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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서울 시청 앞 광장은 두 차례 성조기와 태극기의 물결 그리고 '공산주의는 안 된다'는 도도한 기도소리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물결은 3월과 6월에도 더욱 요란한 소리와 폭발적인 위력을 담은 채 시청 앞 광장을 습격했다. 당시 시청 앞 광장은 미국을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십자군으로, 북한을 기독교 공공의 적인 마귀와 사탄으로 인정하는 하나님만이 존재했다.

▲ 전쟁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진영 인사들. 우익 세력은 이들을 향해 "왜 서해교전 전사자들을 위해 애도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 이승균
2003년 두 부류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서로 귀를 막은 채 하늘의 절대자에게 자기 주장만을 외쳐대는 스산한 풍경을 연출했다. 북한 핵 문제와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불거진 한국 기독교 내의 보혁 갈등은 이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진보 세력에 비해 수적 우세와 물량적 우위를 점하는 보수 기독교계는 이제 그들의 시선을 사회로 향하고 있다. 특히 미국 중심의 자유 민주주의 이념에 거의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이들은 국내의 반미 분위기와 친노조 성향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제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이 같은 각오는 교회 내부의 일에 몰두했던 그동안의 신조에서 벗어나 '반핵 반김'이라는 화두 아래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성령의 검을 공산주의와 김정일을 향해서 뽑을 채비를 갖추고 있다.

▲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이 촛불은 우익 세력들에게는 미국을 위협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이승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길자연)와 재향군인회 등 우익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한 6.25 국민대회는 보수 기독교의 조직과 자본이 우익적 정치 이데올로기와 절묘하게 결합된 70년대식 반공 궐기대회였다.

시청 앞 우익 기독교 궐기대회는 우리 사회의 오랜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가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6.25 국민대회 주역 중 한 사람인 김한식 목사(한사랑선교회)는 당당하게 "미국의 힘은 정의로운 힘"이라고 규정하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미국을 통해서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6.25 국민대회에 참석한 수 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전부 김 목사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미국이 정의로운 나라'이고 '미국의 힘이 세계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데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으로 보인다.

감신대 이원규 교수(종교사회학)는 "보수 기독교의 특징은 철저한 반공주의 속에서 미국을 세계를 구원하는 십자군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고 전제하고 "최근 촛불시위와 노동자 파업 등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이들의 불안감이 총궐기대회로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보수권의 불안감과 위기의식은 진보진영의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자칫 친북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포용적인 대북관이 또 다른 원인이다. 가령 사망한 여중생을 기리는 추모집회는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해 서해교전으로 희생된 우리 국군을 애도하는 분위기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수권의 불만은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우익 기독교는 진보진영의 이 같은 성향을 빌미로 서해교전 사태 희생자 분향소까지 마련하고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리고 6.25 전란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한 미군과 UN 군에 대한 감사의 심경 속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하늘을 향해 사탄으로부터 남한을 지켜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 뿌리깊은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가 상처를 받자 보수 기독교와 우익 단체들은 "이제 행동해야 할 때"라고 부르짖고 있다.
ⓒ 이승균
정의와 평화의 기독교는 이 시점에서 한반도 분단 상황을 둘러싼 이념적 대립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매우 폐쇄적이고 편협된 근본주의 종교로 탈바꿈해 버렸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황필규 국장은 "미국 중심의 반북적 가치관이 우익 기독교의 종교관과 교묘하게 결합, 일종의 유사 종교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며 "이런 상황이 곧 세계 유일의 신 냉전질서가 유지되는 한반도 상황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만열 박사(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는 현재의 우익 기독교의 궐기에 대해 "마치 이승만 정권 당시 휴전을 반대하고 북침통일론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때와 같은 모습이다"며 "역사의 때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모습이다"고 평가했다. 즉 이 박사의 지적은 우익 기독교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반공 이데올로기에 함몰돼 화해와 나눔의 원칙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질책이다.

한국 기독교는 6.25전란을 거쳐 군부정권을 지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평화와 화해에 입각한 통일론을 정립하고, 대북지원 등 나눔과 교류 활동에 적극 나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3년 시청 앞 우익 기독교의 궐기는 그 모든 역사의 초침을 과거로 돌리는 것으로, 이만열 박사의 지적처럼 '역사의 때를 읽지 못한 우매한 행위'를 반복하는 모습인 것이다.

한편 평행선을 달리는 심각한 보혁 갈등 타파를 위해 양측 모두 냉정을 찾고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이원규 교수는 "보수나 진보 세력이 지금은 모두 막 나가는 분위기다"고 말하고 "양측이 합리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는 "북한을 포용하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적어도 지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진보 세력의 대북관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보수 기독교를 자극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손봉호 교수(서울대) 역시 "성경적 원칙과 함께 현실적 문제도 아울러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미국의 비도덕적 요소에 대해 마땅히 비판해야 하고 북한의 비민주적 인권 탄압도 역시 비판할 수 있어야 옳다"고 말한다.

그는 "만약 성경 원칙을 떠나서 반미나 반북 혹은 침묵 등 어떤 편향적인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원칙적 자세에서 멀어지는 것이다"고 단정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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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글 쓰는 일로 먹고 산 적이 있고, 돈 벌어보려고 자영업자로 산 적도 있습니다. 요즘은 소소한 일상을 글로 표현하고 그걸 나누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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