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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쳐버린 배추 농사, 비닐을 걷고 배추를 뽑아 버리는 농활대
망쳐버린 배추 농사, 비닐을 걷고 배추를 뽑아 버리는 농활대 ⓒ 최성수
일요일 아침, 집 옆 사래 긴 밭에 갑자기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밭은 사촌 동생이 배추를 심어 놓은 곳입니다. 어제 오다 보니, 밭의 배추가 대부분은 그냥 남아 있고, 일부만 뽑은 흔적이 있었습니다.

'우선 한 차만 뽑아 갔나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기에, 아침에 온 사람들이 배추 뽑으러 온 사람들이라고 짐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들은 배추를 뽑아 내던지고, 밭의 비닐을 벗기고 있었습니다. 아까운 배추가 밭고랑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생이 밭 가운데서 제게 걸어오며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아니, 왜 배추를 뽑아 버리나?"

내 물음에 동생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다 뽑고 비닐이라도 걷어야 후작을 하지요."

그러면서 동생은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켰습니다.
"농활 온 대학생들이에요. 저 친구들이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면 나 혼자 배추 다 뽑고 비닐 걷어치워야 할텐데 말이에요."

동생이 가리킨 배추밭에는 지난 봄부터 애써 심고 가꾼 배추가 찬밥덩이마냥 대동댕이쳐지고 있었습니다.

쫑이 생겨 못쓰게 된 배추
쫑이 생겨 못쓰게 된 배추 ⓒ 최성수
동생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는 속 타는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씨앗 때문인지, 배추는 통이 앉으면서 동시에 속에 쫑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동생은 밭으로 들어가더니 배추 한 포기를 뽑아 칼로 반을 잘라 보여주었습니다. 배추 고갱이 부분의 제일 안쪽에 동생의 말대로 쫑이 생겨 있었습니다.

"쫑이 생기면 아무도 안 사가요. 먹을 수야 있지만, 쫑 떼어내는 품 들고, 맛도 덜하다고 해서‥."

동생은 말 끝을 흐렸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제가 다 속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왜 쫑이 생기는 거야?"

내가 답답하다는 듯 묻자 동생은 다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습니다.

"씨앗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씨앗 심은 사람들은 다 못 팔고 버렸어요."

동생이 심은 씨앗은 한 종묘 회사에서 판매한 배추씨라고 합니다. 신품종이라 좋다고 해서 이 씨앗을 사다 심었는데, 배추는 모두 쫑이 앉아버려 한푼도 못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한푼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추를 뽑아 버려야 하는 부대 비용까지 들게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종묘 회사에 얘기해서 배상을 받아야 할 거 아니냐?"

내가 화가 나서 배추를 발로 차며 묻자, 동생은 피식 자조적인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배상이요? 아마 안 될 걸요. 노태우 정권 때 여기 사람들이 모두 같은 옥수수 씨앗을 사다 심었거든요. 그런데 이놈의 옥수수가 통은 있는데, 알이 열리지 않는 거예요. 그때 참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패배였지요. 파종 시기를 맞추지 않았다, 온도가 맞지 않았다, 그런 핑계를 대고 결국 모든 잘못이 농민에게 떠넘겨졌지요. 우리야 늘 당하고만 사는 걸요."

시름에 겨운 채로 막걸리에 마음을 달래는 동생들
시름에 겨운 채로 막걸리에 마음을 달래는 동생들 ⓒ 최성수
동생 말로는 이번에도 종묘 회사에서는 파종 시기나 날씨를 들이대며, 자기네들 책임은 없다고 할 것이 뻔하다고 합니다. 파종 시기를 맞추지 않은 것은 농민 책임이고,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기후에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천재지변이라 종묘 회사의 책임은 없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는 거지요.

"이 동네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그 씨앗을 심은 사람들은 다 배추 농사를 망쳤어요. 그래도 나는 계약 재배한 것이 아니라 다행이지, 농협에 계약 재배한 사람들은 더 큰일이지요."

동생은 농활대를 불러 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 주며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 친구들이 그나마 배추도 뽑아주고, 비닐도 벗겨 주니 정말 다행이에요."

1500평의 밭에 심은 배추에서 한 푼도 건지지 못한 동생은, 그래도 자기는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농사 짓는 사람들의 마음일까요? 그러면서도 또 그 밭에 다른 작물을 심겠다는 준비를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나는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작은 텃밭 농사를 짓는 나는, 직업적인 농부가 아니라 그저 나 먹을 것만 조금씩 가꾸는 얼치기라 아직 농사일에 대한 마음이 동생처럼 넉넉하지는 못한가 봅니다. 다음 농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는 게 우선이니 말입니다.

씨앗을 생산하는 기업으로서는 기본적으로 그 씨앗이 파종되는 지역의 기후와 온도 따위의 조건들을 고려하여 씨앗을 생산, 판매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네가 실험한 조건과 다를 때는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려줘야 하고, 그런 조건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지역에서는 판매를 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저 새로 나온 품종이라고 농민들에게 권장하기만 하고 보상이나 책임은 나 몰라라 하니, 순진한 농민들은 좋다는 씨앗 사다 심어 손해만 보게 되는 것 아닐까요?

생각해 보니, 언젠가 노풍이라는 벼 품종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신품종이라고 권장해서 심은 농민들이, 볍씨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 속앓이를 했던 것 말입니다. 그때 피해를 보게 된 농민들이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 뒷소식을 들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농민은 사회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요?

다시 밭으로 들어가 배추를 뽑아 버리고, 비닐을 걷는 농활대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생의 눈길은 그지없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농사짓는 사람이 다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나는 송아지처럼 순하고도 멍한 동생의 눈을 바라보며, 이제 저 세대가 지나면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또 그때가 되면 묵밭처럼 잡초만 무성하게 황폐해질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자꾸 절망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모든 것을 자본과 상업의 논리로 해석하는 세상에 대한 내 반감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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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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