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철학이요? 난 그런 거 없는데요. 가만 보면 매해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본인 스스로가 아닌 남들이 '아 이 사람은 저런 철학을 가지고 개그를 하는 구나'라고 판단해 주는 거 아닌가요?
난 가끔 삶의 좌우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들이 참 불쌍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요. 만약 그 좌우명보다 더 좋은 좌우명이 생기면 그땐 어떡하나요? 삶이라는 건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춰 열심히 사는 거잖아요. 아닌가요?"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 열 개의 물음표가 되돌아온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철학자 혹은 시인과 동문서답하는 것만 같아 그 어떠한 답변도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모든 상상력을 다 열어 놓고 만나야 할 사람이라는 걸 인터뷰가 끝난 후에야 뒤늦게 알아 버린 것이다.
'폭소 대작전', '유머1번지'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많은 웃음을 선사한 개그계의 대부. 영화 기획자, 애니메이션 감독, 광고 카피라이터, 진로그룹 이사 등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며 한국에서 컴퓨터 관련 서적을 가장 많이 판 저자 전유성(53).
한동안 '컴퓨터 1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라는 책의 성공으로 인해 주식, 여행, 사진, 역술 등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했다는 그가 역술인과 만난 웃지 못할 일화를 전한다.
"정말 별의별 직종의 사람들이 다 찾아 왔어요. 어느 날은 한 역술인이 찾아와 이름을 빌려 '전유성만큼 한다' 시리즈를 한번 내 보자고 하더라구요. 이에 제가 '정말 역술인이 맞느냐?'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정말 맞노라'며 자신 있어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엔 '당신이 알아 본 점괘에 내가 허락한다고 나왔느냐?'라고 물어보니 그냥 가버리더라구요."
책에 관한 다양한 일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보문고가 선정한 다독자에 뽑히기도 한 그는 일 년에 대략 80권 정도를 소화해내는 소문난 독서광이다. "가장 싼 비용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어 책을 읽는다"라고 밝히는 그는 책 읽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듯 의아하게 바라보며 교보문고의 다독자 선정이 그저 민망할 따름이란다.
"그냥 교보문고에 자주 다니긴 해요. 실제로는 저보다 책을 훨씬 더 많이 읽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아마 일부러 알려진 사람을 뽑느라 절 선정한 것 같아요. 어찌나 민망한지 같이 사진도 못 찍겠더라구요.
글쎄요 뭐…. 별로 특별한 이유랄 게 있나요? 책 읽는 건 그냥 습관이죠. 가끔 시집을 통해 개그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기는 해요. 시집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들을 접할 수 있어 소설보다도 더 좋아요."
"왜 30년 개그 인생의 노하우를 거저 먹으려 하나요?"
개그맨 전유성이 그저 범상한(?) 인터뷰 상대가 아니라는 걸 인터뷰 전부터 일찌감치 눈치 챘어야 했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개그계의 선배로서 관례를 만들고 싶다며 당당히 인터뷰 요금을 요청했다. 가치 판단 여부를 떠나 필자는 처음 있는 일이라 솔직히 적잖이 당황을 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그에게 가장 먼저 던졌던 질문도 '인터뷰 요금'에 관한 것이었다.
"예전에 정말로 열 받는 일이 하나 있었어요. 한참 아주 바쁠 때였는데 어떤 잡지사에서 5일 동안 사람을 잡아 놓고는 사진 촬영을 했어요. 근데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반대로 날 잡지에 실어주는 걸 고마워하라는 식으로 아주 당연하게 행동하더라구요. 거 뭐냐, 꼭 마치 잡지에 나가고 싶어 안달난 신인 모델 대우하듯 날 취급한 거죠.
어찌 30년간 개그 인생의 노하우를 그냥 거저 먹으려 하나요? 비록 지금은 미미하지만 개그계의 선배로서 내가 받아야 앞으로 후배들도 받을 수 있죠. 선배로서 하나의 관행을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창간하려는 모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 요금을 받는다고 하니 나오는 반응이 '오히려 창간된 신문 일면에 실리는데 무슨 인터뷰 요금이 필요하냐? 우리는 창간된 신문이라 그런 선례가 없다'며 설득하려 하기에 거절했어요.
