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신: 22일 오후 7시>
"우리의 요구는 하나,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
청와대 눈앞에 두고 장대빗 속 한총련 부모들의 외침
장대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하늘은 마치 구멍 뚫린 듯 쉴새없이 비를 퍼부어댔다. 소복을 입은 어머니들의 눈물도 그칠 줄을 몰랐다.
오후 3시30분 청운동사무소 근처 도로. 100여 미터만 더 가면 청와대였다. '한총련'을 자식으로 둔 50여명의 부모들은 이날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자식들을 자유케 하라"고 눈물의 호소를 했다.
하지만 청와대로 가는 길은 200여명의 경찰에 의해 가로막혔다. 부모들은 "이젠 더 이상 외칠 기력도 없다"며 경찰이 든 방패를 밀고 또 밀었다. 하지만 20대의 경찰을 50대의 어머니들이 밀어낼 리 만무했다. 밀다가 돌아서기를 반복하길 1시간.
"한총련을 자식으로 두면 나날이 강해진다"던 김성옥(48·지난 4월 구속 경기대 박제민군 어머니)씨가 급기야 눈물을 터뜨렸다. 지난 5월 삭발 이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김씨였다. 그는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을 붙잡고 목놓아 통곡했다.
김씨를 보던 다른 어머니들도 하나둘 빗속에 주저앉아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여기저기서 "우리 애들 불쌍해서 어떡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수배자를 아들로 둔 수 백명의 한이고 분노야. 우리 자식들의 사상이 이적이라면 그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가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되는건가. 이렇게 한다고 학생운동이 없어지나? 우리가 정부에 구걸하는 게 아니다. 약속을 지켜달란 말이다."
| | | "소환장 발부될 때까지 공식 입장 유보" | | | 정재욱 한총련 의장, 입장 밝혀 | | | | 22일 보도된 경찰의 제11기 한총련 대의원 소환장 발부 방침 보도에 대해 정재욱(23·연세대 총학생회장) 제11기 한총련 의장이 입장을 밝혔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5시30분께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만약 경찰의 방침이 사실로 확인되면 사회단체들과 협의해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 의장은 "법무부에서는 수배해제 계획이 발표되고 경찰에서는 제11기도 이적규정 유지 방침이 언급되니 어떤 것이 정부의 진정한 입장인지 모르겠다"며 "만약 이번 경찰의 방침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한총련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지은 기자 | | | | |
김씨의 목소리가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와 뒤섞여 울렸다. '약속'이란 대통령과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의 말을 뜻했다.
지난 2월 이후 노무현 대통령 및 강금실 법무부 장관, 문재인 민정수석 등은 '한총련 소속 수배자의 수배해제' 및 '한총련 합법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끊임없이 내비쳐왔다.
문재인 수석은 지난 3월14일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와의 면담에서 "한총련 관련 수배자 양산은 국제적 망신"이라며 "5월 전에 해결할 의지가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3월 국무회의 중 "검찰도 세상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며 한총련 문제 해결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강금실 장관도 마찬가지다. 강 장관 역시 지난 4월15일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 대표단을 만나 "한총련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총련이 요청한 수배해제 문제 등을 검찰과 협의해 보겠다"며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도 법무부도, 검찰도 한총련 수배해제에 대한 이렇다할 뜻을 밝히지 않았다.
22일 일부 언론이 강금실 장관이 사석에서 "7월 안에 한총련을 수배해제 하겠다"고 한 말을 인용 보도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법무부는 "사석에서 한 말씀으로 보인다. 장관께서 휴가 중이어서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해줄 수 없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경찰청은 오히려 "제11기 한총련도 이적단체로 규정, 간부급 학생 44명에 대해 소환장을 발부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문건을 공개 파문을 일으켰다.
<연합뉴스>·<한국일보> 등이 이를 인용해 보도했으나 이에 대해 경찰청은 아직까지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간 검찰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 왜 44명에 대한 소환장만 발부하는지 의문 투성이다. 22일 경찰청에도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하지만 경찰은 입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은 청와대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이날 부모들은 청와대의 푸른 기와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처음 행진을 시도했던 그 자리에서 단 1미터도 전진할 수 없었다.
한 어머니가 경찰을 밀다 지친 몸으로 주저앉으며 말했다. "청와대 까지가 너무 멀어. 이래가지고는 우리의 소리가 들리지 않잖아. 약속을 지키란 말이야. 이 말을 대통령이 꼭 들어야 하는데."
23일 부모들은 또다시 거리에 선다.
