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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 일병 구하기'를 1면에 상세히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4월 3일자 인터넷판 기사
'린치 일병 구하기'를 1면에 상세히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4월 3일자 인터넷판 기사
그러나 며칠 후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서 전해진 뉴스 한 토막은 사태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한 미군병사를 미군특수부대의 치밀한 작전을 통해 무사히 구해냈다는 것이다. 이 보도가 전해지자 미군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국민들의 여론 역시 찬성론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리고 미국언론은 한 달이 넘도록 방송과 지면을 온통 '린치일병 구하기' 뒷이야기로 도배했다. 이라크군의 포화 속에서 그녀를 구해 낸 특수부대의 용맹스러움, 전시 사병 한 명에 대해 보이는 미군 지도부의 숭고한 배려, 칼과 총에 벌집이 되었지만 "생포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며 혼자 이라크군과 맞서 싸운 병사의 용기 등. 어떤 영화나 소설도 이 작전보다 극적일 수는 없었다.

미국언론이 기침을 하면 이쪽에서는 재채기를 해대는 한국언론이 그냥 있을 리 없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만물상'에 실린 박두식 논설위원의 글을 보자. 그는 린치일병 구출작전을 언급하면서, "미국은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애국심은 그냥 솟아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가꿔 가는 것이라는 점"을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글을 일부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인들의 애국주의에 대해 정부가 주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포로 구출'이다. 미국만큼 포로로 잡힌 자국 병사나 실종 군인 문제에 '광적(狂的)'일 정도로 집착하는 나라도 드물다. 99년 코소보 전쟁 때는 3명의 미군 포로 석방 교섭을 위해 전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미·북 관계가 최악이지만 지금도 한국전 당시 실종된 미군을 찾으려는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을 정도다.

'미국은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런 노력들이 다시 미국인의 애국심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미군 특수부대가 최근 이라크에 포로로 잡혀있던 19세의 제시카 린치 양을 구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전체가 흥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소식에 부시 대통령은 '기쁨으로 가득하다(full of joy)'는 성명을 냈고, 전선에 투입된 미군들의 사기도 치솟고 있다고 한다. 오폭(誤爆)으로 인한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들을 생각한다면 자국 포로 1명의 구출을 놓고 온갖 호들갑을 떠는 미국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애국심은 그냥 솟아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가꿔 가는 것이라는 점만은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듯싶다."
- 박두식 논설위원 [만물상] '린치 일병 구하기' 중에서, <조선일보> 2003.4.03.


그러나 이후 다른 언론들을 통해서 '린치일병 구하기'가 '조작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린치 일병의 몸에는 총과 칼로 입은 상처가 없었으며, 그녀의 총은 고장이 나서 발사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더 우스운 것은 미 특수부대가 맞서 싸웠다는 그 이라크군은 아예 그곳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린치일병을 보호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그녀를 미군부대로 데려다주려고 하자 총을 쏘면서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발포가 오히려 린치일병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이런 행동을 보이던 미군이 갑자기 밤에 병원을 기습해서 린치 일병을 '구출'해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빈총을 들고 폭발음까지 내면서 카메라 앞에서 '구출작전쇼'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태의 전모가 밝혀지자 당시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워싱턴 포스트>는 오류를 인정하고 정정보도를 내보냈지만 독자들의 항의는 그치지 않고 있다.

다른 언론사들도 이 '국민을 기만한 사기극'을 비판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즈>는 20일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린치 일병 보도는 대량파괴무기(W.M.D)나 바스라의 봉기처럼 과장되고 왜곡된 보도로 국민을 우롱한 대표적인 예라고 밝혔다.

<시카고트리뷴>은 19일 사설을 통해 "이 사건이야말로 국민들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있는지를 회의하도록 요구하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논평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워싱턴포스트>가 오류를 인정하기 이전부터 애국주의와 결합한 상업주의 보도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가디언>지에 5월 15일 실렸던 "제시카의 진실(The Truth about Jessica)"이라는 제목의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 구출작전은 더 없이 절묘한 시점에 수행되었다. 부시의 협조요청이 거절당하고,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던 그 순간에 말이다. 린치일병 구출사건은 미디어가 낳은 가장 놀라운 보도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이 사건은 헐리우드 영화제작자가 미 국방부의 미디어 담당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미국이 앞으로 개입할 전쟁에 대해 미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보도하기를 원하는지를 일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가디언> 2003. 5. 15.


