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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꽃 능소화에 얽힌 이야기
조선 중엽, 무척 착하고 성실한 칠복이라는 사람이 알콩달콩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꽃만 보면 환장한다. 넓지 않은 마당 화단에 온갖 자잘한 꽃들로 가득하다. 겨울만 빼고 철따라 피게 만들었다. 논밭만큼 정성껏 잡초를 매고 북돋아 줬다.
어느 날 양반댁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담장 밖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능소화를 만났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이었으니 한 줄기 꺾어와 흙에 꽂아놨다. 참 예쁜 꽃이라 정성으로 물을 주며 길렀다. 기대 이상으로 잘 자랐다.
곧 뿌리가 나오고 10cm 밖에 안되던 줄기가 땅을 박차고 담장에 기어올랐다. 그 해를 잘 보내고 이듬해 2m 가량 자란 줄기에서 나팔꽃처럼 생긴 주황색 꽃이 피었다. 일곱 송이가 날마다 하나씩 멍울을 터트렸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 꽃들은 칠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뿐인가. 남의 것 보는 것보다 마당에 심어 놓고 희롱(戱弄)하며 완상(玩賞)을 하니 더 없이 좋았다.
3년 째 되던 때의 일이었다. 줄기가 무럭무럭 자라 밖으로 삐쳐나갔다. 두엄자리 옆에 심어놓은 그 꽃나무는 바깥쪽에서 보아도 탐스럽게 참 예쁜 꽃을 피웠다. 100여 송이 중 절반 이상이 밖으로 나갔으니 이웃집에서도 꽃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칠복이네는 좋겠어?”
“뭐가?”
“이렇게 좋은 꽃이 피었으니 말야. 우리도 한 그루 분양을 해주게.”
“자네 이야기라면 제일 먼저 챙겨두겠네.”
이런 대화가 오가니 주위에서 너도나도 달라고 졸랐다. 날아갈 듯 기뻤다. 자신의 실력이 유감 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마침 뒷짐 지고 동네 곳곳을 배회하던 최 진사가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저저저저…. 저런 고얀 놈을 봤나? 제까짓 것이 감히 양반 행세를….”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온 최 진사는 앞뒤 보지 않고 종을 보내 관아에 신고했다. 포졸들이 닥쳐 그 마음씨 착한 칠복이와 칠복이 마누라를 포박하여 끌고 갔다. 흠씬 두들겨 맞았다.
“세상에 상놈 위에 양반있고 양반 위에 군주가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거늘 불경스럽게도 상놈 주제에 감히 양반 행세를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상감마마의 하해와 같은 마음이 이 상것에게도 미치니 죽음은 면케 하리라. 이날 이후로 칠복이와 칠복이 처는 종이 되어 최 진사를 위해 평생 봉사할 지어다. 벌로 곤장 100대를 선고하노라. ”
“사또 살려 주시옵소서.”
“듣기 싫다, 이놈. 여봐라, 매우 쳐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싹싹 빌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양반을 참칭(僭稱)한 죄목 치고 목숨을 거둬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던 것이다.(김규환 씀)
능소화는 가부장적 양반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간직한 꽃
능소화(업신여길 凌 하늘宵 꽃花)는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데, 영명으로는 Chinese trumpet creeper다. 중국에서 들여와 양반꽃이 된 이후로 과거제도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가르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꽃으로도 차별을 했다니 봉건사회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 번 잡은 권력을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다는 점과 도전하는 자에게는 어떠한 구실과 명목을 붙여서라도 억압하기에 이른다.
위 이야기는 과장된 이야깃거리지만 상민들이 가져다 심으면 위와 같이 곤욕을 치러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꽃말이 ‘여성’ 이기도 하고 ‘명예’이기도 한 능소화는 그래서 평민들이 소유할 수 없는 꽃이었다. 이제는 절에 가면 쉬 볼 수 있다.
몹쓸 세상이 가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억압 구조는 여전하다.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가부장적 관계의 연장은 여성과 가족 체계의 모순으로 나타나 사회 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능소화와의 인연의 끈
이 꽃과의 인연은 고교시절 자취하며 보냈던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일대 옛 한옥 담벼락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신혼 여행 코스 중 하나였던 진안 마이산 돌탑 근처 암벽을 20m 이상 쭉쭉 뻗어 올라가는 걸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이른 봄철이라 그 때는 앙상한 줄기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도 능소화는 여름철마다 만났다. 나무 농사를 짓는 형님 덕에 수만 그루를 한 곳에서 심고 피는 걸 보았다. 같이 꺾꽂이 작업을 해서 말이다. 그 해 여름 강릉시 연곡면 소재 산림조합 산하 <임업기계훈련원>에서 산림경영자 과정을 이수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나는 지네 발톱 닮은 줄기를 툭 잘라 모래에 꽂았다. 장마철이어서 그런지 열흘이 지나니 뿌리가 나왔다.
어떤 나무든 꼿꼿하게 옆에 두면 칭칭 감아 5년내 고사시키고 마는 왕성한 생명력을 보인다. 장마철에 주인장에게 한 말씀드리고 여린 가지를 꺾어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꺾꽂이 삽목(揷木)이 잘되어 뿌리박음이 놀랍도록 강하다. 담장에 능소화 한 줄기 올려 운치를 더해줄까?
몇 년 전 ‘꽃가루가 들어가면 눈병이 많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근거 없는 걸로 밝혀졌다. 모든 꽃가루는 먹으면 좋지만 눈이나 피부에 들어가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것이지 않은가?
나는 양반(兩班)이 아니지만 능소화를 감상할 자격이 있다. 한량이니 한량만 더 있으면 된다. 그러니 다소 근접한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