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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도봉산 ⓒ 김용운
그래서 우리 동네 어디에서도 북한산과 도봉산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게다가 걸어서 20분만 가면 그 산자락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자랑거리입니다. 저는 비록 한 달에 한 번 산에 가면 많이 가는 것이지만 어머니께서는 날씨만 조금 좋다 싶으시면 열일 제쳐놓으시고 산에 가십니다. 물론 어머니 친구 분들 역시 그 길에 즐거운 동무가 되시더군요.

오늘 저녁뉴스를 보니 올해들어 서울시내 가시거리가 25km 이상 된 날이 열흘이 채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서울이 맑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오늘이 바로 그 열흘 중에 하루였습니다.

금요일 밤까지만 해도 장마전선으로 하루종일 비가 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하늘이 거짓말처럼 쾌청하게 개어있었습니다. 장맛비로 씻겨진 하늘은 모처럼 제 본래의 빛깔을 뽐내고 있더군요.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들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토요일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었습니다. 대충 얼굴을 씻고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 산에 갔습니다. 집안 식구들의 의아한 눈초리를 뒤에다 두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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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래 전부터 비 개인 아침에 산에 올라가서 그 풍경들을 담고 싶었던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동네에 있는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등굣길엔 늘 북한산과 도봉산의 모습을 보며 학교를 갔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아주 환장을 했습니다. 주변의 산들이 성큼 동네 앞까지 내려와 그 선명한 모습으로 유혹 때문입니다.

‘아 산이 날 부르는데 이 지겨운 학교에 가야하나. 산에 올라 시원한 경치를 바라보면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릴텐데. 호연지기를 책에서만 가르쳐주지 말고 날씨 좋은 날 산에 올라가서 자연을 벗삼아 노는 것이 진정한 호연지기일텐데. 또 오늘 같은 날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멋있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개근을 했고 카메라도 없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날씨 좋으면 수업도 빼먹고 산에 가곤 했습니다. 그래도 늘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묘한 기분으로 산에 갔습니다. 북한산 국립공원 표지가 세워진 입구를 지나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서둘러 발길을 옮겼습니다. 경험상 아침의 깨끗한 하늘도 해가 중천에 올라가면 흐려지기 십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맛비에 물이 불어난 계곡
장맛비에 물이 불어난 계곡 ⓒ 김용운
장맛비 덕으로 산에는 물이 많았습니다. 평소에 졸졸 흐르던 시내도 제법 콸콸소리를 내면서 흘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물빛을 잡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역시 사진 초보자에겐 좋은 그림이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진 실력의 역부족을 실감하면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오후에 약속이 없었으면 아마도 북한산 백운대에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후 약속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 우이암 아래 원통사 까지만 올라 갔다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빨리 걸으면 대략 한시간 반정도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원통사 가기 전 첫 번째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장수천 약수터 초입 주말 농장을 위한 텃밭에 다다랐습니다.

멀리 왼쪽의 산이 수락산입니다. 앞은 주말농장 텃밭
멀리 왼쪽의 산이 수락산입니다. 앞은 주말농장 텃밭 ⓒ 김용운
그 곳에만 가도 이미 서울을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계동쪽에 있는 수락산에 카메라 렌즈를 돌렸습니다. 벌써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평소에는 한번도 산에 오지 않다가 괜히 부산을 떨며 요란하게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이암을 줌으로 당겨서 찍었습니다.
우이암을 줌으로 당겨서 찍었습니다. ⓒ 김용운
그 곳에 서서 주변의 경관을 몇 장 더 찍었습니다. 목적지로 삼은 우이암을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우이암에 오르면 멀리 의정부, 포천, 동두천까지 보이고 팔당과 양수리 까지 눈에 잡힙니다. 물론 날씨가 좋을 경우에 한해서 입니다. 카메라로 보기엔 작아(?)보이지만 실제로 올라가면 매우 우람한 바위봉우리 입니다.