이런 오보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전쟁으로 보수화된 '국민정서'에 맞춘 뉴스를 만들어 특종을 낸 기자 개인의 비뚤어진 직업의식을 비판할 수도 있고, 공익을 팽개치고 뉴스를 상품으로 팔기 바쁜 상업언론의 사익 추구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국민을 대변하는 제도가 아니라 사익극대화를 위한 재벌기업으로, 그리고 국민을 사회여론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자 소비자로 전락시킨 구조적 문제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문제의 언론사가 스스로 오보를 밝힌 것이 아니라, 다른 언론사의 비판적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에서 매체비평을 통한 상호감시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따라서 언론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된다"란 결론을 내린다면 어떨까?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이 주장은 한국의 한 일간지가 '린치일병 구하기'의 오보사건을 논평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두 달 전 이 작전을 보고 감동을 받아 "미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조선일보> 박두식 논설위원에게서 나왔다. 그는 린치일병 소동이 조작극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다음과 같이 말을 바꿨다.

"지난 이라크 전쟁이 낳은 최대의 뉴스는 '린치 일병 구하기'였다. 지난 4월 초부터 미국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한 이 기사들은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극적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 시골 출신의 20살 여군(女軍)이 부상을 무릅쓰고 적과 맞서다 포로가 됐고, 미국 특수 부대가 투입돼 그를 구출한다는 '람보' 영화보다 더 람보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지(紙)는 당시 익명의 미군 관계자들을 인용해 "린치 일병은 생포되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끝까지 싸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린치 일병 영웅만들기' 기사는 오보(誤報)로 판명되고 있다. 이라크군을 사살하기는커녕 린치 일병의 총은 오작동으로 아예 발사도 되지 않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미국 특수부대가 병원을 급습(?)했을 때 이라크군은 이미 하루 전에 그곳을 빠져나갔고 남아 있던 의료진들은 한시라도 빨리 린치 일병을 미군측에 인도하려고 안달이었다는 것이다.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익명의 군 소식통으로부터 듣고 확인한 애매한 첩보와 말(言)만 갖고 속보경쟁하듯 기사를 썼던 '잘못'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언론의 신뢰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린치 스토리는 이제 미국 언론의 악몽(惡夢)으로 변했다."
- 박두식 논설위원 [만물상] '언론이 망하고 흥하는 것은…' 중에서 <조선일보> 2003. 6. 20.


그리고 그는 자신의 글을 '언론방임주의론'으로 맺고 있다. "직필과 곡필을 분간하는 독자들의 엄한 감시의 눈초리" 때문에 결국 오보는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의 글을 좀 더 보기로 하자.

"올해로 창간 152년인 뉴욕타임스측은 지금 상황을 '창간 이후 최대 위기'라고 인정하고 있다. 기사를 둘러싼 잇따른 논란은 이제 경영상의 압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언론이 망하고 흥하는 것은 직필(直筆)과 곡필(曲筆)을 분간하는 독자들의 엄한 감시의 눈초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게 요즘 미국의 상황이다."
- 박두식 논설위원(dspark@chosun.com) [만물상] '언론이 망하고 흥하는 것은…' 중에서 <조선일보> 2003. 6. 20.


결론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언론개혁이니 뭐니 하며 정부와 시민단체가 나서지 않아도 독자들은 사실과 오보를 다 가려내고, '나쁜 신문'과 '좋은 신문'을 엄중히 가려 시장에서 준엄하게 심판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를 뒤흔든 이 오보사건은 한국의 언론사에 의해 간단히 '책임 회피론'과 '방임주의론'의 교훈이 되고 말았다.

<워싱턴포스트>의 오보가 독자의 '엄한 감시의 눈초리'가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 의해서 드러났다는 사실을 박두식 논설위원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 어처구니 없는 오보에 대해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흥분했던 박두식 논설위원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국민들은 다 가지고 있는 그 "엄한 감시의 눈초리"를 당신은 왜 못 가지고 있었느냐고.

'독자들의 준엄한 판단'이란 듣기 아름다운 말은 언론기업이 의도적으로 유포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읽고 있는 신문이 '극우 이데올로그'라든가 '상업적 선정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주권'을 내세운 언론사의 내심은 그들이 애용하던 표어에 더 솔직히 드러난다.

"우리가 쓰면 여론이 됩니다."

'독자들의 심판'을 그토록 신봉하는 신문사가 방송에 대해서 그렇게 열을 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늘상 '저질'과 '어용'이라는 거친 평가어로 방송을 비판해온 신문사들이 이제는 아예 '방송개혁'을 외치고 나섰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방송개혁'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국민들은 '좋은 방송'과 '나쁜 방송'을 다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준엄한 감시의 눈초리"를 가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건대, 민영화와 미디어 교차소유금지 폐지를 골격으로 하는 '방송개혁'은 사익추구를 은폐하는 또 다른 오보에 지나지 않는다. 신문시장의 지배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의 거대신문사들은 '우리도 방송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는 메시지를 '방송개혁'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국민들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그들이 쓰면 여론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린치일병 구하기'는 두 달만에 오보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폭도'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그리고 '구국의 영웅'을 '전씨'로 슬며시 바꾼 과거의 '오보'의 내력에 대해 별 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굳이 언론사가 나서서 밝히지 않아도 국민들이 잘 알아서 판단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국민들의 '감시의 눈초리'는 더디 움직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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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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