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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무상, 의로운 대한 남아가 동경했던 신흥무관학교 옛 터가 옥수수 밭으로 변했다.
세월 무상, 의로운 대한 남아가 동경했던 신흥무관학교 옛 터가 옥수수 밭으로 변했다. ⓒ 박도
고산자

간밤에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 더위도 피하고 차들도 없는 거리를 쾌적하게 달리고자 아침 5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세면장에 갔으나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6시 이후에 나온다고 했다.

반석은 내륙 한 가운데라서 물이 귀해 제한 급수를 하나 보다. 궁하면 통한다고, 마침 보온병에 찻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걸로 이를 닦고 남은 물로 수건을 적셔서 고양이처럼 얼굴만 문질렀다.

신흥무관학교를 찾기 위해 들른 고산자 인민정부
신흥무관학교를 찾기 위해 들른 고산자 인민정부 ⓒ 박도
5시 정각. 독립운동가 산실이었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옛 터가 있는 유하현 고산자(孤山子)로 가기 위해 반석을 출발했다.

반석 시가지를 벗어나자 그렇게 상큼할 수 없었다. 막 동산을 오르는 태양, 온통 녹음으로 싱그러운 도로 언저리의 풍경, 신선한 아침 공기, 거기다 도로는 온통 텅 비어 있었다.

교통이 원활했던 탓으로 예정보다 일찍 유하현 고산자 인민정부 청사에 이르렀다. 거기서 안내를 받아 전승향(全勝鄕) 대두자(大肚子) 마을을 비교적 쉽게 찾았다. 그때 시간이 7시 10분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옛 터를 현재 경작하고 있다는 원금석 노인 (오른쪽에서 두번째)
신흥무관학교 옛 터를 현재 경작하고 있다는 원금석 노인 (오른쪽에서 두번째) ⓒ 박도
먼저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아침 산책을 하고 있는 노인에게 이 마을에 원금석이란 분이 아직도 살아 계시냐고 묻자, 흰 이빨을 드러내며 빙그레 웃으면서 바로 당신이라고 했다.

8년 전에 강용권 선생이 답사할 때 안내했던 원 노인을 너무 쉽게 만나게 되어 기분이 매우 좋았다. 원금석(71) 옹은 목발을 짚고 다녔다. 유적지 안내를 부탁드리자 흔쾌히 들어주었다.

먼저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전승향 조선족 소학교로 갔다. 여름방학 중이라 학교 교무실과 교실은 텅 비어 있었고 운동장 한 쪽에서 노인 대여섯 분이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운동장으로 들어가자 노인 한 분이 다가오면서 인사를 청하였다. 당신은 평북 선천 출신의 김성봉(63)으로 이 학교 교원이라고 했다.

전승향 조선족 소학교
전승향 조선족 소학교 ⓒ 박도
이 학교는 자그마한 시골 학교로 전교생이 100명 남짓했다. 전승향 마을 주민 중에는 조선족이 절반 정도인 70가구 600여 명 거주한 바, 이 대두자 마을에는 20여 가구가 산다고 했다.

김 선생은 만리 길을 찾아온 고국의 손님을 교무실로 안내하려 했지만, 사양을 하고 원금석 노인을 뒤따라 신흥무관학교 옛 터로 갔다.

신흥무관학교의 옛 터는 마을에서 200여m 떨어진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옥수수 밭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옛 터에는 건물의 기둥과 서까래가 풍우에 썩은 채 남아 있었지만, 옥수수 밭으로 개간된 후로는 그마저 다 없어졌다고 원 노인은 그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그 새 신흥무관학교가 옥수수 밭으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말함인가 보다.

옥수수 밭이 된 신흥무관학교 옛 터를 가리키는 원금석 노인
옥수수 밭이 된 신흥무관학교 옛 터를 가리키는 원금석 노인 ⓒ 박도
지금은 그나마 당시의 유적지를 증언해 줄 노인이나마 생존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이분들도 돌아가신다면 신흥무관학교는 전설로만 전해질 뿐이리라.

옥수수 밭에 올라갔으나 한 길이 넘은 옥수숫대만 빽빽할 뿐이었다. 당시 뜻 있는 조선 젊은이의 선망이었던 신흥무관학교의 형체는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찾을 수 없었다.

동행한 이 선생은 당신 아버지 모교인지라 옥수수 밭고랑을 헤치면서 선친의 남은 체취라도 맡을 양인지 이내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한국 정부나 관계 당국에서는 밥그릇 싸움, 말로만 애국하지 말고, 중국정부와 협조하여 여기에다가 ‘신흥무관학교 옛 터’라는 표지석이라도 제대로 세워서 훗날 자랑스런 조상의 유적을 답사하려는 역사학도가 이곳을 찾았을 때 황당치 않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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