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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 손님을 기다리는 차량들. 손님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적막감마저 감돈다.
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 손님을 기다리는 차량들. 손님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적막감마저 감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한마디로 맛이 갔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경기 불황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서울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의 상인들이 한결같이 목 놓아 말하는 레퍼토리다.

게다가 지난 4일 정부의 특소세 인하 방침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중고차 시장은 이제는 아예 ‘0(제로)’ 베이스가 됐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제 누가 중고차를 사겠어요? 신차가 100~200만원까지 싸지는데…. 시장에서 가격이 조정되려면 2~3달은 걸려야 한다고 봐야겠죠. 그러나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업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10일 오후 2시 이글거리는 태양, 30도 이르는 무더위 때문인지 서울 장안평 중고차매매센터를 중심으로 한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그나마 찾아볼 수 있는 인적이라곤 각 중고차 매매센터를 중심으로 나와 있는 호객꾼(삐기)들만 삼삼오오 모여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중고차 시장 거리에 접어들자 호객꾼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경기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한 손님을 놓고 여러 명의 호객꾼이 달라붙지는 않는 이들 나름의 ‘상도’는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들 중 한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에서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나온 '호객꾼'들. 이들도 최근 경기 불황으로 인해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해있다.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에서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나온 '호객꾼'들. 이들도 최근 경기 불황으로 인해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해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무슨 차를 원하세요? 이쪽에서 저희 업체가 내놓는 차량이 가장 확실합니다.”
“아~ 예. 저는 차를 사려는 사람이 아니고 기자입니다. 장한평 중고차 시장이 매우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손님이 아니고 기자라는 말에 그는 매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장안평에서 10여 년간 호객행위를 해왔지만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IMF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그때는 그래도 시장이 살아있었죠. 아무리 어렵다 해도 차는 필요하다보니 큰 차는 팔고 작은 차를 샀던 거죠. 또 트럭 같은 것은 없어서 못 팔았죠. 하지만 지금은 아예 거래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장안평 중고차 시장에는 64개의 중고차 매매상사가 존재한다. 64개의 상사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 수는 무려 400여명.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유일의 중고차 시장이었던 이곳은 전국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각 지역마다 중고차 시장이 생기면서 쇠락기에 접어들었고,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점차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는 중고차 매매시장의 특성상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릴 시간 때다. 하지만 이제는 호객꾼조차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워낙 없다보니 호객꾼들도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특소세 방침이 전해지면서 시장이 완전히 망가지면서 에쿠스 같은 대형차는 가격이 400만원 이상 하락했습니다. 중고차는 신차 가격에 맞춰 가격이 형성되는데, 특소세 인하 방침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신차 가격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깎인 가격으로 사려고 합니다.”

5년째 자동차 딜러를 하고 있다는 송광수씨는 이렇게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송씨는 “어려울 때가 기회라고 이제는 중고차 시장이 변해야 할 때”라면서 “과거의 소규모, 주먹구구식으로 매매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거품이 사라지고 하나의 유통 서비스 산업으로 자리 잡은 만큼 사업자들의 마인드도 변해야한다”고 말했다.

“거품 빠졌고 이제는 적자생존 시대”

인터넷 판매를 중점적으로 하면서 장안평에서 가장 큰 중고차 매매 상사중의 하나를 운영 중인 카메가(www.carmega.com)의 임창용 사장은 중고차 시장의 쇠락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장안평의 한 중고매매상사 내부 모습. 불경기라 한국차 판매는 부진하지만 수입차는 꾸준하게 매매가 이루어진다고...
장안평의 한 중고매매상사 내부 모습. 불경기라 한국차 판매는 부진하지만 수입차는 꾸준하게 매매가 이루어진다고... ⓒ 오마이뉴스 공희정
“지난 6월부터 특소세가 인하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죠. 그나마 어려웠던 시장은 더 얼어붙기 시작했고, 7월 4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아예 거래가 끊기게 된 거죠.”

장안평은 작년 전반기만 하더라도 월 평균 4000대 이상 매매가 이루어지는 등 중고차 시장에서 그나마 제몫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올 상반기는 월 평균 2000대밖에 팔지 못하는 등 시장 자체가 50% 가까이 침체됐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중고차의 가격 또한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고차 가격은 원래 3개월마다 변화가 오는데, 보통 월 3%정도 하락한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작년 10월 이후 주당 0.8% 이상 하락하는 등 가격 하락 기간이 짧아졌으며 하락 폭 또한 커졌다는 것이다. 이 계산법대로라면 1개월에 4~5% 이상 떨어진 셈이다.

“거품이 빠졌다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과거 중고차 시장은 많은 거품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거품 수준이 아니라 아예 시장이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작년 하반기이후 시장이 50%이상 줄어든 상태에서, 지난 4일 특소세 인하 방침이 알려진 후 시장은 또 50%정도 더 내려가게 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소매의 경우 1000만원 주고 중고차를 사왔으면 1100만원 주고 소비자에게 되팔아야 하는데, 특소세 이하 방침이 전해진 후 800만원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아직 가격이 형성되지 않았는데 소비자들은 특소세가 인하된 폭으로 사려고 한다는 것이다.