방학동 주민들의 무병장수를 책임진다는 장수촌 약수터를 지나 계속 우이암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바쁜 마음에 옮기는 걸음은 숨이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30분 정도 오른 산행에 벌써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습니다. 몇 분의 어른들이 저를 제치고 산길을 올라가셨습니다. 젊은 제 나이가 부끄러워지더군요.

그 숨을 골랐던 곳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정말 날씨가 좋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산중턱이었는데도 남산과 관악산이 보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한 컷은 그냥 찍고 한 컷은 줌을 당겨서 찍었습니다. 실제로는 굳이 줌을 당기지 않아도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집에서 남산까지 지하철만 30분 이상을 타고 가야하는 거리입니다.

시내쪽에는 구름이 껴있습니다. 멀리 남산과 관악산이 보였습니다.
시내쪽에는 구름이 껴있습니다. 멀리 남산과 관악산이 보였습니다. ⓒ 김용운
남산타워와 관악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남산타워와 관악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 김용운
드디어 우이암에 오르는 첫 능선까지 올라갔습니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 곳이 정말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존재하는 곳인지. 새삼 우리 동네에 사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북한산 전경
북한산 전경 ⓒ 김용운
도봉산 전경
도봉산 전경 ⓒ 김용운
산들바람은 맑은 아침향기를 이리저리 날라주고 있고 햇볕은 뜨겁지만 따갑지 않았습니다. 알 수 없는 산새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았습니다. 좀 유별을 떠는구나 싶었어도 그 순간 제 안에 머물렀던 평화로움은 참으로 충만한 느낌 그 자체였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아침 일찍 어른들이 산에 오시는 구나 싶었습니다.

우이동 매표소를 지나 시계를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아마도 사진을 찍으며 올라오느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신고 왔던 운동화도 미끄러운 길에 다니기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프더군요. 밥 한 숟가락 뜨지 않고 급히 나온 것이 아무래도 허기가 졌습니다.

갈림길 표지
갈림길 표지 ⓒ 김용운
한 이 삼십분만 올라가면 애초에 목표로 했던 우이암 아래 원통사인데. 푯말이 세워진 곳에서 고민을 하다 허기로움을 참지 못해 그냥 내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침을 굶고 산을 올라가기에는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 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발걸음을 다시 아래로 돌렸습니다.

서울에서 유년을 보내셨던 부모님은 가끔 한강에서 멱 감았던 이야기, 마포강가의 노을 빛, 수유리, 우이동의 맑았던 계곡을 추억하시곤 합니다. 그리고 꼭 하나 덧붙이시는 말씀이 그때는 날씨가 참 좋았다는 것입니다.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더 많았다고 서울에서도 별자리가 보였다고.

산을 내려오면서 오늘 저녁뉴스에 분명 오늘의 화창한 날씨가 뉴스로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뉴스에서 서울의 가시거리가 25km 이상인 날이 올해는 채 열흘이 되지 않았었다며 오늘 남산에서는 개성의 송악산과 인천 앞바다 까지 보였던 쾌청한 날씨였다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어느덧 우리가 사는 서울은 맑은 날씨가 화제가 되는 도시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괜히 씁쓸했습니다. 본래의 자연은 오염되지 않은 상태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 오염되지 않는 맑은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한결 여유롭게 만들고 평온하게 만듭니다. 그렇지 못한 서울이기에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난을 떨며 산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온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원래 서울의 하늘은 이런 빛이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막상 모니터로 사진을 보니 그다지 쓸만한 사진이 없었습니다. 제 딴에는 열심히 찍었는데 남들에게 내 보일 만큼 좋은 사진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다만 오늘 하루 서울의 하늘이 이렇게 맑고 고왔다는 것. 카메라로 찍은 색감 이상으로 맑고 청아했다는 그 흔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욕심이 얼굴을 두껍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걸어서 20분이면 강원도 부럽지 않은 산중이라네.” 도봉구 방학동은 그런 동네랍니다.

내려가는 길에
내려가는 길에 ⓒ 김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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