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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다양하게 발생하는 대중문화 현상에 대해 철학적인 시선으로 분석하는 텍스트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서문에서부터, 저자는 그러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 책이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중문화(대중예술)는 다른 문화 영역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독립된 영역이다. 천박함과 고상함, 보수와 진보가 끊임없이 대립하는 독립된 하나의 장이라는 것이다.

1.

화성의 체계를 전복하고 새로운 서양 음악의 전통을 세운 쇤베르크와, 미니멀리즘과 펑크 록에 근거해 록의 본질을 새롭게 회복하고자 했던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작업은 대중 문화의 체계가 이른바 고전적 문화(fine art)와 하등 다르지 않음을 입증한다.

쇤베르크가 고상하고 커트 코베인은 천박하다? 이런 이분법을 적용하기에는 각자가 기초하고 있는 영역이 너무나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즉 대중예술은 순수예술과 마찬가지로 '전통-혁신-새로운 규칙'의 회로를 통해 형성되고 발전하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는, 독립된 문화 영역인 것이다.

2.

외재적(혹은 내재적) 분석만으로는 텍스트의 보수/진보를 논할 수 없다. 텍스트 내부의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여 문학의 정치적 의미는 문학 자체의 고유한 방식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는 부르디외의 '문학의 장'이론은 이의 근거가 된다.

저자는 여러 문화 요소 중에서 음악에 주로 천착하는데, 음악은 문학이나 회화에 비해 의미적으로 불분명하다. 문학과 회화는 글자, 색채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의미를 표출할 수 있으나 음악은 '음(note)을 기초로 하는 음악은 정서(느낌)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딜레마를 롤랑 바르트로부터 빌려온 '코노타시옹'(의미의 사회적 맥락)이라는 개념을 통해 돌파한다.

1970년대의 포크송, 1990년대의 서태지 신드롬은 대중음악 역시 그 안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진행되고 있는, 역동적인 문화의 장임을 드러낸다.

3.

라캉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욕망의 실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적 토대를 이루는 것은 친족 체계이며, 친족 체계는 근친상간의 금지를 낳아 무의식적 욕망의 대상인 '남근'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무의식적 욕망을 해소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 욕망이 궁극적으로 문화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프로이트와 라캉은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예술이 갖는 의미에 주목한다. 예술은 놀이처럼 충족되지 않는 사적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환상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적당히 그러한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은폐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이른바 순수 예술은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예술은 대중의 문법이 아닌 작가의 문법을 표현의 핵심적 전략으로 삼음으로써, 대중의 사적 욕망 딜레마를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4.

이데올로기는 내용이 아닌 형식에 근거한다. 영화에 있어서 '봉합이론'이란 제작자와 수용자의 간극을 봉합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담론'임에도 그것을 은폐하고 '(객관적인) 이야기'로 위장함으로써 스스로를 객관화시킨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호(아버지, 어머니, 과장, 학생, 아들, 딸...)'에 동일시된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데, 알튀세르는 이러한 동일시의 과정을 이데올로기로 명명한 바 있다. 영화가 구사하는 전략은 이러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발화하는 주체(감독), 발화의 주체(배우), 발화된 주체(관객)를 동일시하려는 의도는 카메라의 존재성을 감추는 '쇼트의 규칙', 즉 형식적인 면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 책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중문화가 어떻게 독립적인 영역이 되는가? 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입증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이른바 순수 예술이 어떠한 측면에서 대중과 괴리되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마지막 4장은 다소 전체의 논의에서 이탈된 측면이 없지 않다.

박영욱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었던 작업을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매끄럽게 정리했다. 215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책임에도 그것이 전달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회철학 전공이라는 필자가 가진 음악, 회화 관련 지식은 상당히 방대하며, 논의의 전개에 필요한 자료만을 적절히 인용한 글쓰기 능력도 탁월하다.

'문화'라는 영역에 이론적으로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물론, 어느 정도 식견을 가진 이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라는 생각이다.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박영욱 지음, 자음과모음(이룸)(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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