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TV가 책을 소개하고, 출판평론가라는 직함이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논하는 책이 나오는 것도 이미 출판평론가들이 쓴 책이 몇 권 나와 있기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못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책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책날개의 소개글을 보자.
'강유원, 회사원이자 철학박사'라고 적혀있다. 이 소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려면 돈과 무관해져야 한다는 그의 '고집'을 보여주는 듯 하다. 삶에 대한 고집은 책에 대한 고집으로 이어진다.
강유원씨는
"돈 주고 사서 읽은 책에 대해서만 떠든다"(11쪽)고 얘기한다. 어정쩡하게 사지 않고 저자나 출판사로부터 얻다 보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서평자는 기본적으로 독자여야 한다. 책을 읽어야 서평을 하기 때문에 그가 독자라는 뜻이 아니라 돈 주고 사서 읽어야 독자의 처지에 설 수 있다는 말이다.…책은 이미 값이 매겨져 나오지만 서평자는 그 값을 제대로 따져서 독자에게 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13쪽)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그의 서평은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 책이 전부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 책의 실질적인 가격은 2000원이라 하겠다"(308쪽).
"이 글이 서평이라면 그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들을 실마리라도 적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서 읽기를 바라기 때문이다"(337쪽).
나는 이 <책>을 샀다. 사실 나는 책을 잘 사지 않는다. 그렇다고 출판사나 저자가 책을 주는 경우도 별로 없기에 나는 제3의 방법을 쓴다. 그건 지역의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다. 도서관의 책은 소유의 무거움을 덜어줄 뿐 아니라 같이 보고 그 흔적을 공유할 수 있는 장점(때론 단점이 되기도 한다.)이 있다.
때론 내가 신청한 책이 다른 사람에게 읽힘으로써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세상을 사는 방법에는 모 아니면 도만 있는 게 아니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똑같은 입장에 서기 위해 이 책을 샀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거침없는 글쓰기에 있다. 어정쩡하게 치켜주며 장단점을 논하지 않고 글의 시작부터 과감하게 치고 들어간다. 이런 말투가 유행하지 않는 한 당분간 이렇게 신랄한 단어와 문투를 구사하는 서평은 없을 것이다. 저자 스스로
"당신들이 지금까지 대해 온 글 쓰는 인간들하고는 바탕부터 다른 사람임을 명심하기 바란다"(129쪽)고 공언할 정도니.
단순히 말투만 신랄한 게 아니라 그 날카로움은 무게를 가진다. 이 무게가 딴지와 서평을 갈라주며 현실을 파고든다. 예를 들어, 박노해씨의 <오늘은 다르게: 박노해의 희망 찾기>(해냄, 1999)에 대해 강유원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여전히 혁명가라 주장하고,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그것이 자의적으로 재정의된 것이긴 해도 천명하는 책은 국가보안법이 엄연한 한국에서 일주일 사이에 6쇄를 찍는 판에 자신의 성체험을 담은 책을 검찰이 내사한다고 하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파장과 강도를 보면 차라리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더 혁명적이지 않은가?"(140쪽)"
도대체 우리 현실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그 현실에 바탕을 둔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이 현실을 판단할 잣대는 있을까?
강유원씨는 '역사'에서 그 잣대를 찾는 듯하다. 책날개 글에서 강유원씨는
"철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철학보다는 역사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역사책에 대한 얘기가 많다. 꼭 역사책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하나의 책을 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풍부하게 알려 준다. 그러니 이 <책>에는 평을 선언한 약 82권 보다 훨씬 더 많은 책에 관한 얘기가 담겨 있다.
서평의 힘은 그 책에다 힘을 실어주는 과도한 칭찬이나 악평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서평의 힘은 그 '글을 쓰는 이의 자세'에서 드러난다. 너무 완고하면 독자가 소화하기 어렵고 너무 부드러우면 보기가 좋지 않다. 이 책은 적절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균형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처세술과도 무관하다.
