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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쪽에 송금한 일과 관련해서 특별검사 활동이 진행된 것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올해 남쪽 최대 민간 통일운동 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줄여서 민화협)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모든 행사에 참가해야 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에는 백범기념관에서 민족공동행사가 있었다. 남과 북 그리고 해외가 똑같은 결의문을 가지고 같은 시간에 행사를 했다. 남쪽에 있는 모든 통일단체가 함께 치른 대회였지만 실내에서 간단히 치렀다. 그리고 오후 12시경 경의선을 타고 민통선 안에 있는 도라산역에 가서 오후 2시부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 평화 대회를 가졌다.
당초에는 군사분계선 안에 있는 상징적 장소에서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많은 사람이 참석해서 열린 음악회 형식의 대규모 문예행사를 포함해서 다양한 행사를 갖기로 지난 3월 합의했는데 북미 관계의 긴장과 사스 파동 등으로 행사가 축소된 셈이었다. 1000명 정도가 도라산 역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옷을 입어도 옷이 젖는 것을 막을 수 없을 만큼 비는 거세게 쏟아졌다.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통일을 향해 성큼 다가서기로 약속을 한 날, 외세의 힘 때문에 멈칫거리고 있는 못난 우리를 향해 하늘이 꾸짖음을 내리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예정대로 통일의 염원이 담긴 솟대세우기에 이어 본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상한 분들을 대표하신 분께서 인사말을 하셨고, 독일과 일본에서 온 평화운동가를 비롯해서 천도교 교령과 국회의원 등 여러 사람의 연설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고 문익환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박용길 장로께서 결의문을 힘차게 읽는 것으로 본 대회는 끝났다.
이어서 축하 공연이 있었는데 첫 순서가 어린이 노래패였다. 일곱 살 꼬마부터 열 서넛의 어린이까지 20명으로 구성된 노래패의 몸짓과 노래는 매우 감동적이었으나 비가 계속 내려 안쓰러웠다.
이어서 어머니 합창단의 노래 공연과 몇몇 가수의 노래가 이어졌다. 그리고 안치환과 자유의 공연이 시작될 때쯤에는 비가 그쳤다. 그래서 평화 통일의 배를 띄우는 상징의식이 진행될 때는 참석한 이들 모두 비옷을 벗고 환한 마음으로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중에 살그머니 전해준 얘기가 지금껏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에 남아있다. 어린이들이 비를 맞으며 공연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간절히 마음 속으로 빌었단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에 나오는 얘기를 떠올리면서, '하느님,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이 비를 그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를 계속 드렸더니 빗줄기가 약해지고 머지 않아 비가 그치더라는 것이다.
하긴 나도 그 책을 믿고 대천 바닷가에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다가 작은 구름을 보면서 '저 구름을 없애 주니 고맙습니다'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고 쳐다보고 있자니 5분이 지나지 않아 없어지는 것을 직접 체험한 일이 있어 그 얘기를 흘려 들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지금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 지에 따라 엄청난 영향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어쩌면 7천만 겨레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전쟁을 획책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열패감이 지금 이 땅에 널리 퍼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뜻이 어떻게 모아지는지 지켜보기만 할 뿐 우리 민족은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이 패배주의야말로 우리 앞에 닥친 위기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 역사는 바르게 진보한다는 믿음, 어떤 권력도 민중들의 뜻을 거역해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믿음, 인류의 양심은 아직도 살아있고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곳곳에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 힘은 우리 속에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할 것이다.
그 자신감 속에서 서로의 뜻을 모으고 기도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민족의 화해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내 몫의 일을 찾아 실천한다면 그 어떤 불의한 세력도, 그 힘이 아무리 강해보여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인류의 역사가 그랬다. 잠시 보면 불의한 힘이 정의를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 끝내는 힘이 없어보이는 정의가 역사를 이끌어왔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갖고 너희들과 함께 희망을 키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