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을 기억하는가? 1960년대 만해도 농촌 초가집엔 나무울타리가 대부분이었다. 여름이 되면 그 나무울타리엔 덩굴식물의 경쟁 장이 된다. 울타리콩, 나팔꽃, 호박 등이 긴 팔을 뻗으며 서로 먼저 오르려 한다. 그 중에서도 호박은 인분을 흠뻑 챙기고 오르기 때문에 세가 단연 선두인데, 또 호박꽃은 유난히 탐스럽다. ‘호박꽃이 꽃이더냐’라고 사람을 빗댄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호박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꽃의 지름은 한 뼘 정도(?) 꽃 색상이 노랗고 넉넉해서 보는 이에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그 호박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곤충이 있다. 뒤영벌이다. 흔히 호박벌이라 불렀다. 2cm정도의 크기다. 털이 많고 토종꿀벌보다는 훨씬 커서 위협을 느끼곤 했는데, 호박꽃을 자주 찾는 단골고객이다.
호박꽃엔 꿀과 꽃가루가 넉넉하다. 그래서 호박벌은 호박꽃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양쪽 뒷다리에 노란 꽃 화분을 한껏 뭉쳐야 미안해하며 슬슬 기어 나왔다. 이렇게 호박벌이 다녀가야 호박꽃은 수정되고 꽃이 떨어지면서 작은 애호박으로 커 나간다.
요즘 우리 호박벌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대신 서양호박벌, 그러니까 서양에서 수입된 벌이 우리 농촌에선 더 보기 쉽다. 토마토를 생산하는 농장 등에서 서양호박벌을 화분매개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화분수정을 서양벌은 참 열심히 해 주지요. 이 서양벌들 아니면 이 넓은 유리온실을 노동력으로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고맙지요.”
충북 음성군 감곡면 한 토마토 농장. 이곳 농장주 윤병호씨는 서양벌들과 함께 토마토 농사를 짓는다. 이른 아침부터 서양벌은 1천평 유리온실을 오가며 토마토 화분수정을 열심히 해 댄다.
현재 8번째 마디 토마토 수확이 끝난 상태, 토마토 꽃은 15-16째 마디에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이 온실의 토마토 농사는 150여마리(벌 3통)의 서양벌과 윤병호씨 부부,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이 감당해 내고 있다.
“서양벌은 토마토 꽃에 거꾸로 매달려 일을 해요. 입으로는 꽃을 물고 가슴팍으로 미세진동을 일으켜 꽃가루를 털어 낸 다음 뒷다리에 뭉치지요. 열심이고 필사적이에요.”
서양벌이 토마토 꽃에 매달려 일하는 모습이다. 꽃은 호박꽃에 비하면 무척 작다. 그래서 덩치 큰 서양벌이 매달리면 아슬아슬해 보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꽃은 수정된다. 벌이 물었던 꽃대는 보라 빛으로 변하는데, 이를 보고 농민은 수정여부를 안다. 300평에 벌 1통이 놓여져 1000평이면, 3통의 벌통이 필요한데 윤 사장에 경우 일년에 10통(120만원)이면 족하다.
그 기간 동안에 노동비를 환산하면 “52만원에 절감효과가 있다”는 농진청의 설명이다.
우리농가에서 화분수정을 수입 벌에 의존한 것은 1994년부터다. 지난해 수입액만도 36억원 이상. 네덜란드, 벨기에. 이스라엘 등에서 수입된다. 몇 년 전 우리나라 벌수입에 50%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네덜란드 코퍼트(koppert)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벌 생산 전문회사다. 벌 생산 공장답게 이 회사에는 단계별로 벌들이 사육된다. 작은 벌상자(26×23×20cm)가 빼곡이 어두운 공간에 쌓여 있는데 그곳에서 벌들은 길러진다. 마지막 수출포장 단계가 인상 깊다. 한국으로 수출되는 벌 상자들이 별도로 쌓여있고 나투벌(natupol)이라는 한글 표기가 크고 선명하다.
한국 수출 벌통은 생각 이상으로 많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다. 초기에 20만원 수출가격이 지금은 1통에 12만원.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었다.
“우리 호박벌은 어디 갔어?”
그동안 우리 토종 호박벌, 그러니까 뒤영벌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 윤형주 박사. 윤 박사는 그동안 토종호박벌의 대량증식을 연구해 온 여성박사다. 1990년부터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일단 2001년부터 시작한 서양벌 대량 증식에 성공했다.
“우리 토종 뒤영벌은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일단 수입 서양벌 대량증식이 가능해져 농가보급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우리 농가에서 서양벌 수입으로 쓰인 비용은 수백억 달러 이상. 참 아까운 달러가 쓰였다. 우리 호박벌 대량증식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호박벌 대신 꿀벌은 않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꿀벌은 꽃에 꿀이 있는 과일 예를 들어서 딸기나 오이, 배나무 등에는 가능하나 꿀이 없는 토마토, 가지 등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토마토엔 호박벌이 필수다. 하지만 인공증식이 안돼 지금까지는 수입에 의존했다.
궁금한 것은 왜 반복적으로 수입해야 하는가 이다. 한번 수입 후 꿀벌같이 분봉이나 증식은 안 되는 것인가? 우리 생태계에 파괴는 진정 없는가? 수입된 서양 벌은 화분수정을 하고 세력이 다하면 자동적으로 일생을 마친다고 한다.
수입 여왕벌이 딱 한번만 살도록 설계돼 수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식능력이 없는 여왕벌이라 벌의 일생이 끝나면 그 자체로 끝나고 또 생태계 파괴는 없다(?)는 것. 그러나 윤 박사의 설명은 다르다.
“수입된 여왕벌이 간혹 월동을 해 봄에 발견된 경우도 있지요. 산란능력도 있고요. 연구 단계에서 단지 산란율이 문제였는데, 이제 90%이상이 돼 농가보급에 들어갔지요. 아직 토종 뒤영벌은 산란율이 들쑥날쑥이에요. 어떤 경우에는 90%까지 오르다가 50%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일단 농가에서 서양벌을 쓰도록 하다가 토종벌이 연구가 완료되면 우리 뒤영벌을 써야죠.”
최종 목표는 토종호박벌의 대량 인공증식이다. ‘야성순화’가 문제다.
“서양벌은 사람이 있어도 부끄럼없이 교미를 잘해요. 하지만 토종은 아직 부끄럼을 많이 타지요.”
김근영 잠사곤충부 과장의 미세한‘교미환경’의 이야기다. 아직도 우리토종벌을 대량생산하는데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이야기다. 많은 우리 토마토 농가는 ‘토마토 톤’이라는 호르몬제를‘벌 수정’ 대신 쓴다. 이미 유럽에서는 사용치 않는 방법이라고 한다.
“노동력도 11%가 더 든다”는게 윤 박사의 설명이다. 또 감곡의 윤 사장도 “토마토 톤을 계속 사용하면 기형 토마토와 속 빈 토마토가 생겨 질 좋은 토마토 생산엔 적합지 않다”며 벌 수정을 고집한다.
현재 수입 서양벌은 농사가 끝나면 소각을 한다. 혹시 모를 생태계 파괴를 염려해서다. 그래서 우리 농촌엔 우리 호박벌이 맞다.
“토종호박벌은 아마 2-3년이면 대량 생산이 가능할 것 같아요. 꼭 달성할 겁니다”(윤형주 박사).
윤 박사의 서양뒤영벌 대량인공사육의 성공을 축하하면서 곧이은 우리 호박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