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발 분규 회오리가 결국 시작됐다.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사업장인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이헌구)는 2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한 결과 다음달 2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전 조합원 3만8917명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은 3만5234명으로 이 중 파업에 찬성한 조합원은 2만1329명(재적조합원 54.8%)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25일 경고성 파업을 시작으로 한 노동계의 여름투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지난 23일 새벽부터 부산·대구·인천지하철 노조를 시작으로 한 운송부문 파업이 커다란 파괴력을 보이지 못함에 따라 현대차 노조의 총파업이 이번 노동계 여름투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24일 새벽 1시 전체 조합원 3만9000여명 중 야간조 6000여명을 시작으로 이날 오후 7시가 되어서야 모든 투표를 마무리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현대차 분규가 그 어느 해보다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올해 국내 노동계의 임금 및 단체협약 투쟁을 선도하고 노동계의 공동요구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전위대로 나설 것임을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의 한 관계자는 "예상대로 총파업이 결의됨에 따라 민주노총의 7월 2일 총파업에 합류하기 위한 쟁의 수순을 밟고 있다"면서 "이번 쟁의가 겉으론 올해 임단협 협상의 부진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주 40시간 근무제와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노동계의 공동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대리전의 성격이 짙다"고 밝혔다.
현대차 노조는 올 단체협약 요구안에 ▲주 40시간 근무 명문화 ▲비정규직 조직화와 차별 철폐 ▲해외공장 설립 등 자본 이동시 노사공동결정 등 3대 핵심요구안을 확정해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산하 금속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또 임금협상과 관련해서도 임금 12만4989원(기본급 대비 11.01%), 상여금 100% 인상, 성과급 200%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단협과 관련한 핵심 요구사항은 모두 현행법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인사경영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단위 사업장 노사간에 협의할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임협 부분에 대해서도 "경영성과를 고려하지 않은 과다한 요구"라고 반박했다.
한편 현대차 노조는 이날 찬반투표를 시작으로 25일에는 4시간 부분파업, 민주노총 울산본부 임단협 투쟁 전진대회 개최, 26일에는 2시간 부분파업, 27일에는 산별 전환을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 실시 등의 쟁의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에도 전체 조합원 3만7859명 중 3만4681명(91.6%)이 투표에 참가해 이 가운데 2만7416명(재적대비 72.4%)이 쟁의행위에 찬성표를 던져 총파업에 들어간 바 있다.
현대차 노조가 요구하는 3대 핵심요구안은?
이번 현대차 총파업의 가장 큰 현안은 주 5일제 근무다. 정부는 지난 10월 한국노총과 합의를 통해 주5일제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지만, 노사정에서 탈퇴한 민주노총이 임금삭감 없는 40시간 근로제를 요구함에 따라 표류하고 있다.
기존 근로조건을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근로시간만 줄여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인 반면 사용자측은 합리적인 선에서 휴가 및 휴일제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아무 대안 없이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연간 휴일수가 160일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임금은 그대로인데 휴일만 늘이자고 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참고로 선진국의 연간 휴가일수는 일본이 129~139일, 미국이 120~163일, 영국이 136일이며 우리와 경쟁국인 대만은 107~130일이다.
이번 임·단협의 3대 핵심안을 들여다보면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요구안'이 눈에 띤다. 그동안 노조로부터도 역차별 받아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다.
세부 사항을 들여다보면 ▲사내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정규직 대비 80.1% 수준인 기본급 9만6000원(+@400원)으로 인상 ▲근속수당, 유해수당, 성과금, 상여금 등 적용범위와 기준 정규직 동일 적용 ▲연월차 적치와 분할 사용, 경조 및 특별휴가 적용범위와 기준 정규직 동일 적용 등이다.
현대차 노조의 한 관계자는 "금속연맹에서 실시한 '금속산업 사내하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사내 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 임금 총액 대비 58.9%에 불과하다"면서 "사내하청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를 축소해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격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여 중기적으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차 노조의 3대 핵심 요구안 가운데 노조 측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 '해외공장 설립 등 자본 이동시 노사공동결정안' 이다.
이 안의 주요 골자는 현대차의 미국, 중국 및 기타해외 현지공장설립과 합작에 따른 자본이동에 대한 제반사항을 노조와 합의하에 처리하자는 것이다.
세부사항을 들여다보면 ▲종업원 종신고용(정년) 보장 ▲국내시설 유지 보장 ▲국내 생산물량 보장 및 신규공장설립 ▲노조의 경영 참가 보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의 협상안에 대한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지만 현재 대응안을 준비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해외공장 설립과 자본 이동에 대한 문제는 회사가 정책적으로 처리할 문제지 노조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