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는 목포개항 이후인 1899년 2월 일본 육군성 참모본부가 일본상인을 내세워 목포시 서산동과 측후동 일대 부지를 매입했다는 사실을 최근 비밀이 해제된 관련문서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한제국 당시 일본과 러시아 등 열강들은 개항 직후인 목포지역에 자국민 거류지를 매입하는 상황이었다.
대리인 통해 군사요충지 매입
일본은 이 토지를 매입할 때는 외무성 관리를 통해 일본 영사관에 자금을 송금했고 참모총장까지 직접 개입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일본 영사에게 특별지시를 내린 사실이 일본 육군성 기밀문서에 기록돼 있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1899년 일본 육군성 기밀문서 제105호에 따르면,
‘목포각국 거류지 내 일본 육군성 용지를 매입하는 절차는 목포 일본 영사관이 외무대신에게 내용을 보고 하고, 외무대신은 육군성 참모본부에 필요한 경비를 지급해 달라고 신청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본인 대리인을 내세워 매입한 부지 경락금액은 2만8272원이었다.’
특히 1900년 2월 22일 일본 육군성 기밀문서에는 문제의 땅은 목포일본 영사관이 관리해 왔고, 1908년 개인 소유로 넘어가지 전까지 10년 간 세금 등 관리비용은 육군성에서 부담했다는 것이다.
관리비도 일 육군성 부담
더구나 이 땅은 매입 후에 특별한 사용계획도 없었고 위치도 외국인 거류지와 인접한 곳이 아닌 목포항을 중심으로 해안외곽에 위치해 있어 열강들과 전쟁에 대비했다는 증거라고 최씨는 설명했다. 즉 일본 육군성이 유사시 군부대 주둔을 위해 땅을 비밀리에 매입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통상항의 토지매입에 일본 육군성이 개입한 것은 한반도에 대한 침략성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고 최씨는 덧붙였다.
최씨는 이밖에 논문을 통해 1897년 목포항이 개항되면서 일제 강점기 한반도 수탈의 창구가 됐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개항의 의미가 올바르게 조명되지 못했다고 밝히고 부산이나 인천항과는 달리 준비된 개항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이미 개항 이전에 지금의 세관인 목포해관과 무안감리서가 설치돼 있었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개항 이후에도 당시 조선정부는 목포 각국 거류지 형성에 통제력을 갖는 등 일본인들이 전적으로 실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