제11기 한총련,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모임, 한총련 수배자 가족 모임, 민가협 등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연세대 앞에서 한총련 합법화 및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5신: 22일 오후 2시30분>
"한쪽에서는 수배해제 약속, 다른 쪽에서는 소환장 발부"
수배자 가족들 경찰청 앞 항의 기자회견
"삭발을 하지 않았나, 단식을 하지 않았나, 감옥에 들어가질 않았나, 포승줄로 몸을 묶질 않았나… 도대체 더 이상 뭘 하라고? 죽으란 말인가?"
경찰청이 11기 한총련 대의원 44명에 대한 소환장 발부 방침을 세웠다는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수배자 가족들과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항의가 거세지고 있다.
21일부터 수배해제와 한총련 합법화를 위한 '3일 농성'에 들어간 수배자 가족, 학생들은 22일 낮 1시 경찰청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의 내부방침 결정을 강하게 비난했다.
경찰청과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인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전날 연세대 학생회관 푸른샘에서 열린 모임과 마찬가지로 수배자 가족들의 눈물의 성토장이 됐다.
수배자 가족들과 제11기 한총련 소속 대학생 70여명은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전날과 같이 흰 소복을 입고 포승줄로 온 몸을 감은 채 자리를 지켰다. 비옷을 받쳐입기는 했으나, 아들과 함께 '수배해제'를 외치는 어머니들의 얼굴은 눈물과 땀, 비로 얼룩졌다.
지난 4월 구속된 경기대 수배학생 박제민씨의 어머니 김성옥(48)씨는 "11기 한총련에 소환장을 발부한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강 장관의 수배해제 발언 보도에 기뻐했는데 뒤이은 경찰청의 소환장 발부 방침 보도에는 절망감이 더 깊다"고 눈물을 흘렸다.
정재욱 제11기 한총련 의장의 어머니 강행순(48)씨도 경찰의 방침을 강하게 비난했다. 강씨는 "내 아들이 정말 나쁜 짓을 하고 국가에 불이익을 주는 활동을 한다면 내가 먼저 내 아들을 끌고 경찰에 갈 것"이라며 "그러나 한총련은 나라가 바르게 나가야 할 바를 청년의 양심으로 알리는 단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강씨는 "제11기 한총련은 강령도 바뀌었고 새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히며 출범 이후 과격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과정을 지켜보지도 않고 이적 굴레부터 씌운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한총련이 정당하게 자신들의 뜻을 밝힐 기회를 안 주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11기 한총련 대의원들도 경찰 방침에 불만을 표시했다. 한총련 대의원인 배진우(24, 연세대 이과대 학생회장)씨는 "한총련이 이적단체라면 지난해 내 공약과 생각을 보고 나를 대표자로 당선시킨 학생들도 모두 이적이냐"며 "나에게 이적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배씨는 "경찰의 이번 방침은 그간 진행된 합법화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후 1시부터 현재까지 항의 기자회견을 계속하고 있으며 경찰청장의 면담과 이번 방침 보도에 진의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자회견 도중 수배자 가족들은 한때 경찰청으로의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수배자 부모들이 들고 있던 피켓이 부서지는 등 충돌이 있었으나 부상은 없었다. 경찰청은 아직 소환장 발부 방침 보도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사실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수배자 가족들과 학생들은 경찰청 기자회견 후 청와대 근처 청운동사무소 앞으로 이동,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신문고 울리기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4신:22일 오후 1시20분>
"한총련 이적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법무부, 제11기 한총련 간부도 소환할듯
법무부 검찰과 등 공안당국은 제11기 한총련에 대해서도 '여전히 이적단체'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제11기 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소환장 발부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2일 <연합뉴스>, <한국일보> 등은 "경찰은 최근 11기 한총련 역시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며 "21일 밤 전국 지방경찰청에 의장 정재욱(23·연세대 총학생회장)씨 등 11기 한총련 간부 44명에 대한 소환장을 보내고 한총련 탈퇴를 거부하면 입건해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보도된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며 "제11기 한총련 대의원에 대한 소환 범위나 시기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법무부·검찰 등 공안 담당 기관의 제11기 한총련에 대한 이적성 검토는 진행돼왔으며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제11기 한총련의 이적성 여부와 관련해 "아직 11기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없으나 총노선·강령·대외 문건 등을 볼 때 11기도 10기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본다"며 "이적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경찰의 제11기 한총련 대의원에 대한 소환 계획과 관련 "(공안) 담당 기관들에서 한총련의 특정 기수에 대한 이적성 검토가 끝나면 일괄 기준을 만들어 경찰에 보낸다"며 "경찰에서 임의대로 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이같은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는 내부 사정이어서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관계자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최근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7월 안에 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대규모 수배해제 조치를 추진할 뜻을 밝혔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장관께서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언급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법무부는 아직 수배해제 검토 사실이나 범위 및 시기 등을 확정한 바 없다"며 "장관께서 휴가 중이기 때문에 보도의 사실성에 대해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제11기 한총련 및 수배해제 모임·민가협 등은 경찰의 소환장 발부 방침 보도에 따라 이날 낮 12시30분부터 경찰청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의 소환장 발부에 대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경찰에 △제11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보는 근거 공개 △성급한 소환장 발부 철회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유영업(수배 7년, 제5기 한총련 의장권한 대행) 수배해제 모임 대표는 "가족들이 수배해제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발표는 충격적"이라며 "이렇듯 성급한 소환장 발부는 애초부터 한총련에 대한 전향적 검토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비난했다.