그런데 한가지 우려되는 균형이 있다. 강유원씨는
"나는 서평자이면서 동시에 이 서평집의 저자"(15쪽)라고 얘기한다. 이 균형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굳이 책을 빌리지 않아도 될 내용을 책을 빌어 얘기할 수 있고,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이 저자의 의도를 왜곡할 수도 있으니까.
균형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만큼 그 균형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어렵다. 저자와 독자가 일방적인 관계를 맺기 보다 어떤 가상의 지평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면, 그 대화를 엿듣지만 말고 직접 그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강유원씨가 좋게 평가한 미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와 알랭 로랑의 <개인주의의 역사>를 읽어 봤다. 특별히 이 책들을 정한 기준은 없다.
그런데 이 두 책을 읽고 글쓴이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강유원씨는 개인주의자로서 겐지의 '삐딱선'(좋은 의미로 쓴 말이다)에 동조하는 듯하다. 겐지처럼 글쓴이도 개인주의자로서 '고(孤)의 자세'로 돌아가고자 하고 그런 고를 막고 유혹하며 통제하려는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책은 소설가가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글 써서 먹고사는 모든 이들이 읽어 볼 만한 책이라 하겠다"(149쪽)고 얘기한다.
의외인 것은 개인주의를 빌미로 기독교와 서구 자유주의에 대해 근거 없는 찬양을 늘어놓는 로랑의 글을 좋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소박한 집단주의에 파묻혀 온갖 허위의식, 반공이데올로기, 가부장주의, 온정주의 따위에 세뇌를 당한 대중으로서 살아오다가 이제 막 근대적 의미의 개인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소유에 대한 배타적인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인간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현대의 한국인들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점검하고, 더 나아가 집단주의의 병폐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자유와 전체의 평등을 통일시킬 사회를 구상하는 데에 아주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347쪽)는 얘기를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생각을 정리해 보니 그 원인은 글쓴이가 대중에게 품고 있는 부정적인 시각 탓인 것 같다. 글쓴이는
"대중은 우중이다.…말로는 정치인들을 그렇게 욕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니 그 정치인과 똑같은 기준과 방식으로 판단하고 살아간다. 권력이 시민을 우습게 본다고 불평하지만 우습게 볼 짓만 하고 있다. 당해도 싸다는 말이다. 욕을 하면서도 막상 과감하게 때려 엎자는 사람이 나오면 '빨갱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게 한국의 대중"(96쪽)이라 얘기한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기에
"대중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편함과 불편함에 민감하기 때문이다"(98쪽).…
"시오노 나나미가 자신의 역사책에서 까놓고 드러내는 '지도자에의 열망'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어수선함과 아둔함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기다리는 마음은 오히려 배웠다는 사람들에게 더 강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여기서 갈등한다"(99쪽). 이 갈등이 때론 균형을 무너뜨린다.
| | | 강유원은 누구인가 | | | | 회사원, 철학박사. 공부하길 좋아하지만 공부로 돈을 벌자고 하면 그것에 집어넣은 자존심이 다칠세라 줄곧 공부와 돈벌이를 따로 해 왔다.
그래서 여기저기 강의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회사를 다녔고 지금도 한 회사에 다닌다. 철학도로서 그의 고민은 '철학의 위기'다.
그가 보기에 오늘의 철학은 세상을 읽지도 못하고 세상에 뭘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는 철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철학보다는 역사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 | | | |
그의 방식대로 서평을 하자면 이 책은 13,000원이라는 정가 이상의 가치가 있다. 뭘 읽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참고목록을 알려줄 뿐 아니라 신랄한 글과 저자의 생각까지 느낄 수 있으니 참고서 이상의 참고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각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들지 않는 것도 책을 읽는 지혜로움이다. 또 다른 이 책의 가치는 재활용지로 만들어져 다른 책에 비해 아주 가볍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