“매출 17조 중고차 시장 미래가치 충분”

장안평 중고차매매센터 중앙 주차장에는 오늘도 수백 대의 차량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오가는 손님이 없다보니 매매 상사 사장들의 한숨은 절로 늘어만 갔다.

24년째 중고차매매를 했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없다고 토로하고 있는 송기섭(66)씨
24년째 중고차매매를 했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없다고 토로하고 있는 송기섭(66)씨 ⓒ 오마이뉴스 공희정
“옛날에는 좋았지. 하지만 이제 중고차 매매 상사는 끝났어. 젊은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면 알잖아. 발전성이 없다는 거지. 우리 같은 노땅들이나 용돈 벌려고 마지못해 나오는 거지.”

올해로 24년째 중고차 판매 대행을 하고 있다는 삼보자동차상사의 송기섭(66)씨는 자신의 사무실 복도에 나와 웃통을 벗어제낀 채 허망한 눈길로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상사 당 보통 18대 정도 판매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중 한 상사의 월 평균 판매대수가 과거 30대였다면 지금은 7~8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잠시 손님을 보이는 사람이 삼보상사를 찾아왔지만 자신의 차를 팔아달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 덜컥이는 소파 의자에 앉아 손님의 발길이 뜸한 상사 쪽 사무실들을 가만히 내다보기 시작했다.

2002년도 기준으로 중고차시장 규모는 17조원. 어마 어마한 규모다. 웬만한 시장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규모다. 또 전국에 산재해 있는 중고차 매매상사는 4280개. 하지만 업계에서는 7월 현재 매매 상사 수가 20% 이상 줄어든 상태라고 집계하고 있다.

“특소세 인하방침은 단기적 처방에 불과”

중고차 매매 업계에서는 자동차 특소세 인하는 경기 부양에 있어서 단기적인 처방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기를 살리겠다는 건지 죽이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특소세 인하 방침이 나온 이후 그나마 살아있던 매매도 다 죽어 버렸습니다. 다만 시장이 가격 조정기를 맞이한 후 올 9월 이후 경기가 되살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서울자동차매매사업조합의 한 관계자는 강한 톤을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 강한 불만감을 토로했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기괴한 느낌마저 주는 장안평 중고차시장 내부모습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기괴한 느낌마저 주는 장안평 중고차시장 내부모습 ⓒ 오마이뉴스 공희정
거의 모든 시장이 죽어있는 상황에서 몇 푼 안 되는 돈을 깎아 준다고 시장이 되살아나냐는 것이다. 실질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세율을 조정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시적으로 특소세를 아예 폐지한다든가, 미국의 8배나 되는 자동차 보유세를 내린다든가, 한시적으로나마 유류세를 파격적으로 낮추는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고차 업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시장의 앞날을 어둡게만 보는 것은 아니었다.

“특소세 인하로 신차가 많이 팔리면 그만큼 중고차 시장에 들어오게 될 물량이 많아지게 되고 가격이 새롭게 형성 되면서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겠습니까.”

서울경매장의 한상훈 주임은 “이번 특소세 인하가 중고차 시장에 악재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일시적으로 타격은 있겠지만 워낙 시장이 침체되어 있다보니 특소세 인하는 분명 호재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중고차 시장도 하나의 경제 주체로 대우를 받아야"

이제는 중고차 상사들이 마진을 적게 먹더라도 매매 대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IMF 이후 중고차 시장이 신차 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한 만큼 이제는 다른 방식을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 중고차 총 거래량은 190만대에 이른다.

한 주임은 “지난 10년간 중고차 시장은 매년 13%정도 오를 정도로 성장했다”며 “이제 중고차 시장도 하나의 경제 주체로 대우를 받을 때가 됐다”이라고 지적했다.

오후 5시 쯤 한 30대 남자가 자동차를 보러왔다. 대우 레간자를 사라 왔다는 이 남자에게 판매원은 “정말 좋은 제품이 있다”며 현대 2000년 식 아반테 XD를 권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레간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판매원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여의도에서 일한다는 정성욱(35)씨는 “특소세 인하 개정안 법률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이 상태에서 중고차 자동차 값이 더 내려갈지 의문”이라면서 “오히려 남들이 안살 때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확실히 지난달보다도 차량 값이 내렸다”면서 “적어도 10%이상 가격이 내려간 만큼 적정한 가격을 주고 차를 구입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11일 재정경제위를 열어 소득세법과 특소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12일부터 승용차의 특소세율은 배기량 2천 이하 차량은 5%, 2천 초과 차량은 10%로 내린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특소세 인하 방침을 대대적으로 환영을 하고 있지만 중고차 시장에까지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2~3개월 후를 지켜볼 일이다.

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 전경
서울 장안평 중고차 시장 전경 ⓒ 오마이뉴스 공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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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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