또 유 대표는 "23일 민가협·민변 등과 수배해제 모임이 공동으로 실시한 한총련 수배자의 인권 실태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한총련 수배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것"이라며 "이 자료를 청와대·법무부·국제 앰네스티 등 인권단체에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3신: 21일 오후 5시30분>
한총련 의장 어머니 등 법무부에 '공개서한' 전달
21일 오후 4시30분, 한총련 수배자 가족들이 또 다시 법무부를 찾았다. 이들이 법무부를 찾은 것은 올해만 해도 10여 차례. 지난 6개월간 수배자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법무부를 방문,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한총련 수배자 가족 70여명과 민가협 등 시민단체 회원, 한총련 소속 학생 등 100여명은 오후 3시30분께 연세대를 출발한 뒤 1시간만에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도착, 오후 5시30분 현재까지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수배자 가족들은 연세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복을 입고 몸에는 붉은 포승줄을 맨 채 '사랑하는 나의 자식 보고싶다, 수배조치 해제하라'는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과천청사 앞으로는 '정치수배 해제, 한총련 합법화'라고 쓰인 가로 5m, 세로 5m짜리 정방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에 앞서 수배자 가족 대표단은 오후 5시10분께 법무부 민원실을 찾아 법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대표단은 정재욱 한총련 의장의 어머니인 강행순씨와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등 5명으로 구성됐다.
수배자 가족들과 수배해제 모임은 이날 전달된 공개서한을 통해 "장관이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흔쾌히 하던 말씀이 이렇게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될 줄 몰랐다"며 "자유로운 앞날에 대한 계획 마련에 저절로 나왔던 웃음은 사라지고 하루가 천일 같이 느껴지는 암흑의 날이 돼 버렸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공개서한에서 또 수배자들은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섰다"며 "오늘부터 사흘동안 연세대에서 철야 농성을 하고 청와대 앞에서 신문고도 울리겠다"는 투쟁 계획을 밝혔다.
경찰은 현재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과천청사 앞에 약 300여명의 병력을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중이다.
한편 수배자 가족들은 법무부 앞 연좌시위를 마치는대로 연세대로 돌아가 첫날 철야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다.
| | 부모도 자식도 모두 눈물 범벅 | | | [현장] 스스로 포승줄에 몸을 옭아매기에 이른 한총련 | | | | 부모도 자식도 모두 '눈물 바람'이었다. 스스로 포승줄에 몸을 묶는 부모를 보는 자식이나 푸른 수의를 입고 노상감옥 속으로 들어가는 자식을 보는 부모나 마음은 매 한가지였다.
"아버지가 시골에서 오셨는데, 포승줄을 매는 모습을 뵈니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입니다."
한총련 수배자들은 "그저 죄송스러울 뿐"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2년째 수배중인 오선임(24. 02년 동국대 사범대 학생회장)씨는 "가슴이 무척 아프지만 비장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벌써 5년째 수배중인 임상우(28. 02년 울산대 총학생회장)씨도 마찬가지. 임씨는 "지금 몸을 포승줄로 묶었지만 지난 5년간 몸만 안묶였지 학교라는 감옥에서 청춘을 보냈다"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희망을 가졌는데 결국 부모 앞에서 몸을 묶는 절박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통탄해했다.
부모들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는 심정이었다. 지난 5월 삭발했던 머리가 까맣게 자란 김성옥(48. 지난 4월 구속 수배자 박제민씨 모친)씨는 "내 머리가 이렇게 자랄 때까지 현실이 그대로일 줄은 몰랐다"며 "죄가 있다면 내 자식 대신 우리를 잡아가라는 심정으로 몸을 묶었다"고 밝혔다.
