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을 전후한 시기에,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에게 장관을 임명하는 내각구성권을 주겠다는 언급을 여러차례 한 바 있다. 이른바 실질적인 책임총리제 혹은 변형된 이원집정부제 구상이다.
많은 국민들은 그 얘기를 들으면서,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권력을 축소하겠다는 것과 같은 불필요한 얘기를 왜 하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그러한 구상의 배경이 최근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최근 김총재와 가졌던 청와대 회동에서 "자신의 임기중에 내각제를 고려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내년 총선전에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고 말했다고 한다(오마이뉴스 2003.6.26). 권력구조에 대한 김총재의 지론은 알려진바 대로 내각제의 실현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정국운영에서 김총재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단순한 립서비스를 했다거나 혹은 정치적 제스처를 보인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내각제관련 발언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보는 이유는 기사의 서두에서 밝힌 대로 노 대통령의 취임전후 책임총리제 언급 때문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14일, 대선당시 부산 선대위 핵심직책을 맡았던 인사들과 청와대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서) 내가 소속된 정당이 단 10석밖에 획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전국적인 정당을 지향한다면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부산일보 2003.6.16).
명분이야 전국정당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결과는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실제 목표는 DJ 그늘과 호남 이미지가 남아있는 민주당을 벗어나서 자신의 출신지인 부산경남에 확고한 기반을 둔 자신의 정당을 가지고 싶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원내 10석의 신당을 각오하는 노 대통령의 의중에는 어떤 대안이 들어있을까. 신 3당합당이다. 취임이후 드러난 노대통령의 철학과 정책, 제반 행태를 근거로 본다면 한나라당 자민련 등과의 합당이 이상한 일이라거나, 말도 안되는 엉뚱한 일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성공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면 한나라당 자민련 등과 내각제를 통한 연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참패한다면 신 3당합당을 통해 거대여당의 뒷받침을 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노 대통령은 대선후보로서 몸담았던 기존의 당을 깨면서까지 신당 창당에 집착하고 있다. 그것은 내년 총선결과 신당의 성과가 어느 정도일 것이냐에 관계없이, 다양한 경우의 수를 통하여 정치적 활로를 열어나갈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