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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평화통일, 동서화합, 교회일치 등을 기원하며 광주까지 국토순례에 나선 경주YMCA 박병종 목사
남북의 평화통일, 동서화합, 교회일치 등을 기원하며 광주까지 국토순례에 나선 경주YMCA 박병종 목사 ⓒ 오마이뉴스 이승욱

뜨거운 여름, 고열이 올라오는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수행자의 고행과 흡사하다. 자동차가 일상화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수백 킬로미터를 걷겠다는 것은 웬만한 결심이 서지 않고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길을 걷겠다고 '짐'을 싼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들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밝히고,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 속에 결심 하나씩을 품고 힘든 고행을 떠난다.

경주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시민운동가 박병종(54) 목사도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화합하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희생이 필요해요.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죠. 이렇게 길을 떠나는 것은 스스로의 희생을 통해 화합하는 의지를 다지겠다는 심정에서 시작한 것이에요."

21일 오전 10시 박 목사는 경북 경주를 출발했다. '고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박 목사는 평화통일, 동서화합, 교회일치를 기원하며 영천·대구·거창·남원을 거쳐 오는 27일 광주까지 총 287Km의 대장정에 오른 것이다.

경주를 출발한지 5시간쯤 지난 오후 3시, 박 목사는 경주시 건천읍 부근 4번 국도의 갓길을 걷고 있었다. 거기까지 약 20Km를 걸어왔다. 걸음을 잠시 멈춘 박 목사는 허벅지를 주무르며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평화통일을 위해 동서화합과 교회일치 중요"

"올해로 한반도의 정전협정이 맺어진지 50주년이 되는 해가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도 남과 북의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민족의 통일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로부터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지성이면 감천이다'란 말이 있죠. 우리 민족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더불어 화합하고 사이좋게 사는 길에 우선 저 자신부터 노력하고자 길을 떠나게 됐습니다."


전국 YMCA는 평화운동 차원에서 정전협정 50주년을 맞아 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평화의 날'로 정했다. YMCA 소속 대학생과 청년 회원들은 이 날을 기념해 오는 27일 광주에서 출발해 판문점까지 도착하는 '2003 청년국토대장정'을 떠나게 된다.

박 목사는 영남지역에서도 도보 순례를 계획했지만 수월치가 않았다. 그래서 광주에서 떠나는 청년들을 격려하기 위해 혼자서라도 순례를 결행하게 됐다고 한다.

남과 북의 통일을 염원하는 그가 영·호남을 횡단하는 도보 순례를 선택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남과 북의 한 민족이 하나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에 앞서 지역감정으로 깊은 골이 패인 영남과 호남, 동과 서의 화합을 이루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거기다 박 목사의 신분만큼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본래 성경에서 50년을 '희년'(禧年. The Year of Jubilee)이라고 합니다. 희년은 환희와 해방의 해로 삼고 모든 빚을 탕감하며 포로를 놓아주고,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는 해라는 의미죠.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53년 6월 10일 대구에서 기독교 장로회와 예수교 장로회로 나뉘었죠. 그로부터 우린 새로운 희년을 맞고 있어요. 민족이 하나되기 전에 교회가 먼저 하나돼야 하고 남북이 하나되기 전에 동서화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대북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박 목사의 가슴에 우려가 더 하고, 화합 보다는 분열하는 모습이 아쉽다고 한다.

"최근 들어 대북지원 문제로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잖아요. 대북지원에 국민적 공감대를 가지지 못했던 것, 그리고 밀실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던 북에 대한 지원을 마치 죄인 다루듯이 하는 것이 지나치다 싶어요. 이런 상황이 대북화해 분위기에 혹시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가 도보 순례를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알리자 가족들의 만류도 있었다. 쉰을 넘긴 나이에 젊은이들도 하기 힘들다는 도보 순례가 버거울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박 목사는 지난 6월말부터 하루 2시간 체력 훈련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거사(巨事)를 준비했을 만큼 치밀했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도보 순례를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얼굴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더운 날씨도 그를 괴롭혔다.

박 목사는 "오늘이 첫 날인데도 벌써 다리가 아프고, 딴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시민들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예전 통일 문제는 정부의 전유물 정도로 여겨져 왔었죠. 하지만 이제는 민간 단체와 시민들이 통일 문제를 풀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죠. 통일이라는 큰 테마를 시민들에게 보이고 공론의 장에서 함께 토론할 때만이 통일에 반대하거나 냉전적인 대북관을 가진 이들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힘은 들어도 거기에 힘이 보태어지길 바라는 거죠."

대구가 고향인 박 목사는 72년 경북대 농과대학을 졸업한 후 4년 동안 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81년 한신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대구 성락교회와 성주 안포교회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85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김천YMCA 사무총장을 거쳐 지난 91년부터 경주YMCA 사무총장으로 12년 동안 일해오고 있다.

그 동안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힘써온 박 목사는 의정감시와 시민들의 시정참여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또 박 목사는 통일 관련 사업에 공을 들이기도 했는데 지난 97년에는 경주에서 약 3900만 원을 모아 북한 주민들을 위한 옥수수보내기 운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영남 정서 안타까워…"

ⓒ 오마이뉴스 이승욱
하지만 대구가 고향인 그에게도 시민운동가로 살아가기에는 '영남'이라는 울타리가 버겁게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영남지역은 보수, 수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죠. 경주 같은 소도시에서 느끼는 보수성이란 넘기 힘든 과제예요.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하며, 진보적인 목소리는 무조건 불온시하는 경향이 뚜렷하죠.

각양각색의 스펙트럼이 상존하지 못하는 지역의 현실이 답답할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이제는 마음을 넓게 열고 서로의 이야기에 아량을 베푸는 관용하는 마음을 익혀 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서로에게 관용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6박 7일의 도보 순례의 길을 다시 재촉했다.

무서운 속도로 "쎙~"하니 달려가는 자동차의 굉음에 움칫하면서도 그의 걸음에는 더욱 힘이 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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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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