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후 점심밥 맛나게 먹고 다들 모이는 행색이 남다릅니다. 이 더운 땡볕에 목장갑에 긴 고무장화에 긴팔 셔츠 모자까지...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다름 아닌 오늘은 실상사 똥 푸는 날입니다.
밥과 똥이 둘이 아니라 똥이 곧 밥으로 돌아갈 순환적인 생태뒷간을 만든다고 작년 봄부터 쓰기 시작한 생태뒷간, 쌓여버린 똥을 푸기 위해 그간 이 뒷간 퇴비 생산에 나름대로 일조한 실상사 식구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결연한 자세로 모였습니다.

▲ 사람과 자연의 순환과 공생을 이야기 하는 오늘의 실상사 생태뒷간
ⓒ 혜경
뒷간의 뒤편 발이 걷히고 수북한 변이 모습을 드러내자 식구들의 눈에 저걸 다 언제 푸나 하는 걱정이 어립니다. 여럿이 조금씩 힘(?)을 주니 저렇게 수북이 쌓이는구나... 꼭 '땡그랑 한푼 땡그랑 두푼 벙어리 저금통이 어유 무거워'하던 노래가 뜬금없이 떠오릅니다. 이젠 '밥 조금 먹고 똥 좀 누지 말자'고도 합니다.

▲ 어..어.. 저렇게 수북한 걸 언제 다 푸지....
ⓒ 혜경
일단 일이 시작되고 뒷간 아래로 뛰어듭니다. 생각보다 똥은 재와 겨와 잘 섞인 채 웬만큼 썩어 냄새가 심하지 않습니다. 퇴비로 쓰일 준비가 반은 된 듯합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사람들도 집게를 들고 이물질을 주워내고 똥을 퍼내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합니다. 포크레인에 콤바인까지 동원되어 사람들이 쌓아놓은 똥을 퍼서 퇴비장으로 옮깁니다.

▲ 퇴비의 길을 가로막는 휴지 색출작전
ⓒ 혜경

▲ 사람이 푸고 포크레인 나르고
ⓒ 혜경

▲ 왕겨를 나르는 처자들
ⓒ 혜경
손을 모으다 보니 어느덧 뒷간이 말끔해지고 왕겨랑 가랑잎을 덥습니다. 새 이불이 깔린 뒷간이 가을 숲길 같기도 하고 좋습니다. 폭신폭신 밟히는 느낌이 기분 좋습니다.

바깥에서는 기계가 싣다 떨어뜨린 똥들을 주워모으기도 합니다. 이제 똥은 사람들이 더럽다 하는 똥이 아니라 맛난 밥을 만들어줄 소중한 퇴비입니다. 한 덩어리도 귀하지요.

▲ 반쯤은 퇴비가 된 똥, 냄새도 별로 없고
ⓒ 혜경

▲ 사뿐히 즈려밟고 싶은 새 이불 덮은 바닥
ⓒ 혜경

▲ 한덩어리의 퇴비도 흘릴세라...
ⓒ 혜경
땀을 흘리다 보니 여기저기서 새참 타령이 나옵니다. 아무리 우리가 손발에 묻힌 것이 좀 '거시기'하다 해도 일 중간에 먹는 새참 맛이야 변함이 있겠습니까. 수박이며 막걸리며 둘러앉아 맛있게 먹습니다. 장갑 벗으면 깨끗하다며 누구 하나 손을 씻으러 가는 식구 한사람 없습니다. 이쯤 되면 '밥이 곧 똥이다'는 진리가 온 몸에 스며들었나 봅니다.

▲ 우리가 만진건 좀 거시기해도 새참은 필수!
ⓒ 혜경
실상사 농장 세렉스가 모자라 새로 덤프트럭 샀다고 자랑이 한창인 길수의 새 트럭이 한몫 단단히 합니다. 새 트럭인데도 이제 '똥차' 됐다며 다들 웃습니다.

여럿이 힘을 모으니 어느새 뒷간이 말끔합니다. 다시 가리개를 치고 이젠 맘놓고 밥 잘먹고 좋은 똥만 누면 되겠다고 웃습니다. 볼일 한번 보고 물을 2리터씩 내리는 수세식 생활에 길든 분들은 자연속에서 순환하는 똥을 누는 이 시원함을 잘 모르실 겁니다.

실상사 똥 푸는 날, 신나는 잔칫날 같습니다. 참 개운한 날입니다.

▲ 다시 가리개 덮고 개운한 작업 끝~
ⓒ 혜경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