2년째 수배 중인 김선근(26. 경희대 재학)씨의 어머니 심갑선(50)씨도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심씨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왔지만 지금의 심정은 정말 슬프다"고 심경을 표했다.
이날 시위에는 '예비 수배자'인 제11기 한총련 수배자 가족을 대표해 정재욱 의장의 어머니 강행순씨도 참석했다. 처음으로 수배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 한 강씨는 "제주도에서 새벽 비행기로 올라왔다"며 "이번에는 나라도 힘이 된다면 합하고싶어 오게 됐다"고 밝혔다.
강씨는 "한총련의 문제는 비단 내 자식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학생들의 양심이 사회에서 올바르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왜곡되는 것의 아픔을 오늘 어머니들의 표정에서 가슴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한총련도 그의 부모들도 모두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 김지은 기자 | | | | |
<2신: 21일 오후 3시30분>
"가족들은 흰 소복, 수배자는 푸른 수의..."
수배해제모임, 연세대서 항의농성 시작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으로서, 단과대 학생회장으로서 남들이 외면했던 민족분단의 아픔을 생각하고 통일에 대한 열망 때문에 나서서 싸웠습니다. 그것이 이적이라면 여기 계신 분들과 이 나라의 통일을 바라는 모든 사람도 이적입니다. 한총련은 이제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습니다. 대학을 감옥처럼 여기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묶겠습니다. 대답 없는 정부에 대한 무언의 항의입니다."
한총련 활동과 관련, 수배를 받고 7년째 생활하고 있는 유영업(제5기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 수배해제모임 대표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6개월만에 보이는 첫 눈물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을 바라보는 수배자와 수배자 부모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제11기 한총련 소속 학생들과 수배해제모임 회원들, 수배자가족 150여명은 21일 오후 2시30분 연세대 학생회관 3층 푸른샘에서 '수배 해제와 한총련 합법화를 위한 집단상경투쟁' 기자회견을 갖고 3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21일부터 23일까지 이들은 연세대에서, 법무부 앞에서, 청와대에서 한총련 합법화를 촉구하는 강도 높은 농성에 들어간다.
흰 소복을 수배자 가족들과 푸른 수의를 차려 입은 수배자들이 마련한 이날 기자회견은 실상 '대답 없는 정부'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곳곳에서 원망과 통한의 눈물이 흘렀다.
수배자들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연단에 오른 정재욱 제11기 한총련 의장도 마찬가지.
정 의장은 수배자 가족들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참 오랜만에 부모님들을 뵙는다"는 인사를 시작했지만 뒷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서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한참 숨을 고른 뒤 정 의장은 "한총련 의장이 된 후 처음으로 어머님들 앞에 섰지만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죄송함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인사말을 이어나갔다. 정 의장은 "그 동안 한총련은 정부로부터 수많은 약속을 받아왔고 그 약속에 맞춰 기다렸다"며 "이제 한총련은 합법화와 정치수배의 마지막 기로에 와 있는데, 오늘의 이 투쟁이 수배해제의 답을 받는 싸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약 20여분만에 끝난 기자회견 뒤, 소복차림의 수배자 가족들은 스스로 붉은 포승줄에 몸을 묶었다. 푸른 수의차림으로 앉아 있던 수배자들도 같은 포승줄에 묶였다.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며 스스로 몸을 묶는 이들은 말이 없었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후 이들은 줄지어 연세대 백양로를 행진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장, 강위원 한총련합법화대책위 집행국장, 제11기 한총련 의장과 대변인, 100여명의 수배자 가족과 수배자들 앞에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플래카드에는 "언제까지 검토만 하고 있을 것인가, 사랑하는 우리 자식들에게 자유를"이라고 씌어 있었다. 행진하는 동안 이들은 "빈껍데기 검토발언 정치수배 해제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날 오후 3시30분 정문에 도착한 이들은 전세버스 2대에 몸을 싣고 과천 법무부로 향했다. 수배자 가족들은 법무부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며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해제를 촉구할 방침이다. 가족들과 떨어진 수배자들은 연세대 정문 옆에 마련된 '노상감옥'에 들어가 침묵시위에 들어간다.