내참, 답답한 게 선례가 없으면 지금부터 만들어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말 그대로 창간 신문이니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가면 되지 않나요? 전 인터뷰료 요청이 소중한 시간과 30년 방송 생활 노하우에 대한 정당한 관례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진짜 웃음을 원해요"
개그맨들이 아이디어를 구하거나 일반인들이 사업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아이디어 뱅크 전유성. 그리 많은 말을 하진 않지만 툭 하고 무심히 던진 그의 말 한마디는 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무대 뒤편에 있는 그의 존재감을 계속 환기시킨다.
범상치 않은 그에 발맞춰 뭔가 특별한 질문을 하려 했건만 필자는 기어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떻게 뽑아냅니까?"라는 범상한 질문만 던지고 말았다. 이에 그는 "개그맨이란 생각을 팔아먹는 사람들이다. 그저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게 떨어지는 순간 그 사람은 바로 그만둬야 하는 것이다"라며 직업관을 피력했다.
7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 새로운 직업이 생겼다. 코미디를 뒤로 '개그'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사용한 그는 '개그맨'이라는 신종 직업을 탄생시켰다. 무언가 남모를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잔뜩 기대한 필자에게 그는 "오래 전부터 자꾸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는데 정말 아무런 뜻이 없다. 그냥 좀 멋져 보이고 싶어 잔머리로 만들어진 단어 일 뿐이다"라며 무심히 답한다.
짐짓 무심해 보여도 그는 '개그' 와 '진정한 웃음'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웃음의 립싱크'로 인해 사람들이 개그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며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예의 그 무뚝뚝한 표정에 짙은 안타까움이 서린다.
"아마 그때가 녹화 방송이 많아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을 거예요. 외국 시트콤에 웃음이 깔리는 걸 보고 방송국에서는 그게 신선하다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우리도 관객들을 모아 외국처럼 시도를 하려 했어요.
근데 웃는다는 건 정말 훈련되지 않으면 그리 쉬운 게 아니에요. 게다가 또 의도한 곳에서 웃음을 끌어내려면 제작진이 그 부분에 맞춰 일부러 신호를 보내요. 그러다 보니 웃음 전문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어처구니없는 신종 직업도 생겨 났죠.
하지만 정말 그게 말이 되나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제 각각 다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똑같은 감탄사를 연발할 수 있나요? 그러다 보니 개그맨이 시청자를 웃기는 것이 아닌 방청객을 웃기게 된 거죠. 녹화 방송이다 보니 방송 전에 비방용 대사를 날려 억지 웃음을 유발하고 웃는 장면을 엉뚱한 곳에 편집해 방송하고. 참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죠.
한편 집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방청객들이 왜 웃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거죠. '난 하나도 안 웃긴데 왜 그럴까?', 혹은 '내가 시대에 많이 뒤떨어졌나?'라며 시청자들이 결국 하나둘 멀어져 갔던 거예요. 이 말도 안되는 웃음의 립싱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개그로부터 멀어졌어요.
사람들은 진짜 웃음을 원해요.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가 잘 된 이유는 시청자들이 방청객들의 웃음을 진짜로 이해했기 때문에 성공한 거죠. 개콘의 방청객이 웃음 전문 방청객이 아닌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순수 아마추어 방청객이기 때문에 시청자와 같이 웃을 수 있었던 거예요."
덧붙여 그는 "다른 곳에 둥지를 튼 개콘 식구들이 새로운 것을 보여 주지 못하고 그저 답습에 머물고 있음이 무언가 잘 못 된 것 같다"며 연방 아쉬움을 표했다.
코미디를 원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각 방송사 공채 말고는 개그맨이 될 방법이 전무했던 시대가 저물어 간다. 대학로에서 시작해 KBS 방송국으로 무대를 성공적으로 옮긴 개콘처럼 이젠 정말 웃긴 소재나 사람이 있다면 방송국이 먼저 가만 놔두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진짜 코미디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전유성의 코미디 시장'이 2년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1기생을 배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미디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데가 없어요. 코미디를 하고 싶은데 어디 가서 뭘 배워야 할지 모르는 열정가들만 굉장히 많죠. 그런 지망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공채라는 게 1000명의 사람 중 10명이 뽑히고 또 그 중 뜨는 사람들은 둘, 셋에 불과하죠. 방송이라는 곳이 정말 프로가 모여 방송을 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공채로 뽑힌 애들은 아무런 전문적 교육이나 지식 없이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고, 떨어진 아이들은 영영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그는 이런 공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착순 100명'으로 신인들을 모집했다. 그후 1분 혹은 1초 안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공채와 달리 그는 지원자들과 하루종일 지내면서 면밀히 관찰한다. 그간 100여명의 1기생들이 모여 일년 동안 대략 1000회 정도의 길거리 공연을 가졌다. 5명 이상 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공연을 했다. 먼저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도 높은 훈련을 못 견뎌 지금은 17명만이 남아 있다.
