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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홍익출판사
묵가(墨家)의 스승 묵적(墨翟)은 그 혼란스럽다던 춘추전국시대를 살았고 한때 유가(儒家)와 대등한 세력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고 많은 색깔 중에 왜 하필 흑색일까? 요즘 유행하는 아나키즘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걸까? 일상과 분리된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노동하는 사람의 삶을 가장 중요하게 봤다는 점에서, 그 노동의 결실을 낭비하는 사치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겸애(兼愛)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민중의 의지를 하늘의 뜻으로 봤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묵가는 검은 옷을 입은 노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묵가의 민중성과 실천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말이 '비공(非攻)'이다. 묵가는 그 어떠한 전쟁도 반대한다. 군인을 동원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점령한 땅이 무슨 의미를 가지냐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뭔가가 부족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걸까?

"토지는 남아 돌아가는 것이고, 백성들은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백성들이 죽어 가고 있고, 위아래 사람들의 근심이 더욱 깊어만 가는데, 비어 있는 성을 빼앗기 위해 다툰다는 것은 곧 부족한 것을 버리고, 남아도는 것을 중히 여기는 행위이다. 이렇게 정치하는 것은 국가가 힘써 하여야 할 일이 아니다"(138쪽).

묵가는 비공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 실제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침략을 당하는 편에 서서 성을 방어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초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하려 하자 묵적은 열흘낮 열흘밤을 걸어가 초나라 지도자와 공격을 준비하던 공수반이라는 장인과 맞선다. 모의전투에서 공수반이 여러 차례 성을 공격했으나 그때마다 묵적은 성을 잘 방어했다. 결국 공수반이 묵적을 죽이면 성을 함락할 수 있음을 암시하자 묵적은 이렇게 얘기한다.

"나를 죽이면 송나라에는 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터이니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제자는 금골리 등 삼백 명이나 되는데, 이미 저의 수비하는 기계를 가지고서 송나라 성 위에서 초나라의 군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저를 죽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376쪽).

결국 초나라 왕은 침략을 포기했다. 묵적은 성을 지키는 방법과 기계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남겼다.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침략을 막으려 한 이유는 간단하다. 묵가는 겸애를 실현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묵가는 유가의 인애(仁愛)에 맞서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하는 겸애(兼愛)를 주장한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나라와 나라는 서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집안과 집안은 서로 어지럽히지 않을 것이며 도적들은 없어지고 왕과 신하와 아버지와 자식들은 모두가 효성스럽고 자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이다"(115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묵적(墨翟): 묵자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나 전국시대 초기에 활동하였던 인물로, 이름은 적이고 공자와 같은 노(魯)나라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묵자는 생산직을 담당했던 중하층 계급의 기술자거나 노동자 출신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유학을 공부하여 여러 고전과 유가의 경전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기존의 유가와는 다른 사상과 방법으로 곧 하층민적인 삶과 기술자의 생활 체험을 통해 형성된 실질적이고도 실용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철학으로 현실을 타개해 나가고자 하였다.

박재범: 1962년 충북 괴산 출생. 성균관대학교 중문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문학석사 취득 후 고려대학교 중문과에서 [1920년대 중국의 지식인 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취득. 현재 고려대학교 강사, 고려대학교 중국학 연구소 전임연구원이다. 역서로 <중국 당대문학사>(공역)가 있으며 다수의 논문이 있다.
겸애를 공상적인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또 한가지 유명한 일화인 유가의 제자들과 묵적의 대화를 살펴보자.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자하의 제자들이 묵적을 찾아와 군자도 싸움을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묵적은 군자가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자하의 제자들은 개나 돼지도 싸움을 하는데 어찌 선비라고 싸움을 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묵적의 대답이 걸작이다.

"슬프구나! 말로는 탕왕이나 문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행동은 개나 돼지에게 비기다니! 슬프구나!"(329쪽).

이런 겸애의 세상을 실천하는 데 있어 묵가는 정치가와 권력자의 역할이 크다고 봤다. 그들의 힘을 탐내서가 아니라 힘을 가진 만큼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권력은 겸애를 실천할 수 없다. 또한 말로만 겸애를 앞세우는 자들도 필요 없다. 그런 자들에 대한 묵적의 날카로운 질타다.

"천하의 군자들은 모두 작은 일에는 밝지만 큰일에는 밝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비유해 말하면, 마치 벙어리를 사신으로 기용하고 귀머거리를 악사로 삼는 것과 같다"(87쪽).

"굶주리고 곤궁할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 하고 부유하고 배부르면 허위적 행동으로 스스로를 꾸미니 더럽고 사악하며 거짓되기가 이보다 더 큰 게 있겠는가?"(258쪽)

묵가는 현실을 바꾸려면 자기와 충돌하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고 군주에게 충고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벙어리나 귀머거리를 신하로 삼는 게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고 맞설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활은 잡아당기기 어렵지만 화살을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가게 할 수 있다. 좋은 말은 타기 어렵지만 무거운 짐을 싣고 멀리 갈 수 있다. 훌륭한 인재는 부리기 어렵지만 왕을 도와 왕이 존경받는 왕이 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장강이나 황하는 작은 시냇물이 자기에게 흘러 들어와 가득 차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므로 커질 수가 있었다. 성인은 일을 하는데 사양함이 없고 사물에 대하여 어긋나는 것이 없었으므로 천하의 그릇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강이나 황하는 한줄기의 물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수천 냥의 갖옷은 여우 한 마리의 흰 털가죽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자기와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은 취하여 쓰지 않고 자기와 뜻이 같은 자만을 취하여 쓰겠는가?"(36쪽)

우리가 사는 현실은 혼란스럽다. 한편에선 정의의 이름으로 전쟁을 미화하고, 다른 한편에선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생명을 빼앗는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며 목소리만 높일 뿐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 뒤엔 제 배속을 채우려는 탐욕이 숨어 있다. 지금의 현실을 바꾸는 데 고전의 힘을 빌릴 수 있지 않을까? 묵가의 삶은 지금의 탁한 현실을 질타하는 몸짓을 묵묵히 보여준다. 검은 실천 속에 미래가 있다.

묵자 - 동양고전총서 12

묵적, 홍익출판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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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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