산소캔 손전등 비치 △CC-TV디지털화, 피난 유도등 조도 향상 △시설물 특별점검 △전문가 초빙 운전분야 교육실시, 역사소방훈련 △비상대비 상시교육 확행 등이다.

장기대책으로는 △객실 내장재 불연성 자재로 교체 △중앙정부가 지하철 건설·운영토록 건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방염 스프레이 뿌리는 것은 지하철과 같이 공기 흐름이 빠른 경우에는 방염효과는 없고 오히려 유독가스만 더 많이 발생시켜 피해를 확대한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의 지적이 있었다.

또 설비점검, 안전교육 등을 지금까지와 같이 형식적으로 하면 실제 상황에서는 오히려 화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이번 참사를 통해 실증됐다. 기관사는 불난 역사로 전동찰를 운전해 들어왔으며, 사령실도 역도 진입을 막지 못했고, 승객들에게 안전한 대피로를 안내하는 방송은 없었다. 피해자들은 설마하며 시스템을 믿고 있다 중요한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대구시의 장기대책처럼 지하철 건설과 운영을 중앙에서 맡으면 대구시의 재정에 숨통도 뚫릴 것이고, 시민안전에 보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대구시가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대책은 도외시한 채, 중앙정부에 지하철을 떠넘기는 것만이 최종적인 대책이라면 무책임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더구나 정부는 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하철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각 역마다 배연 경로와 가장 안전한 피난동선을 찾아내고, 피난 유도 방송 내용이 결정돼야 한다. 또 승무원과 역무원들에게 비상사태시 당황하지 않고 냉정한 판단을 할 능력을 길러주고, 침착·신속한 대처 요령을 몸으로 익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또 시민들의 안전의식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에 의해 지난달 각계 전문가들로 안전점검팀이 구성됐다. 그 과정에서도 대구시와 지하철공사 측은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협의에 임해, 대구시가 마지못해 안전점검을 하려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7개 분야에 걸쳐 안전 점검을 하고 있다. 그 결과가 주목된다.

소방본부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모씨는 11시 20분 가족과 휴대폰 통화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이제 끝날 것 같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화재 발생시각이 오전 9시 53분이니 이씨는 1시간 27분 동안 생존한 상태로 현장에 있었다.

11시 20분에 이씨와 가족이 통화한 기록
11시 20분에 이씨와 가족이 통화한 기록 ⓒ 김광재
이씨의 아들은 "그 때까지 살아 계셨으니 대구역이나 반월당역으로 진입해 구출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1시간 30분동안 생존해 있었던 사람을 구출하지 못했다는 점은 당시 인명구조에 문제점이 없었는지 되짚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또 대부분 희생자들의 마지막 통화가 10시 20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씨가 1시간동안 더 생존할 수 있었던 원인도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조사는 없었다.

소방본부가 참사이후 내놓은 문제점 및 개선대책은 인력부족, 장비부족이 문제점이고 이들을 확충하는 것이 대책의 전부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 23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구조에 노력을 했다. 소방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출동초기 중앙로역 도면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굴뚝이 돼 버린 출입구로 진입을 시도했다는 점 등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여기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각 소방서마다 관내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시설의 방재관련 정보들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피난로를 가로막아 문제가 됐던 방화셔터와 먼지 습기로 인한 오작동이 많은 연기감지기에 대한 대책도 없다.

지하철 내장재를 불연재로 전면교체하고, 지하철건설과 운영을 중앙정부가 맡고, 소방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는 것만으로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시스템의 오작동은 사람의 오판을 부르고, 사람의 오판은 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요컨대 대구시의 대책에는 사람이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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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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