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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상담원 김범석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기 2주전부터 인터넷이 갑자기 느려졌거든요?”
자정이 다 되가는 시간, 고3 학생이 인터넷이 느리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 통화 끝에 결국 다음날, 기사 방문 조치를 하기로 결정한 김씨는 하나로 통신 기술상담원으로 3년째 근무 중이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이 회사 빌딩은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2층과 6층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기술상담원은 총 9개조로 편성돼 있으며, 이들 중 야간에는 2개조가 근무한다. 이 두 개 조를 합한 대략 100여명의 기술상담원들이 늦은 밤 고객 서비스를 위해 대기 중인 것이다.
사무실 내 전광판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인수와 대기시간이 표시된다. 하루 전화 상담 통화량은 1300여건 정도. 야간에는 비교적 통화량이 적지만 그래도 보통 시간당 10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상담원의 책상에는 공통적으로 있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거울과 가습기가 그것이다. 항상 친절한 모습으로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서 거울은 필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화 상이지만 웃고 있는 얼굴로 고객을 응대하면 당연히 친절함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즉 거울 은 자신의 표정을 수시로 체크하기 위한 것이다.
가습기 역시 쉬지 않고 8~9시간을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기술 상담원에겐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다.
“지금 디스켓을 들고 있거든요. 포맷하려고 하는데 좀 알려주세요.”
하루에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십 건의 상담을 하다 보니 이런 저런 재미난 일들이 많다. 종종 황당한 경험도 많은데 인터넷 사용의 문제가 아닌 컴퓨터를 사용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당황한 사람들은 전화번호 버튼을 누른다.
“우리나라에 24시간 컴퓨터 상담을 해주는 곳이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깐 고객 분들이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세요. 사실 인터넷 외적인 부분은 상담을 해주면 안 되거든요. 다른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가 하면 작년 엄청난(?) 실력의 할아버지와의 상담은 그가 가장 잊지 못하는 일이다.
“부산에서 예순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는데 제가 너무 편안하게 상담할 수 있었어요. 보통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설명을 해드려도 잘 못 따라하시는데 그 할아버지는 다 알아듣고 다 따라하셨어요. 그러다니 전화 끊을 때 하시는 말씀이 '다음엔 리눅스에 도전해봐야겠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말에 뒤로 넘어졌잖아요.“
야간근무의 특성상 술을 먹고 전화를 하는 고객도 있다. 콜 센터라는 곳이 고객이 인터넷을 사용하다 문제가 발생해 전화를 거는 곳이라 고객의 기분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거기에 술까지 한잔했으니 험한 소리가 곧잘 나온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러나 지금은 후회라기 보단 요구사항 같은 게 있죠. 특히, 고객들의 인신공격이나 인격모독에 많이 흔들려요. 그렇게 되면 상담자체가 이루지기 힘들죠.”
콜 센터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못함을 그는 피부로 깨닫는다. 때문에 입사 후 한동안 남들에게 떳떳이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작년 초부터 기술지원과 회사상품을 찾아보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을 바르게 사용 못하고 있어요. 한국의 컴퓨터 산업이 너무 빨리 발전해서 그래요. 95년에 시작해 양적인 성장은 이루었지만 질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거 같아요. 비균형적인 성장을 이루거지요.”
그는 지난 인터넷 대란을 떠올리며 국민의 보안의식 문제를 지적했다.
“인터넷 대란 때 전화기가 다운돼서 통계가 나오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고객들은 인터넷이 안 되는 것보다 5시간을 기다려서 전화통화를 했다는 게 더 화가 났지요. 그런데 아쉬운 것이 어떤 사건이 터지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져요. 그때도 그렇게 넘어갔잖아요. 아니 어떻게 1분도 안 걸리는 바이러스 검사 때문에 국가망이 다운될 수가 있어요? 정말 아주 간단한 거였거든요."
그가 일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고객과의 호흡이 착착 맞았을 때다. 그가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또 고객은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할 때 그는 가장 신난다.
새벽 두 시가 넘자, 걸려오는 전화량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객의 편안한 밤을 위해 대기 중이다.
“감사합니다. 저는 상담원 김범석이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