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10일 고건 총리 및 노동관계 국무위원을 출석시킨 가운데 노동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놓고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특히 여야 의원들은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의 네덜란드 노사모델 발언과 정부의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무대책, 대기업 강성노조에 대한 편향 등을 문제삼으면서 정부를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이날 대정부질문은 국회 사상 최초로 시간할당제를 도입, 예측가능한 국회의 실현을 꾀하려 했으나 개별 의원들이 할당된 발언시간을 지키지 않아 도입취지를 무색케했다. 애초 박관용 국회의장은 "오늘 회의는 5시까지 끝내도록 하겠다"고 시간엄수를 발언자들에게 요청했으나, 대정부질문은 1시간여가 지연된 오후 6시20분에야 끝이났다.
구종태 "네덜란드식 노사모델 도입은 시기상조"
김진표 "근로조건 관련 경영참여는 보장돼야"
이날 열린 노동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의 네덜란드식 노사관계 모델이 한국적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는 요지의 주장이 대거 쏟아졌다. 서병수 한나라당 의원은 "노조의 경영참가 여부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입장을 밝혀달라"고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답변을 요구했다.
구종태 민주당 의원도 "최근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로 네덜란드식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노조의 경영참여문제가 큰 쟁점이 되고 있다"며 "네덜란드식 모델은 노사정 틀 안에서 노사문제를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으로써 사회적으로 타협의 문화가 정착됐을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네덜란드 노사모델 도입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타협의 전통이 부족하고 집단요구의 분출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어렵기 때문에 네덜란드식 노사모델을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대의견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경영참여에 대해 소유권에 기초하지 않은 사회권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 같다"며 "이런 사회권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받아들여야 하고 노조도 성숙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소유권에 기초한 경영참여는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박병윤 민주당 의원은 노조의 경영권 참여가 지금 한국 경제에 바람직한 것인지 아울러 인사권 요구도 허용하겠다는 것인 물었고, 이승철 한나라당 의원은 네덜란드의 폴더 모델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진표 부총리는 "근로조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분야에 대해 경영자들과 협의하는 식의 경영참여는 현행 노동관련법규에 보장돼 있고 어느 나라나 협의가 돼야 한다고 본다"며 부분적 경영참여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참여방식으로 유명무실화된 노사협의회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아울러 "종업원지주제 등 근로조건 상승과 연결시킨 그런 범위 내에서 방향으로의 활성화가 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행 제도 이상의 노동자 경영참여는 문화적 여건과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고건 국무총리도 서울 시장 재직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다녀온 사례를 소개하면서 "네덜란드에는 국민적 합의의 전통이나 노사의 대표성 확보라는 합의정신이 정착돼 있다"며 "앞으로 이런 측면에서 합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네덜란드 모델의 직접 도입보다 과정을 참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이정우 실장과는 공식적 협의가 없었다는 점을 전제한 뒤 "현실성과 관련해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구라파와 우리는 여러 차이점이 많은 것 같다"며 "제도로서 정착돼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배타적 이익대표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노동운동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이 성장돼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며 도입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그는 "네덜란드식의 대타협을 문자 그대로 시도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정신으로 노사정협의회를 좀 더 활성화시키자는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해, 노사정 협의회의 역할강화를 통한 경영참여 보장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또 "네덜란드는 투자권까지 노사정 협의 범위에 들어가 있지만 우리 상황에서 그런 식의 경영참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못박고 "우리의 노사협의회가 98% 정도 구성은 돼 있으나 제대로 작동하는 기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노동자 경영참여는 이미 입법화 돼 있고 구성돼 있는 노사협의회에서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경훈 "5천만원 연봉받은 노동귀족에 끌려다니지 말아달라"
권기홍 "대기업 노조 비정규직 개선 큰 이슈로 생각 않는 듯"
최근 논란이 빚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문제와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해서도 여야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오경훈 한나라당 의원은 이른바 노동귀족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하면서 대기업 노조의 고임금이 중소기업의 저임금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최근 한 포럼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입사 10년차 현대자동차 노동자 연봉은 협력 업체의 사장수준이다'고 발언한 내용을 인용하면서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려고 하자 회사측이 생산직 14년차 노동자의 연봉을 4600만원으로 인상하고 임금인상 소급분 등으로 일시불로 1천만원을 더 주겠다고 했는데 알고 있느냐"고 권기홍 노동부 장관에게 물었다.
그는 이어 현대자동차 용역업체 노동자 평균 연봉이 1800만원, 하청업체 연봉이 1200만원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를 제시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구책 차원에서 노조를 만들기도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확산돼 노동자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리라고 판단되는데 그 대책이 무엇이냐"고 따졌다.
그는 또 "투쟁력과 협상력이 월등한 대기업 노조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면 기업주는 기업 이익을 위해 협력업체의 납품 단가를 강제로 인하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고 중소기업 망하게 하는 원인이다. 노동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있어 노동귀족화된 대기업 노조에 끌려 다니기 보다 하위 노동자 권익보호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전재희 의원은 "노동현안 중 가장 큰 현안중의 하나가 비정규직의 이상 비대현상"이라고 강조하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불안 요인을 증대시키고 있고,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정규직 비대화 방지책을 요구했다.
구종태 민주당 의원도 "노조의 힘이 주로 강한 대기업 임금이 타결된 후에 중소기업의 임금교섭이 이루어져 임금상승률이 높아지게 된다"며 "대기업이 높은 임금상승률을 보이고 있고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낮아 임금격차의 폭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 확대 문제에 대해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노-노 갈등이 해결되기 위해선 노동운동 내부가 연대할 수 있는 구조가 바람직한데, 이러한 연대가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아직 성숙되지 못한 문화 때문에 대형분규를 발생시키는 대형노조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 장관은 이어 대기업 노조가 표면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내걸고 있지만 중요한 내부적 이슈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대기업 노조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한 뒤 "하위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하위노동자 보호책과 관련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 노조의 임금연대 운동이 일어났으면 한다"면서 이외에도 저소득 노동자에 대한 생계비 대부나 신용보증 등의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