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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로워진다. 하루가 그렇게 느리게 지나가고, 또 다시 아침 해가 밝아오는 것이 두려워진다. 얼마전만해도 시간이 지나는 게 아까워서, 밤이 늦도록 책을 보면서 잠을 설치곤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권태는 도무지 내 곁을 떠날 줄을 모른다.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붉게 하늘을 물들이며 번져가는 그 모든 것들이 한때는 그토록 의미에 충만하기만 했었다. 그래서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듯이, 한번 밖에 살수 없는 인생이기에’ 그토록 시간이 지나는 것을 아까워했었는데, 요즘은 왠지 매사에 통 의욕이 없다.
운동을 해 볼까? 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가볼까? 아니면 하루 날을 잡아서 늘어지게 잠이라도 자볼까? 이렇게 별궁리를 다해보는 것은 그래도 권태를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는 과정에서 나오는 생각들이다. 그래도 직장에서는 철저한 직업근성 때문인지 평소와 별다른 표를 내지 않고 곧잘 일을 하지만, 나 혼자 남게 되는 시간에는 맥이 풀리고 한없이 늘어지기만 한다.
그럴 땐, 신문을 펴놓고 읽어도 근성으로 눈만으로 읽을 뿐이다. 글자는 읽는데 좀처럼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다. “아! 나도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란 광고 카피처럼 어딘가 훌쩍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든다. 그렇게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사실 간절하기도 하다.
그러나 떠나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말이 쉬워 떠난다는 것이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집만큼 편한 곳도 없다는 것을 그간 살아오면서 번번이 느껴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나의 이 권태로움은,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그런 기분전환 따위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다.
이런 지겨운 권태로움이 벌써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이젠 슬슬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살아가는 것이 지루하게만 느끼지는 게 이 정도가 되면, 권태로움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그만두도록 할 때가 된 것 같다. 나의 비장의 ‘권태극복 카드’를 꺼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내가 나름대로 찾아낸 비장의 권태극복 방법은 다소 엉뚱하다. 나의 비법이란 ‘굶는 것’이다. 밥을 조금 먹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식하게 그냥 왕창 굶어버리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기로 소문난 나는 밥을 먹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허기가 진다. 그러나 일단 굶기로 작정을 하고 나면 거짓말 같이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고 이틀이고 그냥 물만 먹고 버틴다.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정말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인지, 일단 이렇게 굶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거짓말같이 배고픔을 느끼는 정도가 약해져 버린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가면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하고, 서서히 집중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살아가는 이유, 하루하루의 삶, 즉, 먹고, 자고, 배설하고, 어제와 똑같은 일을 또 되풀이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거짓말처럼 다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의 이 특이한‘권태 탈출방법’에 대해 친구들은 별놈을 다 보겠다고 한다. 나 역시 이상하다. 그동안 여러 번 이 방법을 사용하면서 내 나름대로 이 이상한 권태 퇴치방법의 효과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일상에 권태를 느끼는 자신에게 가학적인 고통을 가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금식을 통해 아마도 권태의 배경에 깔려있을 우울의 바닥에 빨리 도달하여, 다시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일종의 탄성효과를 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에게는 효과만점인 이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우연히 발견한 이 방법은,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에서 나에게 잘 맞는 것일 뿐. 다른 사람들에겐 자신의 살아온 방식과 자신이 권태를 느끼는 이유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적인 권태극복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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