"그저 유명 코미디언 흉내나 내며 학교나 동네에서 조금 웃겼던 걸 재능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죠. 무대가 없다면 스스로 무대를 만들 줄 알아야 하고 코미디의 발상을 어떻게 하는지 홀로 터득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어요. 아마 길거리 공연을 통해 코미디를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았을 거에요."
덧붙여 그는 코미디 전문가의 양성을 강조하고 몇 억씩 투자하는 일반 드라마와 영화를 비교하며 코미디에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함을 당부한다.
"방송가에는 코미디만 전문으로 하는 스태프들이 없어요. 과거엔 대부분 드라마나 다른 프로를 하다 어쩔 수 없이 코미디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결국 전문가가 없는 셈이죠. 가끔 무슨 특집을 맞이해 드라마 작가에게 몇 억씩을 쉽게 투자하는데 우리 코미디에도 그렇게 투자하면 정말 좋은 작가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어요!
한국 코미디가 발전하려면 시청자들도 좀 바뀌어야 해요. 가끔 우리 코미디가 외국 코미디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고 말씀하시는데 과연 얼마나 외국 코미디를 이해하고 보는지 묻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한참 엎어지고 넘어질 때 저질이라 하셨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저질이라 불렀는지도 알고 싶어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이나 미국, 영국, 프랑스는 지금도 저질(?) 코미디를 여전히 하고 있고 그 위대하다는 채플린도 넘어지는 코미디의 대표적인 예 아닌가요? 단지 한국 코미디라는 이유만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보거나 혹은 정확하지 않은 이상한 이론을 코미디에 대입해 보지 않았으면 해요."
재미없는 한국 언론
우연한 기회에 유명인들이 즐겨 찾는 사이트 기사를 보고 호기심에 <오마이뉴스> 를 알게 되었다는 그는 "과연 독자 의견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라며 인터넷 언론의 폐해를 지적했다.
"물론 반대 의견은 충분히 나올 수 있죠. 근데 이건 너무 엉터리가 많은 것 같아 가끔 읽다보면 짜증이 나요. 왜 그리 별 거 아닌 말 한마디에 늘어지며 말도 안 되는 비방이나 욕설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걸 보면 솔직히 과연 독자 의견란이 정말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언론은 참 재미가 없어요. 어떤 때 정치를 보면 무진장 재미있다가도 또 금세 재미가 없어져요. 대체로 언론들이 객관적이기보다는 별 거 아닌 말을 확대, 재해석, 감정을 개입해 객관적 사실을 냉정하게 보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기자의 재해석이나 설명이 덧붙여져 독자들은 객관적 사실에 대해 상상력을 잃어버려 재미없게 되는 거죠."
현재 그의 최고 관심사는 코미디 연극 전문 극장의 설립이다. 변사또의 재채기에 맞춰 의자에서 물방울이 튀어나오고 지진이 시작되면 똑같은 진도로 의자가 움직이는 등 언젠가 만들어질 극장을 위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삼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마술 춘향전' 공연에 이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깊은 잠에 빠지는 '잠자는 콘서트'를 준비중인 그가 꼭 해보고 싶은 코미디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맞춤 출장 코미디'.
방송사에선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실현 가망성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이와는 아랑곳없이 맞춤 출장 코미디를 설명하는 그의 눈이 반짝인다. 가까운 미래의 재미와 상상을 위해 그가 계획한 맞춤 출장 코미디에 관한 얘기는 이쯤에서 슬쩍 접어두어야 하겠다.
철학자에서 돌연 시인으로 변하며 급기야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상상력을 쫓아가는 게 솔직히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질문을 던지면 오히려 더 많은 물음표가 부메랑처럼 기자에게 되돌아왔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경계없는 그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엔 이 지면과 활자가 그저 비좁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