<1신:21일 오전 10시40분>
"강금실 장관님, 언제까지 기다려야합니까"
한총련, 21~23일 집중 행동... 법무부 앞 포승줄 시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수배자와 가족 1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인다.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모임'(이하 수배해제 모임)은 20일 "장기 수배자들의 가족 70여명이 전국에서 상경해 21일 오후 3시 법무부 앞에서 한총련 문제 해결을 위한 '포승줄 시위'를 벌이며 법무부 관계자의 면담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배자 20여명은 서울 연세대에서 '노상 감옥 농성'을 벌이겠다고 수배해제 모임측은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측은 "수배자 가족들과 면담을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만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면담 요청" "안된다" 한총련측과 법무부의 실랑이
수배해제 모임 유영업(수배7년, 제5기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 대표는 "우리 수배자와 수배자 가족들은 지난 2월부터 노무현 대통령·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해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한총련 문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단비'처럼 믿고 살았다"며 "그러나 7개월간 정부의 답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수배자 가족 70여명이 집단으로 상경해 흰 소복 차림으로 법무부 앞으로 가 붉은색 포승줄로 손을 묶은 채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며 "장관이 휴가를 가셨더라도 한총련 담당자와의 면담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 측은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수배자 가족들의 이날 시위에 대해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시위 계획은 알고 있으나 그들과 면담할 수는 없는 일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법무부의 한총련 문제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총련 문제 해결을 적극 검토하던 중 '5·18 시위 사태' 등이 터지긴 했으나 한총련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며 "지금도 과거에 말했던 (한총련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는 유효하며 적극적인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무부에서 말하는 '적극적인 조치'와 수배자들이 요구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몇개월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수배자들은 그동안 160여명에 이르는 장기 수배자들을 일괄 불기소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법무부는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총련의 주장은) 정치선전의 구호일 뿐"이라며 "개별 사건이 있는 사람들을 일괄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총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법 절차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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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21~23일 집중 행동
한편 제11기 한총련과 수배해제 모임은 21일부터 23일까지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 및 수배자 가족 총회를 연다.
이들은 21일 오후 3시 법무부 앞에서 '포승줄 시위'를 벌이는 데 이어 같은 날 오후에는 신촌 연세대에서 모여 '제4차 한총련 수배자 가족 총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튿날인 22일에는 청와대로 옮겨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신문고 울리기'를 진행한다고 이들은 밝혔다.
또한 23일에는 지난 7일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공동으로 조사한 '한총련 수배자 및 수배자 가족 인권 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오후 1시부터는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 및 합법화 촉구대회'와 '수배해제 기원 108배'를 벌인다.
사이버 시위도 예정돼 있다. 이들은 "3일간 일정에도 불구, 정부의 답변이 없다면 23일 별도의 인터넷 홈페이지(www.free2003.org)를 통해 한총련 수배자들의 인권이 죽었다는 의미로 네티즌의 조문을 받는 '사이버 인권 장례식'을 벌이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위와 가족 총회에는 정재욱(23·연세대 총학생회장) 한총련 의장 부모를 비롯 제11기 한총련 대의원 가족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 | "최후의 수단...이제는 더 이상 '수배해제' 외칠 기력도 없다" | | | [미니 인터뷰] 유영업 수배해제 모임 대표 | | | |
| | ▲ 유영업 수배해제 모임 대표 | | | "장관님이 휴가 가셨다고 저희도 휴가를 갈 수는 없습니다. 하루하루 타는 심정으로 7개월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수배해제 모임 유영업 대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차라리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수석·강금실 장관이 한총련 문제에 대한 해결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애가 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이 저희에겐 '단비'였는데 이후 6개월간 정부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힘들기는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언제쯤이면 문제가 풀리느냐"는 가족들의 애타는 전화를 받기도 죄송스럽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총련 문제 답답하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는 "잘 됐다, 좋은 날이 오려나보다"는 격려전화가 쇄도했던 터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가족들은 한숨 뿐이다. 유 대표의 부친은 아예 지갑 속에 '인내(忍耐)'라고 적힌 종이를 넣고 다닌단다.
경찰의 수배자 검거도 계속됐다. 올해 초 179명(한총련 집계)이었던 수배자는 7월 들어 20여명이 줄어 158명이 됐다. 한 달에 3명 꼴로 경찰에 연행된 셈이다. 이를 두고 수배해제 모임은 "앞으로는 '한총련 해결'을 말하더니 뒤로는 수배자를 검거하는 것이냐"며 반발해왔다.
이번 3일간의 계획을 두고 그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의 방법도 없고 더 노력해야할 상황이 계속돼서도 안 됩니다."
그는 오늘 수배자들과 함께 또다시 아스팔트 위에 스스로 만든 '노상 감옥'으로 들어간다. / 김지은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